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에게 발달장애인하면 순수한 사람, 지능이 몇 세 수준인 어린아이, 위험한 존재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인지 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비장애인이 상당히 많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니까 시설에 넣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았다. 어린아이라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훈육, 채벌을 명목으로 한 폭력을 당해왔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사회 속에서 관계를 즐기지 못하고 소외를 당했다. 인간 이하의 삶을 발달장애인은 견뎌야만 했다.

이런 인간 이하의 삶을 끝내고 발달장애인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와 권리보장을 목적으로 한 법을 만들 것을 주장했고 때로는 단식투쟁을 했다. 그 결과 2014년 4월 29일 ‘발달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1년 반 동안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작업 끝에 2015년 11월 21일 동법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7년 11월 발달장애인법이 시행 2주년을 맞았다. 과연 이 법을 시행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삶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필자로선 ‘그렇지 않다!’로 대답할 것 같다.

부양의무제 폐지가 안 된 점, 가족지원이 부족한 것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자 생각엔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자립생활 기반을 마련하지 않은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당시 위기발달장애인쉼터와 발달장애인 권익옹호 등에 대해 발제했었던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경기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서울특별시발달장애인지원센터 공동주최 전국발달장애인지원센터 권익옹호팀 세미나 전경.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이와 관련해서 위기발달장애인쉼터와 관련된 법 조항과 정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학대 피해를 당한 위기상황의 발달장애인이 긴급보호조치 및 적절한 지원을 통해 일상으로의 삶을 다시 살기 위해 의료기관이나 위기발달장애인쉼터로 발달장애인을 인도하라고 발달장애인법 제17조에 나와 있다.

그런데 법 17조에는 또한 위기발달장애인쉼터에서 발달장애인이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7일이고 대통령령(대통령이 하는 명령)이 정하는 이유에 따라 최대 7일을 더 머무른다. 그러니 최대 14일을 위기발달장애인쉼터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이후에는 원 가정이나 시설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학대는 원 가정이나 장애인거주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위기상황에 있는 발달장애인을 최대 14일만 위기발달장애인쉼터에 머무르게 하고 다시 학대가 발생한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니 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쉼터가 희망고문의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작년 5월 수면 위로 드러나 장애인과 장애계의 공분을 샀던 장애인거주시설 ‘남원 평화의 집’ 사건 CCTV녹화본들 ⓒ에이블뉴스DB

발달장애 특성 상 좀 더 긴 관찰과 치료가 필요해 쉼터 입소기간을 최대 4개월까지 연장하며 발달장애인 당사자 개인상황에 따라 입소기간에 유연성을 두도록 하고 쉼터생활 이후에는 지역사회로 발달장애인이 살도록 발달장애인법을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데 왜 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해야만 했을까?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작년 전국 지자체 장애관련 예산 분야별 평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장애인시설예산이 32.98%로 전체 예산 중 장애인시설 예산 비중이 1/3수준이며, 시설과 관련해서는 생활시설 예산이 65.17%로 생활시설의 비중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자체 생활시설 예산이 최근 3년 동안 34.96% 증가한 반면, 같은 시기 자립생활 예산 증가율은 18.6%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장애정책이 지자체에서 지역사회보다는 시설 중심으로 가 있는지를 여실히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시설에서도 또한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해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에 필요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데가 드문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체계적 자기옹호 체계가 부재함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라 본다.

즉 시설 중심의 예산 구조다 보니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갈 곳이 없을 수밖에 없다. 체계적인 자기옹호 체계도 국가차원에서 부재하다 보니 이런 요인들이 겹쳐 발달장애인은 쉼터에서 생활한 이후 다시 원 가정이나 시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14일 ‘장애인 학대예방과 피해장애인의 지원을 위한 실천연구대회’ 세미나 때의 모습들. 세미나 장의 전경(좌측), 쉼터는 자립생활기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성공회대 이복실 외래교수의 발표모습 ⓒ이원무

또한 쉼터를 생각해보면 육체적·심리적·정서적으로 상처를 받은 발달장애인이 쉬면서 심신치유와 동시에 자립을 지원하는 기능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단기보호시설의 형태로 쉼터를 운영하기에 쉼터는 보호역할에만 머물러 있다. 쉼터에서 발달장애인이 자립을 꿈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발달장애인법 제17조 4항에는 위기발달장애인쉼터의 운영주체를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정한다고도 나와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은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구조라 자립을 애시 당초 도모할 수 없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한편 장애인거주시설과 관련해 5개월 전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부모들이 스웨덴 장애인정책 연수를 다녀와서 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시설폐쇄법 입법 후 과감한 조치 단행과 개인별 지원체계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국가주도의 탈시설을 추진해 성공적인 탈시설 정책으로 갔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의 구체적인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과 정책이 없다. 즉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제5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 제2일째 행사 모습들. 행사 시작할 때의 공연(좌측), 피플퍼스트대회에 집중하고 있는 청중들(우측) ⓒ이원무

이러기에 제5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말로만 시설 폐쇄를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종로와 광화문 길가를 중심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자립생활 체계가 부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시설에서 성폭행, 금전적 착취 등의 인권유린을 당해왔다. 자립생활을 실제로 이룬 발달장애인은 과거보다 조금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아직도 거의 드물 정도다. 그래서 그 대회에서 외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구호를 열렬히 응원한다.

결국 요약하면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없고 이와 관련한 체계가 국가, 지자체 수준에서 사실상 부재한 상태나 다름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발달장애인법 제1조의 목적이 밝히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 촉진과 권리보호,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영위라는 것을 우리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라고 감히 장담하련다. 발달장애인법 제1조의 목적은 우리사회에서 실제적인 것이 아닌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분명히 말하련다.

‘탈시설-자립생활 없는 발달장애인법은 무용지물!’

이렇게 되지 않도록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발달장애인 등의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체계적인 자기옹호 체계, 지역사회 중심의 예산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 등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실행하도록 국가, 지자체에서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법 제1조의 목적을 선언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룩해 나가며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과 행복사회로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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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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