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동안 글방을 다른 분께 맡기고 37번째 이야기를 찾으러 갔던 제가 드디어 2018년, 그러니까 만 2년 만에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다시 반갑습니다. 노동자인데도 글 쓰고 연설 하러다니고 사진도 찍는 그 자폐성장애인 장지용입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일단 이 자리로 돌아왔으니 그 자리를 비운 2년간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전해드려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두번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난 2년간의 ‘생존 보고서’를 여러분들에게 보고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의 염려 끝에 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원에서 훈련받고 2016년 4월에 세 번째 취업이자 진정한 의미의 첫 민간기업 취업을 했고, 이 글을 쓰기 직전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퇴사했습니다.

했던 업무는 데이터 검수 같은 업무를 주로 보고 있었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여러 패턴의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어떤 데이터를 주로 검수했는지를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발령을 세 번이나 받았기 때문입니다.

간 회사는 여러분에게는 귀여운 라이언을 비롯한 카카오프렌즈 친구들과 여러분들도 매일 붙어사는 카카오톡의 그 회사, 카카오가 만든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링키지랩’이라는 회사입니다. 입사한 해에 바로 자회사형표준사업장에 대해 문화일보에서 보도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화일보에서의 대표 사례로 소개된 장지용씨는 바로 저를 말하는 것입니다.

링키지랩에서는 매일같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유형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만난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도 봤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장애유형을 만나다보니 장애인개발원 시절보다도 더 다양한 장애인들과 한솥밥을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9시 30분 출근/18시 30분 퇴근이라 여의도 장애인개발원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성수동에 있음에도 개발원 시절보다 약 15분가량 늦게 출발해도 지각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만, 가끔 운이 나쁘면 지각을 했었습니다. 세 번 경위서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하철 사고도 가끔 겪고 있지요. 최근에도 온수역에서 사상사고가 제가 출근할 때 발생해서 지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 생활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세 번째 직장 관리직원의 소개로 카카오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알게 되어서 그곳에서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글을 쓰는 곳이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 브런치, 외부에 하나, 그리고 이곳 총 4개입니다. 현재 개인 자서전을 쓰고 있는데 총 50챕터를 목표로 쓰고 있는데 약 30챕터 가까이 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학교 1학년 부분까지만 공개했습니다.

원래 챕터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는데 아는 출판업자분이 50챕터는 써야 300페이지짜리 책을 낼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훗날 책을 내면 공식 책 제목은 바뀔 수도 있지만 ‘어느 자폐인의 졸지에 프리퀄’ 이라는 프로젝트 제목을 붙였습니다.

왼쪽부터 김근상 당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주교(현재 퇴임), 필자 본인, 이경호 당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피선주교 (현 주교) ⓒ장지용

종교생활도 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신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의 성공회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도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가 무서워져서 못 다니다, ‘무섭지 않은 교회’에 도착한 곳이 성공회였거든요.

참고로 세상걷기 프로젝트로 유명한 이진섭-이균도 부자도 성공회 신자입니다. 제가 교단 소식지에 실린 것을 물어보니 사실이라고 인정까지 하셨습니다.

재미있게도 교회 어른 분들이 한 청년 교인을 책임져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장애를 가진 한 청년 교우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코치 잘 해달라는 것이었고, 실제로 저도 가끔 코치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자폐인들과의 교류도 어김없이 진행 중입니다. 저는 사실 2013년에 ‘estas’라는 자폐인 자조모임을 건설했는데, 약간 흐지부지하다가 2016년에 드디어 재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요즘은 월 1회 모임을 열고 있는데, 벌써 모임이 7명이나 모였습니다. 지난번에 ‘estas’에서 SBS 스페셜 관련 성명서를 낸 적이 있는데, 제가 일부 논리를 제공한 사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끔 ‘estas’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게요.

타이베이 101 전망대에서 바라본 타이베이의 야경 ⓒ장지용

지난번에 제가 대만여행을 하겠다고 공약을 했었죠? 사실 저는 빈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만 여행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가이드북, 그리고 대만 관광청 담당자들의 설명을 모아서 알차게 2016년 11월에 대만 타이베이 일대를 4박 5일에 걸쳐 15년 이상 호흡을 같이 한 아는 형과 재미있게 다녀왔습니다.

인상 깊었던 곳을 몇 가지 꼽아보면 대만 총통(대통령) 사무실 건물인 총통부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박물관인 국립고궁박물원, 지금은 서울에 있는 마천루가 더 높지만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마천루였던 타이베이 101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사온 대만의 보물인 취옥백채 모형은 사무실 제 자리에도 하나 갖다 둘 정도니까요!

사실 이제야 공개하는 사실이지만 저는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아직 진정한 의미의 개인전은 열지 못했지만 이미 진정한 의미의 개인전을 열 장소는 마음속으로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 마음만은 확정했습니다. 물론 진정 그곳으로 확정한 이유는 위치만큼이나 대관료가 장애인에게는 싸다는 장점도 있고 엘리베이터 접근까지 좋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확정한 이슈입니다.

감성 키우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진 촬영은 게을리하지 않고, 책도 많이 읽게 되었고, 영화도 챙겨보고, 심지어는 직장이 서울에 있다 보니 가능한 서울도서관 회원권으로 책도 찾아서 읽고 있는 등 문화생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깊은 문화생활은 역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핀란드 메탈 밴드 ‘나이트위시’의 사상 첫 공식 단독 내한공연을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전주 부분만 듣고도 들려줄 곡을 맞힐 정도로 아는 곡이 많이 나와서 기분이 최고였고, 이 공연을 보게 되면서 수백만 원의 돈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유럽까지 쫓아가서라도 보겠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난 2년의 시간을 다 설명 드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지만, 2016년과 2017년에 어떻게 살아왔었는지에 대한 삶에 대해 제가 ‘보고’드릴 수 있는 부분은 다 보고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지용이 다시 이야기하는 나 스스로 사는 이야기,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해 주세요. 더 재밌고, 유익하고, 알차고, 울림 있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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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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