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달리는 구급차. ⓒ최선영

뜨겁게 달구어진 도로를 거칠게 내달리는 네 개의 바퀴와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구급차 안의 다급함을 거리 곳곳에 남겼습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아내 영순의 손을 움켜잡은 철민의 손이 심하게 떨립니다

예정일이 20일이나 남은 영순은 갑자기 찾아온 진통으로 병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15분이면 도착하는 그리 멀지 않은 병원 가는 길이 멀고 느리게 느껴질 만큼 진통이 심해집니다

목까지 차오른 영순의 깊은 숨소리는 철민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듭니다

분만실로 옮겨진 영순은 힘을 다해 아기를 만나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의사의 말에 영순은 온 힘을 기울여 보지만 아기는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분, 1시간... 영순은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마저 희미해지려고 합니다

“영순아 힘내 정신 차려”

절규에 가까운 철민의 외침에 감기려던 영순의 눈이 떠지고 땀에 젖은 그의 손을 느끼는 순간 다시 힘을 냅니다

“응애~응애”

힘겨운 시간의 끝을 알리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조금 전까지의 모든 고통을 미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아들입니다”

아들 민우는 대를 이어야 하는 장남 철민과 그 가문에 주는 그해 여름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이제야 네가 사람 구실 제대로 했구나”

시어머니의 말에 영순은 그동안의 설움이 북받쳐 눈물을 흘립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온 지 2년...

눈만 뜨면 아들 낳아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말...

요즘 세상에 종갓집 맏며느리니.. 대를 이어야 한다느니 그게 다 무슨 소리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 거려니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과 함께 보내는 그 말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가 그동안의 모든 설움을 씻어주었고 시어머니를 향한 서운함마저도 잊게 했습니다

3대 독자 민우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커가는 듯했습니다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민우는 목 가누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몸을 뒤틀며 이유식을 먹이면 잘 받아먹지 못하고 음식을 자꾸만 흘립니다

아이가 너무 느리게 발달하는 것 같다는 그들의 의견에 병원은 뇌병변 장애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시어머니와 아기를 안고 있는 영순. ⓒ최선영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시어머니는 그 충격의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영순에게 돌립니다

대학 2학년 어린 나이에 철민을 만나 사랑이라는 늪에 빠져 결혼이라는 새 옷을 입고 해보지도 않은 살림을 꾸역꾸역 눈물 뿌려가며 배웠습니다

신혼여행 다녀온 그날부터 빨리 손자 봐야 한다는 재촉을 받다가 겨우 얻은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말은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죄인이 된 것처럼 죽은 듯이 시어머니의 모진 말들을 그대로 다 받아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민우를 위해 힘을 내고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는 영순을 향해 시어머니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찢어져 너덜거리는 그녀의 가슴에 아물 시간도 주지 않고 상처를 내고 피가 흐르게 했습니다

며느리 잘못 들여 병신자식 얻었다는 말에 영순은 오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병신자식 어떻게 키우나 두고 보라는 말을 마음으로만 수백 번을 내뱉으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어눌해서 엄마만 알아들었지만 민우는 책을 읽어주면 그 책의 내용을 잘 정리해서 엄마에게 다시 들려주기도 하고 동화의 결말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민우만의 동화를 쓰기도 했습니다

병신자식 고만 챙기고 둘째를 낳으라고 볶아대는 매일 반복되는 시어머니의 성화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켜보는 철민도 지치고 마음이 병들어갔습니다

민우가 5살이 되던 해 철민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분가해서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철민은 영순과 민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학교를 입학할 즈음 민우는 어눌하지만 의사소통도 자유로워졌고 아주 많이 힘들지만 혼자 글씨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여전히 죄인 취급했고 민우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민우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마음에 큰고모 결혼식에 민우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해서 시아버지와 많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장손인데 왜 못 오게 해”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이 더 저러는 거예요 당신은 잠자코 계세요”

“당신이나 좀 그만하시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엄마 제발 좀 그러지 마세요 언니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하시면 안되죠..."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 힘든 상황에서 시어머니의 모진 말과 따가운 시선은 영순을 더 힘들게 했지만 그녀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아버지와 민우 고모들의 배려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보며 말하는 민우. ⓒ최선영

“할머니 제가 부끄러우세요? 제가 훌륭한 사람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게 해 할게요 그런데 할머니 장애를 가졌다는 건 부끄러운 게 절대 아니에요 ”

가뿐 숨을 내쉬며 할머니를 향해 건네는 민우의 말에 할머니도 민우 앞에서만큼은 더 이상 싫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 민우를 고모들은 많이 사랑해줍니다 휠체어를 태워 동물원에도 가고 늘 멋진 민우라고 말하며 격려해 줍니다

민우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작은 고모가 결혼을 합니다

2년 전 결혼한 큰 고모는 아직 아기가 없어 고민인데 작은 고모는 결혼을 하고 바로 아기를 가집니다

큰고모가 결혼하고 2년 동안 아기가 없자 시어머니는 더 이상 둘째를 낳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작은 고모 아기가 태어나던 날... 집안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아기의 한쪽 눈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모질게 해서 천벌받았다고 생각하지?”

영순에게 던진 시어머니의 말이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합니다

“어머니...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제가 고모가 힘든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어머니라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영순은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모진 말로 답을 던졌습니다

작은 고모는 씩씩하게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야 한쪽 눈이 정상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씩씩한 마음으로 민지를 밝고 예쁘게 잘 키워냈습니다

민지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민우의 손과 발이 되어 오빠를 도와주었고 두 남동생을 엄마 이상으로 잘 돌보는 맏딸이었습니다

민우는 장애에 대한 할머니의 편견을 보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를 들어갑니다

수석 졸업을 하고 대학원을 거쳐 박사과정을 공부합니다

논문을 준비하는 그에게 급하게 전화벨이 울립니다

3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영순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시어머니. ⓒ최선영

시어머니는 안간힘을 다해 영순을 향해 입술을 벌립니다

영순이 귀를 가까이 가져가자 시어머니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고맙다... 우리 장손 잘 키워줘서... 고맙다...”

영순은 그 순간 시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질게 살았던 시어머니의 삶...

집안을 생각해야 하는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그 자리가 어쩌면 그녀를 그렇게 모질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에 그동안의 모든 묵혀둔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쏟아버립니다

민우는 할머니가 평생 가지고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이제야 버리시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세대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의 가시 돋친 시선을 변화시키는 일에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마지막 논문을 정리하고 학생들 앞에 섭니다

그는 많은 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그의 선한 영향력이 편견의 벽을 허무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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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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