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의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고 대의제 시행을 위해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은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학교의 반장에서부터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대표를 선출하게 된다.

장애계에서도 다양한 단체가 존재하기에 종종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지기도 한다. 이달 초 우연히 장애와 관련이 있는 두 단체의 선거를 연속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단체의 구성원이나 성격 등이 달라 선거 또한 다른 점이 많았지만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들이 있어 조금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이틀간 참여했던 선거 중 첫 번째는 지난 2월 2일 치러진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장 선거였다. 전국에 있는 직업재활 시설장들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를 고려해 대전에서 진행되었다.

이전에 한 번 언급했던 것처럼 장애인직업재활시설장들 중 장애당사자가 많지 않기에 장애당사자의 투표참여를 위한 편의제공은 기대하지 않았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조차 장애인의 투표참여를 위한 편의제공이 미흡한 상황에서 한 단체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이러한 편의 제공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임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투표가 시작되며 시각장애인 시설장의 경우는 투표보조인과 함께 기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안내되었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기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장애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선거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선거운동기간의 홍보활동이나 홍보자료 등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500여개 이상 되는 직업재활시설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홍보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인 시각장애인 시설장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점자홍보물 등은 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유권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거인쇄물에 점자음성변환용 코드 정도는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어떤 후보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홍보를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번번이 홍보내용이 담긴 이미지파일을 전송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시설이 극히 소수인데다 시각장애 당사자가 시설장인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그 유권자 수가 당락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사하는 한 표가 비장애인들이 행사하는 한 표보다 덜 가치 있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단 한명이라도 시각장애인이 선거에 참여한다면 이들도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신중히 행사할 수 있도록 최소한 입후보자에 대한 정보만이라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복지시설 시설장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아직도 그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해 '우리 애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발견하곤 한다. 어찌 보면 정겹고 살갑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여간 불편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런 표현을 하는 이들이 실제 자신의 시설에서 접하는 장애인들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장애인들이 과연 10대 청소년 이하의 사람들만 있을까? 또, 실제 자신의 자녀가 아닌 성인들에 대하여 애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십년 넘게 이런 저런 장애인복지시설들을 다니며 내가 본 바로는 4~50대 이상의 장애인들도 복지시설을 많이 이용하거나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비장애인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나 친척이 아닌 성인들에게 우리 애들 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남남이 자신을 우리 애들이라고 부를 때 불쾌해 하지 않을 성인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을 가진 시설장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이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고 직업재활 시설들을 대표하는 모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기대하기에 앞서 장애인복지 관련 기관이나 단체들 먼저 인식을 바꾸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시설들을 대표하기 위한 협회라면 그 대표자 선출 과정도 사회활동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고 장애인의 참여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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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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