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손들어 보세요, 손 내리세요, 자 이번엔 남자, 손들어보세요. 손 내리세요.” 이 질문들은 필자가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성교육 할 때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이다. 삼척동자도 자신의 성별을 아는데, 너무도 당연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발달장애인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자신의 성별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겠는가? 그렇다, 자신이 여자인지 혹은 남자인 모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중증의 인지적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들 중에는 자신의 성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가 “여자에요 남자에요?”라고 물으면 “남자”라고 대답하고, 또 “남자에요 여자에요?”라고 물으면 “여자”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바로 질문의 마지막 단어를 따라 말하기 때문에 한 번만 묻게 되면 50%의 확률 속에서 어떤 이들은 유식한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이들은 무식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왜 어떤 발달장애인들은 자신의 성별조차 모르는 것인가? IQ가 낮아서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어느누구도 말해주지 않아서인가?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인식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게 되는 본능적인 게 아니다.

이런 자기인식은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나 가족과 같은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고 살아왔는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남자애가 여자애처럼 울고 그래!”, “여자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으면 안 돼?” 등과 같은 말들을 우리는 자라는 동안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한 두 번은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나 자신이 여자인지 혹은 남자인지 인식하게 되고 또 여자나 남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은 살아오는 동안 여자 혹은 남자로서 대우받기 보다는 장애 정도가 약한지 혹은 심한지로 인식되어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부모가 발달장애아를 양육할 때 그 아이의 성별이 아닌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더 크게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발달장애 자녀를 딸 혹은 아들로 보기 이전에 삶의 전반에 걸쳐 많은 돌봄이 요구되는 장애아로서 더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런 인식은 발달장애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중발달장애인들은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피드백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자라 온 발달장애인들은 자연히 자신의 성별을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도 성교육을 통해 자신의 성별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다.

이런 앎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은 발달장애인들만이 아닌 모든 인간의 권리이다(교육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기 이전에 한 여성, 한 남성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을 갖는 일은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내가 여자인가 혹은 남자인가에 대한 인식 그 이상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 성교육의 가장 용이한 출발점은 그들이 여자로서 혹은 남자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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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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