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초인 10월 2일 보건복지부는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기관을 선정하고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에이블뉴스 10월 2일자 참조). 올해 말부터 시작되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건강권법)’에 따른 조치이다.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에 치명적인 장기입원(2년 이상)과 잦은 병원 이동의 재활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보장하고 조기 일상복귀 및 지역사회 재활서비스와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등 재활의료서비스가 필요한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을 이 시범사업을 통해 모색한다고 한다.

뇌질환과 척수손상의 중추신경계 장애와 근골격계 질환, 절단 장애의 4가지 질환으로 재활병원시범사업이 진행된다. 특히 집중치료와 사회복귀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척수장애인의 한사람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이 선정과정을 지켜 본 당사자로서 기대와 함께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척수장애인과 같은 중도장애인의 재활은 의료적 재활뿐만 아니라 심리적, 직업적, 가족지원, 사회적 재활 등 종합적인 재활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시범병원의 필수 지정조건인 진료과목, 시설, 인력, 장비 등을 보면 의료적인 재활에 치중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기 사회복귀’가 아무런 준비 없이 퇴원만을 종용하고 이를 평가의 잣대로 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준비 없는 조기 퇴원은 오히려 독이 되었음을 그간 많은 척수회원들을 대하면서 몸소 느껴왔기 때문이다.

아직 구체적인 평가방법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지만 퇴원 이후의 생활을 추적하도록 모니터링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동료상담은 사회복귀의 기본요소이므로 이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 한다. 사회복귀 훈련을 위한 병원 밖 다양한 활동에 대한 지원과 확대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와의 연계, 특히 장애인단체와의 긴밀한 협조가 중요하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복귀는 그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입원 초기부터 환자가 아닌 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준비되도록 당사자도 적극 참여하는 병원생활이 되어야겠다. 시범사업이니 만큼 기존의 재활시스템과는 차별화된 프로그램들이 선도적으로 수행되고 평가되기를 희망하며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척수장애인들의 사회복귀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가족의 격려이다. 그러나 현재 가족이 간병을 전담하는 시스템으로는 당사자의 자립에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시범사업 기간동안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통하여 가족과의 독립도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족의 삶이 증진되어야 당연히 장애인의 삶도 긍정적 발전 된다. 시범 사업안에 간호간변통합서비스를 적극 지원하거나 간병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여 가족의 부담을 경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업재활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는 사회 참여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장애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척수장애인은 장애 이전의 근로경험이 퇴원 후에 바로 연결이 되도록 직업상담 등의 동기부여를 촉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원 직장 복귀를 기본으로 하거나 학업으로 복귀하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셋째, 동료상담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척수장애인의 동료상담은 협회가 실시하고 있는 ‘정보 메신저’ 사업을 통해 전국의 재활병원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병원의 환자들은 결국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이 서게 마련이다. 양질의 동료상담이 이 시범사업과 연계되도록 시스템화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라.

재활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롤모델이 중요하다. 이론적인 롤모델이 아니라 실질적인 롤모델을 말한다. 만일 담당의사가 장애인이라면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이라면 병원생활이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이번 시범병원에서 해야 할 중요한 시도이다.

다섯째, 지역사회로의 연착륙이 중요하다.

병원보다는 지역사회로의 안착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준비가 되지 않으면 사회적 입원을 피할 수가 없다. 입원 초기부터 퇴원할 집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한다. 돌아갈 집이 없는데 퇴원할 용기를 낼 수는 없다. 집수리 지원과 임시 거처할 집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활동지원제도와의 연계, 보조기기 지원, 이동에 대한 사전 훈련도 중요하다. 퇴원 후에 거침없이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회복귀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여섯째로는 또 다른 사회복귀훈련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병원에서 사회복귀 훈련을 전담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이 시범사업과 동시에 시작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의료시스템은 병원 안에서의 활동에 집중되고 있다. 사회복귀는 병원 밖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즉 병원에서는 의료적 재활에 집중하고 사회복귀는 복지파트에서 집중하는 이원화가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는 적합하다.

그동안 척수협회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바 있는 일상홈은 병원 밖에서의 집중적인 사회복귀훈련의 새로운 시도였다. 이 일상홈의 전국적인 확대와 척수장애인 전문복지관을 신설하거나 한국척수센터(가칭)를 설립하여 복지차원에서 지역사회복귀를 전문화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기존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할 이유가 없다. 이번 시범사업이 대한민국의 중도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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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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