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조금씩 나빠지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이 화려한 편집기법들을 이용해 빠른 화면전환 위주로 구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거기다 먹고 살기 바쁜 요즘 일이 많거나 신경써야 할 것들이 있으면 뉴스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지난 광복절부터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 달걀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들었다. 달걀이 어떻게 되었길래 사람들 입에 저렇게 오르내리나 싶어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이른바 ‘살충제 달걀’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평소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까닭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17일 공문을 하나 받았다. 제목이 ‘급식 식재료 계란사용 자제 권고 및 향후 조치사항 전파’라는 것으로 우리 시설에서 종사하는 장애인근로자들과 종사자들에게 이번 계란 사건과 관련하여 유의할 사항들을 교육하고 그 교육 결과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지 불과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 이러한 정부차원의 대응이 이루어진 것이 뜻밖이었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런 빠른 대응은 없었던 것 같다. 여하간 이 공문을 받고 근로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을 준비하며 이 것 저 것 생각해 보니 걱정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리 시설에 종사하는 근로장애인들은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이다. 물론 잔존시력 활용이 잘 되는 사람들의 경우는 비장애인들이 하는 것처럼 집에 있는 달걀위에 찍혀 있는 표기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문제가 된 달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달걀 위에 표기된 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달걀 위에 이런 것이 일일이 다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달걀에 표기된 출하지역번호 ⓒ조봉래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근로장애인들에게 교육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안전한 식생활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각장애로 인해 뉴스나 신문기사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이기에 사건과 관련된 보도들을 토대로 달걀과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생겼고 상황이 어떠한지 안내하고 달걀 섭취를 자제해 줄 것을 권유하는 내용도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달걀들에 표기된 출하지역 번호들을 안내하는 것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인들이나 활동보조인 등을 통해 이 내용을 확인해 줄 것을 당부하는 정도가 그나마 최선일 것이다.

얼마 전 캔맥주와 탄산음료 이야기를 하며 식품의 유통기한 등에 대한 칼럼을 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달걀 사태를 보며 출하지역 표기처럼 식품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소비자가 알아야 할 정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그만큼 식품 안전과 관련해서 더 큰 위험들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처럼 먹거리를 자급자족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식품을 대량 생산하는 사회에서 이번 달걀 사태와 같은 일들은 또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고령자들도 지금과 같은 식품의 정보 표기방식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제공할 정보라면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탄음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아내보다 훨씬 높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일찍 하늘나라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을 수 있기에 노후자금을 더 많이 모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비록 농담이지만 이번 달걀사태와 같은 일을 볼 때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내 이야기가 현실이 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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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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