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는 시 제목으로도 사용하고, 드라마 제목으로도, 영화 제목으로도, 뮤지컬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최근 SBS에서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잠든 사이’는 꿈꾸는 시간이기도 하고, ‘멈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꿈을 현실로 꾸는 예지력을 가진 사람과, 닥쳐올 미래를 보는 사람,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세 사람들이 등장한다. 꿈의 등장인물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사건은 다른 시간 속으로 흘러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중증 척수마비 장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병동에서 사라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또 어떤 드라마는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신이 잠든 사이’ 또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거의 10년마다 나타나는 단골 드라마 제목이다.

잠든 사이란 제목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을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소재를 선택하기가 쉽다. ‘식물인간’, ‘기억 상실’이 소재로 쓰인다. 2011년에 120편으로 편성하여 방영한 ‘당신이 잠든 사이’(마주희 극본)에 나타난 장애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먼저 줄거리를 정리해 보자. 병원 영양사로 일하는 오신영(이영은 분)은 식품회사 지점에서 일하는 남편 윤민준(최원영 분)과 함께 퇴근을 하다가 팔이 골절되는 교통사고를 입게 되는데, 가해자는 뺑소니를 친다. 가해자 고현성(오윤아 분)은 민준이 과거 자신의 연인임을 알고 놀라 가버린 것이다. 고현성은 신입 병원 산부인과 의사이고, 오신영은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임산부이다.

오신영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고현성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지만, 고현성은 돈으로 보상하려는 사무적 태도를 취한다. 오신영은 의사의 실력을 믿고 주취의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고현성은 재벌며느리로 윤민준과 과거의 연이이었으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결혼 반대에 부딪혀 재벌가에 시집을 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벌 사돈의 배경을 이용하여 사업을 확장해 가고 딸을 이용하여 부도도 막게 된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민준을 배신한 것이다.

현성의 남편 채혁진(이창훈 분)은 고현성이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사건이 생기자, 민준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기로 한 것을 변호사로서 눈감아 주고, 이 사건을 계기로 현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변호사를 그만 두고 아버지 회사의 상무로 일한다.

현준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새 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려 거리에서 죽게 되고, 새 어머니와 이복형제 동생 사이에서 힘겨워하는데, 자주 마찰을 빚는다.

혁진의 새 어머니 장여사는 오신혜라는 아이를 낳아 심장수술비가 없어 보육원에 버리고 술집에서 일을 하다가 혁진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친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혁진을 모함하게 된다. 비리 범죄자로 몰기도 하고, 여자를 부쳐 바람을 피우게도 만든다.

신혜는 보육원에서 자라 신영의 집에 입양되어 자라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하다가 어머니 장여사를 찾아갔으나 차마 딸이라고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준혁을 유혹하라고 돈을 받게 된다.

오신혜는 자신을 몰라보는 어머니 장여사를 원망하며, 복수를 꿈꾸게 되고, 자신이 딸이라는 것을 숨기고 보육원에 버린 아이와 준혁을 모함한 일들을 가지고 장여사를 협박하게 된다. 그리고 준혁의 아들 환희가 현성이 과거 남자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일을 가지고 현성을 밀어내고자 이혼을 요구한다.

현성은 혁진의 바람 따위는 초월하고 살지만, 자신의 약점에 대하여는 아들이 상처를 받게 될 것을 염려하여 괴로워한다. 현성이 신혜의 협박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신영의 분만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로 쌍둥이 아이가 죽고, 신영도 자궁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1년간 식물인간이 된다.

식물인간이 되어 더 이상 가망이 없고 곧 죽게 되어 마음의 준비를 가족에게 하라고 하는 시점에 민준과 현성은 다시 사랑에 불붙게 되고 아들 환희와 강제결혼, 신혜의 협박 등이 사랑에 불을 붙인다.

장기 식물인간으로 대리이혼을 하게 된 신영은 다시 살아나게 되고, 준혁이 자기 회사의 식품개발부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자주 만나게 된다.

한편, 이혼한 혁진이 신혜와 동거를 하게 되는데, 악취가 나는 애라는 저주와 비하의 말을 장여사에게 듣고도 참고 지내던 신혜는 현성이 너 때문에 의료사고를 내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혁진과 정리하고 자신이 버려졌던 보육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게 되고, 신영은 동생 신혜의 어머니가 장여사라는 것을 밝히고 만나게 하는데,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신혜는 엄마를 만나 용서를 하고 수술할 마음을 먹었으나, 교통사고가 날 순간 장여사를 구하고 죽게 된다. 이 일로 장여사는 자신의 허망한 꿈을 버리고 딸이 자란 신영의 집에 머무른다.

