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듣던대로 키자니아를 찾는 부모님과 아이들은 많았다. 키자니아의 표는 마치 비행기 보딩패스 같아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은진슬

드디어, 키자니아 가는 날.

아이 친구가 우리 옆 아파트에 살아서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지하철을 타고 함께 가게 되었다. 서로 심심치 않게 신도림에서 잠실까지의 여정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서로 웃기도 하고 터닝메카드 이야기도 하며 잠실까지 재미있게 갈 수 있었다.

서로 첫 만남이라, 엄마들끼리도 그 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분위기를 익혔다. 어느 새 잠실역에 도착하여, 오늘 나를 도와주기로 한, 내 PPT 작업 도우미 친구인 우애씨가 우리와 합류했다.

티켓발권 시작 시간은 1시 30분.

우리가 그 보다 훨씬 먼저 도착했음에도, 이미 발권존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바글바글 했다. 번호표를 뽑아 보니, 이미 우리 앞에 50명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 듣던 명성 그대로다. 친구 어머님 말씀이, 처음부터 일찍 와서 먼저 입장할 수 있는 알파벳 앞자리 보딩패스를 받는 것이, 그 날 하루 키자니아에서의 대기 시간을 좌우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F클래스를 받게 되었는데, 이 정도면 일요일 2부 치고는 나쁘지 않는 거라고 했다. 문제는, 보딩패스를 받고도 거의 한 시간이나 입장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대기 공간에서 아이들은 의자 위를 날뛰기도 하고,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들었으며, 어떤 아이는 신이 나서 우리 아이들 근처에서 놀다가 나에게 안기기까지 했다.

난 무의식적으로 내 아이인줄 알고 안아줬는데, 내려다보니 전혀 모르는 아이였던 것. 아이들도 기다리는 것이 워낙 힘들고, 딱히 집중해서 놀거리도 없다 보니, 지루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 그 마음이 백 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발권존에서 기다리는 공간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작은 놀잇감이나 애니메이션이나 키자니아 체험 관련 홍보 영상이라도 걸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아이들 심정이야 백 번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수라장 속에서, 청각이 극도로 예민한 난 정말이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평소, 소음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인지라, 그야말로 멘탈 붕괴 직전이었던 것.

다행히, 내 정신이 막 안드로메다로 가출하려던 순간, 입장이 시작되었다. 막상 입장을 하니, 공간이 넓어서인지 이 아수라장은, 뜨거운 커피잔에 각설탕이 녹듯, 어느 정도 정돈되고 분산되었다. 키자니아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는 친구 엄마의 가이드에 따라, 제일 먼저 가장 인기 있는 소방관 체험으로 가 보았다.

마치 진짜 소방관이 된 것처럼, 소방차를 직접 타고 가서 가상 화재 현장의 불을 끄는 키자니아 소방관 체험. ⓒ은진슬

다행히 한 타임만 기다리면 바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곳이 키자니아의 꽃 같은 인기체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기회가 될 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출동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실제 크기로 구현된 소방차를 직접 타고 실내를 움직여 출동하여 가상 화재 현장에서 불을 꺼 보는 건, 어른인 나라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워낙 사진이 잘 나오는 효과적인 체험이라, 랜덤으로 사진 촬영이 이루어진 후, 그 중 자기 아이가 나온 맘에 드는 사진을 추가 금액을 내고 뽑아가는 서비스도 있었다.

다행히 롯데타워 서울스카이의 반값이라(8000원, 참고로 롯데는 15000원이었음.), 아이가 키자니아에 처음 온 기념으로 나도 뽑았다.

키자니아에서 자동차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증을 따야한다. 이 면혀증은 1년 동안 유효하다. ⓒ은진슬

친구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키자니아에서는 운전면허가 없으면 자동차 체험을 할 수가 없으니 미리 따 놓아야 인기 있는 자동차 운전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시기에, 이응이 운전면허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으러 갔다. 이것 역시 당연히 체험이다.

