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평가는 장애등급평가와는 의미가 다르다. 등급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장애인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평가과정이다.

장애평가는 장애복지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사고와 산업재해에서의 보상, 국민연금과 상해보험 등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평가이다.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애평가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복지서비스의 사정에서 서비스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판단기준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장애평가는 복지전문가나 보험전문가가 할 수 없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업무라고 대한의학회에서 2016년 10월에 발간한 “장애평가기준과 활용”이라는 연구보고서 발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의사와 복지전문가와 보험 전문가가 함께 협업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고유한 업무라고 한 것은 장애평가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며, 절대로 다른 전문가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다.

장애를 가지게 되어 환자로서 처치를 해 주기 위한 평가라면 의사의 고유한 업무라고 할 수 있으나, 보험적용이나 보상의 문제, 심지어 복지를 위한 서비스 제공에서의 장애평가까지도 의사의 고유한 업무로 선언한 것은 의사의 영역이 장애와 관련된 모든 영역이라는 점에서 맫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장애판정이 아니라 장애평가이기에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보상이나 서비스의 제공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전반적인 사정행위라는 점에서 의사만의 업무영역이라고 한 것은 의료가 마치 인간의 삶을 모두 책임지고 판단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장애평가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인가? 과학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어야 하고, 객관적인 것이라면 누구나 수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장애평가는 통계적인 것이고, 합의에 의한 약속인 것이며, 이익을 최대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차선의 방법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1960년대의 낡은 기준을 가지고 법원에서 보상소송의 판단 기준으로 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시대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며, 새롭게 만든 기준 역시 현재에서 최선인 것이지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다.

2007년 복지부에서 대한의학회는 장애평가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받아 KAMS(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 Guides for Impairment Evaluation)라는 장애평가 기준을 연구해 왔는데, 2011년 발표한 연구결과는 법원에서는 보상기준의 개정판으로 사용가능성이 높아 대법원에서 시범적용을 고려한 바 있으나, 복지부에서는 장애판정을 대체할 기준으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적용을 보류한 상태였다.

이에 대한의학회는 다시 수정 작업을 통해 장애판정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KAMS를 다시 이슈화하여 복지에도 적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최소한 의사들이 만든 평가기준이므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장애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KAMS는 장애를 기능상실로 보고 몇 퍼센트의 기능을 상실했는가를 따진다. 즉 100점이면 완전한 건강상태이고, 0점이면 사망 상태이므로 50점이라면 50퍼센트의 기능이 죽은 사람이 된다. 이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의 숨을 쉬는 한 장애를 불문하고 완전한 한 인간이라는 완전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한의학회는 이번 기준안도 완벽할 수는 없으나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자찬하였다. 이는 차선임을 인정하는 말로 과학적이거나 체계적인 것을 스스로 부정한다.

상지와 하지 장애의 기준을 보완하고 뇌신경계의 불합리한 기준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여 합의안을 만들었다고 대한의학회는 밝히고 있는데, 이 역시 합의를 한 것이지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합의란 이견이 있음에도 누군가는 양보 또는 주장을 포기한 것이다.

학회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기득권자들의 정치에 의해 합의된 것이라면, 특히 장애평가는 의학적 전문가로서의 활동이라기보다 정치적 결정일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의료인 전문가로 구성되었고, 자문진에 법원이나 국민연금, 보험사 관계자가 참여하였으나 장애복지 분야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애인개발원과 보건사회연구원이 모의적용사업자로 참여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보상 차원의 평가가 아니라 전반적인 장애인의 평가에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KAMS는 장애평가가 아니라 손상평가임에도 말이다.

장애 유형은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상의 15개 영역 외에 내분비장애와 종양형랙장애를 기타로 추가하여 16개 영역으로 하였다. 그리고 정신적 장애 중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발달장애로 하지 않고, 자폐성장애만을 발달장애로 보았다.

대한의학회 분류로는 비뇨생식기와 소화기관 장애를 세분화하지 않음으로써 14가지의 장애 유형으로 다시 구분하였는데, 이를 ICF분류의 8개 영역과 미국의사협회의 17개 영역과 비교표로를 제시하였다.

이 표에서 중추신경계장애를 ICF에서 정신기능장애와 연결함으로써 척수장애나 뇌병변장애는 신체장애가 아니라 정신적 장애와 같은 것처럼 오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장애인등급은 사람에게 붙이는 등급이므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복지등급이라고 하였으며, 노동상실률과 경제적, 환경적, 복지욕구 등을 포함하여 10등급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 장애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모두 나열하고 그 현상들이 고루 나타날 경우에 복지등급이 높게 되도록 함으로써, 한 가지의 심각한 증세는 매우 불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추신경계 장애라면 언어장애, 발작, 일상생활동작, 의식상태, 감정 및 행동장애 평가 등에서 고루 점수를 받아야 중증장애로 인정될 수 있다.

의학적 판단을 위한 검사항목은 더욱 늘어나 판정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해되기 어려운 항목들도 있다.

성기능장애와 후각장애가 포함된 것은 바람직해 보이나, 정신장애의 경우 난폭행동을 하면 75퍼센트 장애, 단순 업무에 지장이 있으면 30퍼센트 장애로 본다든가, 자폐성 장애판단에 지능으로 판정하며 지능지수가 50미만이면 72퍼센트 장애로 판단한다. 자폐성이 아닌 지적장애의 경우 지능지수가 34이하이면 68퍼센트의 장애로 판단한다.

광각이 없는 시각장애인은 100퍼센트 장애로 인정되지만, 95데시벨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50퍼센트의 장애로 인정된다. 이런 조항들은 장애 당사자로 하여금 장애 유형별 형평성의 시비가 생길 수 있다.

한편 미국의 통증의학 전문가 초프라 교수는 통증에 대한 판정기준이 매우 협소하여 CRPS(복합통증증후군)의 경우 장애판정을 받을 수 없으며, KAMS는 미국의사협회 장애판정기준(AMA) 5판을 모델로 연구한 것이어서 최근의 개정내용을 담고 있지 못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리고 통증의 판정을 정신과 의사에게 판정하도록 한 것은 마치 통증장애인을 정신장애인으로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장애판정이 더욱 엄격해져 KAMS를 적용할 경우 장애인은 상실율 퍼센트로 표시되어 100가지로 분류될 것이며, 장애인 인구는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장애인계는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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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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