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이는 인간이란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여러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는 규범(rule)이 있다.

규범은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그 사회 구성원들이 정한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 안에서 작동되는 많은 사회 규범들은 명시적이어서 분명한 글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구성원들 간에 암묵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규범들도 많다.

예를 들어, 낯선 두 사람 사이에는 침범하지 말아야 할 사적 공간이 있어서 서로 몸을 너무 가깝게 있지 말아야 한다거나 또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나이나 결혼, 임금과 같은 것들을 묻지 말아야 하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이런 암묵적인 약속을 알고 있고 또 여러 사회적 상황에서 이런 암묵적 규범을 지킴으로써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성의 영역에는 많은 규범들이 있는데 이 규범들은 명시적이기도 하지만 애매하고 암묵적인 것들도 많다. 그래서 성과 관련하여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매스컴의 뉴스에 올라오는 것이다.

오늘날 성과 관련된 규범 준수의 요구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은 성과 관련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람들이 성에 있어서 특정 규범을 어겼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알려준다.

우리는 사회에 존재하는 성 규범 덕분에 우리 자신을 잠재적인 성적 해악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규범은 그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동시에 제약시키기도 하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해 주는 기능을 한다.

발달장애인들, 특히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들은 사회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재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적으며 자신만의 제한된 관심과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몰두는 특성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고 눈 맞춤하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에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자신의 느낌이나 의사를 나타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발달장애인들은 그들의 장애를 이해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이들의 사회적 결함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들이 인사해야 할 때 인사하지 않거나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 자기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에서의 부적절성은 대개 관대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의 영역에서는 이들에 대한 이런 관대함이 점점 더 허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발달장애인들이 성적 영역에서 피해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이들이 성 가해자로서 법적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일은 발달장애인들이 성 욕망이 과도하거나 성적 일탈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과 관련하여 작동되고 있는 규범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지켜야 할 규범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겼을 때의 결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킬 수가 없다.

오늘날 발달장애인들도 성의 영역에서는 비장애인들과 다름없이 더 이상 면책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경찰서에까지 다녀온 한 발달장애인의 말처럼 “법이 쎄졌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들도 우리 사회에 작동되고 있는 성 규범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길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에 대해 분명히 배워서 성 규범을 지키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들도 다양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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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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