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연주하는 준 ⓒ최선영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는 쌀쌀한 바람을 타고 거리 곳곳에 스며듭니다. 가을의 아름다운 소리는 축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더 설레게 만듭니다. 긴 복도 끝에서부터 울리는 밴드부의 연주 소리는 마음을 움직이고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준 오빠 정말 멋있어”

“응 기타 천재래 초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배웠다고 들었어”

“저 오빠는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공부도 잘 하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까지...”

“제일 중요한 건 잘 생겼다는 거지”

“맞아 맞아”

밴드부 연주 소리에 가던 걸음을 돌려 음악실로 향한 1학년 여학생들은 기타를 연주하는 2학년 김준을 엿보며 소곤거립니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를 결성하고 그 친구들과 나란히 고등학교를 들어온 준은, 돈키호테 리더로 교내활동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인기 기타리스트입니다.

인근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뿐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남학생들까지 열광하며 그의 유튜브 동영상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1학년 축제 때 연주 한 동영상을 유튜브로 본 많은 학생들은 그의 연주를 직접 들으려고 김준의 학교 축제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의 환호 속에 멋진 음악과 연주가 울려 퍼졌고 선생님들도 박수를 보내며 칭찬해주었습니다. 김준의 밴드 돈키호테는 축제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기타를 들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준의 모습을 보며 고3이 되는 아들의 진로를 걱정하는 부모님은 잠시 기타를 내려놓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말합니다.

“준아 이제 곧 고3인데 공부에 좀 더 전념해야 하지 않겠니?”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지만 준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양보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시간을 줄여서라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테니 가장 행복한 시간은 뺐지 말아주세요”

부모님도 준의 그런 마음은 알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에 걱정이 앞세웁니다.

“저러다 다시 음악 하겠다고 하겠어. 야단을 쳐서라도 기타를 잠시 내려놓게 해야겠어”

“야단친다고 들을 나이도 아니고... 정말 걱정이네요”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은 부모님의 말들이 준은 싫었습니다. 엇갈리는 대화가 계속되자 관계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준은 부모님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부모님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만으로도 준에게는 힘든 결정이었는데 자꾸만 기타까지 내려놓으라는 부모님의 말은 야속하게만 들렸습니다.

“학원 끝나고 잠시 머리 좀 식히고 가자”

준은 답답한 마음에 친구 오토바이에 올라탑니다. 뺨을 스치는 가을의 깊은 밤바람은 새로운 쉼을 주는 짜릿한 휴식이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친구의 등 뒤에서 그 바람을 느끼다 보니 직접 몰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두 번 연습을 하고 오토바이 핸들을 잡았습니다. 기타를 연주할 때만큼이나 행복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는 준 ⓒ최선영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사람들 틈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친구들과 기타를 연주하며 접어야 했던 꿈을 잠시나마 펼쳐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숨 쉴 틈 없는 삶에 작은 산소 역할을 하는 그 시간이 준은 좋았습니다. 가을의 깊어가는 그 밤에도 준은 그렇게 행복을 연주하고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신호를 보지 못한 음주운전자의 차가 준의 오토바이를 덮쳤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준은 크게 다쳤습니다.

팔과 다리 어느 곳 하나 온전한 곳 없이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사고가 남긴 후유증은 몸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마음에도 삶에도 그 후유증은 준을 괴롭히며 따라다녔습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준에게는 견딜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준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기타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이어지는 수술과 재활치료로 수능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1년 가까이 그렇게 지내며 준의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준의 부모님 마음도 지옥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준아... 미안해”

아버지는 준의 사고가 자신의 탓 인양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준은 자꾸만 그 원망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타를 볼 때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움직여보려고 애써보다가도 금세 포기해버립니다. 재활훈련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 몸으로 뭘 하겠어”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되더라도 꼭 자신의 숨겨 둔 꿈을 언젠가는 이루겠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준은 행복했습니다. 사고는 준의 팔과 함께 그 행복도 가져가버렸습니다.

