로스쿨제도가 있다. 로스쿨은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대학원 과정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와 법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으로 이수한 학부졸업생을 대상으로, 실무 위주의 법률 교육을 시행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이다.

로스쿨은 미국에서 1870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일본은 2004년, 우리나라는 2009년 도입하였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된 후 학부 전공과목과 관계없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로스쿨 진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및 공인영어시험(TOEIC, TOEFL 등), 대학 학부성적, 서류(자기소개서 등), 면접 등으로 이루어진 로스쿨 입시를 거쳐 법학전문대학원의 3년 과정을 이수하면 변호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우리나라는 로스쿨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법조인(판사ㆍ검사ㆍ변호인)이 되려면 사법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963년에 시작한 사법시험이 2017년 12월로 폐지되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장이기도 했던 사법시험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법시험의 존치와 폐지에 다양한 이유와 논리들이 아직도 팽팽하다.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집안 형편 어렵다며 꿈을 접는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로스쿨에서는 기회균등선발이라는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진학 기회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입학 기회에 대한 형평성이 보장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척수협회 회원인 A씨는 2013년 불의의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소송과정을 지켜보면서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매료가 되었고, 장애를 가지고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지만 현직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현역 척수장애인 변호사를 롤모델로 꿈을 키웠다.

퇴원을 하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에 로스쿨 입학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2016년도 이후 두 차례 로스쿨에 지원을 했지만 낙방을 했다. 로스쿨에서는 일반전형 외에 5%의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은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배려대상에서 선발을 한다. 신체적 배려는 장애인이고, 경제적 배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와 차상위 등이고 사회적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농어촌출신자와 북한이탈주민과 그 자녀 등을 말한다.

정의가 살아 꿈틀되는 전형같이 보이지만 A씨와 같은 1급의 중중장애인은 불리하다. 이유는 로스쿨마다 내세운 '장애인 등급' 때문이다. 2018년도 모집요강을 분석해보면 64%인 16개만이 1~6급의 장애등급을 대상으로 했고 나머지는 4급 이상(1개교), 6급 이상(7개교), 1개교는 경제적 배려대상만을 선정하는 곳도 있었다.

로스쿨 현황(http://www.leet.or.kr/ 사이트 캡쳐)

19대 국회에서 박혜자 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09~2013년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 특별전형 입학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이 한 명도 없는 로스쿨도 6개나 있었다.

지난 2009년 로스쿨이 처음 들어선 이후 2013년까지 특별전형을 통해 624명이 입학했으며, 이 중 장애인은 78명(12.5%)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2014년 이후의 데이터를 구할 수가 없었으나 큰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중 중증장애인은 그 수가 거의 희박한 것으로 보임)

현재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 즉, 대학 입시부터 각종 직종의 취업 및 공무원 선발 등에 있어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들의 실질적 기회 평등과 직업 선택 및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특정 비율 이상의 인원을 장애인으로 구성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그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로스쿨 또한 학문의 기회, 졸업 후 법조인을 직업으로 지망하는 점에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는 2019년 신입요강부터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을 7%로 확대된다고 발표했다. 25개교 로스쿨의 기회균형선발 대상자가 104명에서 150명으로 46명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로스쿨의 경우 특별전형에서 중증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인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과 경쟁하다보니 장애인 학생 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작년 말 장애인복지법 개정에 의해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으니 중증의 장애인들은 더 불리하게 되었다.

과거 사법시험제도가 존재할 당시엔 일정 정도의 공인영어 성적(TOEIC 700점 이상)과 법학 과목 35학점 이상 이수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동등하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로 일원화되면서부터 중증장애인들은 이전과 달리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 앞서지 못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관문인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었다.

A씨는 정량적 요소(Leet성적, 공인영어성적 등)를 판단하는 1차 전형에서 어렵게 합격하여 2차 면접과정에 이르러도 ‘장애인이 공부 따라 가겠냐?’ ‘하루 13시간 어려울 것 같다. 학업량이 많아 비장애 학생들도 힘든 부분이 있는데 몸 상태가 가능하겠냐?’는 등의 질문으로 용기를 주지 못할망정 포기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년이 된 지금 여전히 로스쿨 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년 말 사법시험은 폐지되었고 로스쿨 제도만이 우리나라 법조계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로스쿨은 제도의 도입에 관하여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비롯하여 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실무적인 법조인 양성’을 도입취지와 정당성의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에만 급급하여 중증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보다는 비장애인들 위주로 지원자들을 선호하여 학생을 선발한다면 로스쿨은 그 도입의 정당성이 약화될 것이다.

학교입장에서는 중증의 장애인보다는 비장애인인 경제적·사회적 배려대상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학교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학교의 우열을 가리는 척도가 된다고 그나마 비장애인과 경증의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고 사회적 정의를 다한 것처럼 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제안을 하자면 경제적,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과 장애인 전형을 분리하여 선발하고 특히 중증의 장애인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법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법적 서비스를 하는 분야라면 로스쿨의 초기 도입 취지와 같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전문교육을 받고 일하면 좋을 것이다.

무분별한 평등의 기계적 도입이 아니라 당사자성을 가진 장애인들이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도록 보다 실질적이고 평등한 기회를 활짝 열어 주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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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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