신영은 8년 전 아버지가 사업투자 사기를 당한 후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동네에서 사기꾼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가해자가 현성이라는 것을 현준은 현성의 전화번호에서 목격자라는 이름을 보고 알게 되고 이혼한 민준이 간경화증 말기로 사경을 헤매게 되자 원수 같은 민준에게 간이식을 해 주고, 많은 우유곡절 끝에 진정한 사과를 받고 아버지 사건도 합의를 해 주고, 현준도 반성의 시간을 가진 후 신영과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했다. 신데렐라 버전이라는 점과, 자매가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다. 그리고 원피스나 블라우스, 가디건, 명품백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패션이 기업의 협찬으로 유행을 하여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재벌은 이런 협찬과 광고를 받기에 편리하고, 제한된 인원에 다양한 스토리를 엮기에 교차중복의 사랑이 되기 쉽다. 그러나 결코 성공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장애에 관한 이야기가 깔려 있다. 여성장애인 임산부가 자연분만을 하도록 현성이 시도하여 사례 발표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뇌병변 1급 장애인 부부는 쌍둥이를 낳고 화재로 사망하자, 보육원에 아이가 맡겨졌으나 부모가 장애라는 이유로 입양을 연거푸 실패한다.

신영이 불임여성이 되어 민준과 헤어졌으나 법적 이혼이 정리되지 않아 신혜가 자란 보육원에서 쌍둥이를 입양하고자 하는데, 입양을 위해 민준에게 정식 이혼절차를 다시 밟아줄 것이니 입양을 위해 잠시 남편 역할을 부탁한다.

겉으로는 상관없는 척하지만 현성은 질투를 느끼고 왜 반지가 없느냐는 질문을 하고, 남편과 함께 부부로 기사가 나게 하여 동네 망신을 시키는 등 기사 인터뷰에서 모함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뇌병변은 유전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신영이 식물인간에서 재활하여 사회복귀가 되는 과정도 보여준다. 그리고 민준이 간장애인으로 위기에 처하자, 이식적합자인 신영은 끈질긴 민준 가족의 설득에 오히려 화가 치밀지만 아들 환희와 민준이 자신의 집 앞에 와서 기절한 상태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

냉철하고 도도한 현성이 사건이 생기면 돈으로 보상하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진정한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용서를 해 준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지만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이는 정치인이나 세태를 비꼬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신영은 자신이 사고를 당하자 누구나 그런 일이 불시에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장애인 가족의 고통과 버려진 사람들의 한과 품은 독도 다루고 있다.

한은 아픔을 가슴에 묻는 것이고, 독은 복수를 위해 날을 세우는 것이다. 이 둘을 합쳐 르상띠망이라고 한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은 모두 르상띠망을 가지고 있다. 현성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듯이 독으로 나타내고 신영은 결국 진실은 이긴다는 한으로 간직하고 이를 수용한다.

현성은 의료사고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법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말한다. 현성은 자기의 양심을 털고자 식물인간 상태인 신영에게 양심의 고백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하듯 하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진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할대로 해 보라고 버티지만 만나서 유도한 대화를 녹음한 것을 언론에 터뜨려 버린다. 진정한 사과를 하면 용서하려 했지만 끝내 거부당하자 진실을 밝히는 방법으로 유도신문과 녹음과 언론플레이를 이용하게 된다.

신영의 아버지가 노숙자로 사망한 사건으로 민준은 현성이 대신 벌을 받지만 오히려 전과자로 낙인되어 배신을 당하고, 현성이 사건의 사진과 신영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자신이 신영 아버지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은폐하려 한다. 이를 안 혁진이 자수와 고백을 권하지만 현성은 이를 거부한다. 낌새는 있지만 증거가 없는 신영은 양심의 가책이 법보다 무서운 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성의 모함으로 냉동실에 갇혀서 혁진과 민준이 구해준 후에 신영은 모함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로 신영은 현성에게 발을 저리게 하여 법이 아닌 양심의 벌을 내린다.

의료사고의 양심의 벌과 비밀은폐가 오히려 증거가 되어 막다른 코너에 몰리자 현성은 의료사고는 신혜의 협박으로 인한 정신불안정이라고 변명한다. 부정하고, 변명하는 책임의 문제가 심리적으로 드라마는 다룬다.

신영의 입장에서는 남편도 빼앗기고, 아기도 빼앗기고 아버지도 현성에게 빼앗긴 셈이다. 장애라는 상실과 가족의 상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관계를 철저하게 구조화한다. 그러나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거짓은 어딘가에 허점을 가지고 있고, 퍼즐은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 사랑의 맹목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합리화하는 대사도 자주 등장한다. 결국 사랑하는 남편의 간이식이 필요하자 모든 자존심을 포기하고 절규하며 진정한 사과를 하게 된다.

변명은 모함을 부른다. 의료사고로 죽은 쌍둥이 납골당에서 민준과 신영이 만나게 되고, 이를 미행한 현성이 질투로 다투다가 납골함을 깨뜨리고도 실수이고 미안하다고 했으니 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지만, 신영은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진정한 용서는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른 뺨을 맞고 왼뺨을 내어주면 진정한 미안함을 갖게 만드는 사랑 방식이다. 이 드라마는 신앙처럼 믿음을 강조한다. 참는 것이 결국 승자가 된다. 장애도 울분을 토하거나 독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인정하고 참고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장애인에게 탓하기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르상띠망을 간직한 장애인에게 사회의 억압은 사회가 먼저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감수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권리를 보장할 때에 진정한 행복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얼마나 불행한지를 배우자 선택과 대리이혼에서 보여준다. 120편이라는 장편만 아니라면 장애인식개선 교육 자료로 매우 우수한 교과서적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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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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