준은 해마다 가평 자라섬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준이 대학생이던 사촌 형을 따라 처음 록과 재즈라는 음악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멋진 기타 연주를 보고 그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언젠가는 멋진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꿈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록 재즈페스티벌은 열렸습니다. 하지만 준은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밴드부로 활동하던 친구들은 수능 준비로 참석하지 않았지만, 준은 꿈을 품게 한 그곳을 꿈을 잃어버린 체 갈 수가 없어서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준은 꿈을 잃은 체 공부에 전념해야 합니다. 다른 꿈을 찾기 위해 준은 고민해야 합니다.

행복을 주는 통로로 평생 함께 하고 싶었던 기타...

그 기타가 없는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준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10월의 끝자락...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준은 아버지의 뒤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

“으... 응 좀 더 자렴”

아버지는 괜히 잠을 깨운 것 같아 얼른 방을 나갑니다.

“네 다녀오세요”

늘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준은 죄송한 마음에 빨리 공부에 전념하려고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준의 침대 옆에 놓여있는 아침 신문이 보입니다.

“있다 볼 텐데... 왜 여기 두고 가셨지?”

준은 평소와 달리 신문을 침대 옆에 두고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다 한 장 한 장 펼쳐 보았습니다.

손가락 신경 잃은 기타리스트 “그래도 기타를 뺏어갈 순 없어”라는 기사에 준은 얼음처럼 잠시 몸이 굳어버립니다.

천천히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준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타를 바라봅니다.

마이크 스턴의 연주하는 모습 ⓒ최선영

마이크 스턴은 가평 자라섬 록 재즈페스티벌에서 열정적인 멋진 부대를 펼쳤습니다. 그가 혼자서는 기타를 메는 것도 힘들다는 사실은 그곳에 온 사람들은 아마 몰랐을 것이라고 합니다.

작년 사고로 양팔 골절 등 중상을 입고 사실상 연주자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시련을 딛고 재활훈련을 하며, 다시 기타를 들기 위해 쏟은 노력에 대한 기사를 보며 준의 심장은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픽을 들 힘이 없어 손에 가발 고정용 풀을 바르고 테이프를 붙인다는 기사에 준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

손에 풀을 바르고 기타를 연주하는 마이크 스턴의 말입니다.

“난 기타를 사고로 빼앗긴 게 아니라 내 스스로 포기한 거였어”

준이 사고가 났던 그 잔인한 11월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날의 고통이 밤을 괴롭힐 때면 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쫓겨나 눈을 뜨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11월이 되었지만 준을 괴롭히던 그 밤은 더 이상 준을 찾아오지 않습니다. 10월의 끝자락에서 만난 마이크 스턴의 기사를 통해 준은 포기했던 기타에 대한 열정을 다시 되찾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감사해요”

“미안하다 준...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말하면 너무 늦은 거니?”

“아뇨 저 아버지 말씀대로 공부 더 열심히 할 거고 이제 기타도 다시 잡을 거예요.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시련 없는 인생은 빛날 수는 있어도 꽃이 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제 제 인생에 빛을 만들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고 싶어요. 사고는 누구의 탓도 아니었어요. 제 인생에 찾아온 그 불청객은 저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다듬어주는 도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시간을 낭비해버리고... 걱정 안겨드렸던 거 죄송해요”

아버지는 준의 어른스러운 말에 마음이 뭉클거립니다. 어깨를 토닥여준 아버지는 준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아버지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 우리 함께 기적을 만들어보자꾸나”

다시 기타를 잡고 기적을 꿈꾸는 준 ⓒ최선영

준이 다시 기타를 잡은 건 포기해버린 꿈과 삶을 다시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준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생겼지만 준의 말대로 시련을 통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그 인생 속에 기적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보려고 합니다.

다시 기타를 연주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이제 준은 절대 꿈을 포기하거나 삶을 접어버리는 어리석은 낭비는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마이크 스턴의 말을 기억하며 11월의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

준에게 마이크 스턴과 같은 열정이 만들어 낸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열정이 만들어 낸 기적이 매일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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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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