그런데, 키자니아에서 대부분의 직업체험을 하면, 8키조(키조는 키자니아의 화폐 단위)를 주는 데 비해, 운전면허 취득은 배우는 것이라 10키조를 내고 교육을 받았다. 이후에 했던 재난 안전체험 역시 이를 통해 내가 얻는 이익이 있다 보니 5키조만 받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게 느껴져 웃음이 났다.

참고로, 키자니아에서 발급 받은 운전면허는 1년 동안 유효하다고 한다. 한편, 이응이가 면허를 따는 동안, 친구와 친구 엄마는 얼른 할 수 있는 근처 체험을 골라 초콜릿을 만들고 왔다.

이곳을 속속들이 돌아다니면서, 우애씨를 데려 온 내 선택이 얼마나 옳았고, 또 현명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아이들의 체험 선호가 갈리거나, 지금처럼 서로 다른 체험을 해야 할 때, 만약, 나 혼자였다면 친구 엄마가 나만 두고 자신의 아이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나 역시 시각적으로 의존해야 할 상황이 지나치게 많아질 경우, 같은 엄마로서 동등한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소위 엄마들끼리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서로 돕고 해야 할 일들을, 우애씨가 센스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로서의 유능감을 잃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훨씬 편하게 나머지 시간을 지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우애씨에게 참 고맙다.

이응이가 면허를 딴 후로는, 거의 키자니아 가이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친구 어머님의 현명하고 빠른 판단에 따라, 그 때 그 때 아이들이 가장 빨리 할 만하면서도 우리 아이들 수준에 어느 정도 맞을 만한 체험들을 선택하여 진행하였다.

상점 이름도, 상점 내부도 그리고 아이들이 입는 복장에까지 후원하는 단체들의 이름이 새겨있어 자연스럽게 브랜드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은진슬

우리는, 처음에 했던 소방관 체험 후로, 응급의학과, CSI 과학수사대, 치과의사, 재난안전체험, 자동차 운전 등의 직업체험을 했다.

CSI 과학수사대는, 체험 가능 연령이긴 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좀 빠르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체험할 수 있어서 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그게 제일 재미있었다고 해서 신기했다.

뭐가 재미있었다는 건지…ㅋㅋㅋㅋ 그래도 우리 몸의 지문에 대해 알게 되고, 우리가 문을 열려고 손으로 잡는 집이나 유치원의 문손잡이에도 너희들의 지문이 남는다고 하니 신기해했다. 특별한 불빛을 비추어, 평소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다양한 흔적들을 볼 수 있고, 그것으로 범인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재미있는 것은, 키자니아의 은행은 신한은행, 빵 만들기 체험은 빠리바게뜨, 치과의사 체험은 가그린, 자동차 체험은 메르세데스 벤츠.

이건 PPL도 아니고, 완전 직접광고다.ㅋㅋㅋㅋ

여기서 친근하고 재미있게 체험했던 익숙한 브랜드에 대해서 아이들이 호감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머리에 각인되는 것은 당연할 터. 특히, 체험이 마무리 되어 갈 때쯤, 지금껏 번 키조를 저축하기 위해 신규로 통장을 만들고 카드 발급도 받으러 들렀던 신한은행에서 이응이는 엄청나게 뿌듯해하며 좋아했다.

아직, 자신의 용돈을 주기적으로 받지 않는 이응이에게, 비록, 키자니아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긴 해도, 자신이 직접 번 돈을 자신의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에 넣는 건, 마치 내가 엄마 아빠같은 어른이 된 듯한 우쭐함과 뿌듯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듯 했다.

그런데, 키조 이율이 월 1%, 연 12%라고 하니…놀랍다.

(내 돈도 좀 맡아 주면 안되겠니?ㅋㅋㅋㅋㅋ)

아이들이 체험을 하는 동안 얼른 식사 메뉴도 시켜 놓고, 전문가 친구 어머님의 빈틈없는 시간 설계와 민첩한 판단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시간 대비 효율도 높고 풍성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신이 났고, 생각보다 피곤해 하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정거장 먼저 내린 친구를 향해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서로 손 흔들어 주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참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나 느낄 수 있어 뿌듯했다.

아마도, 여느 엄마들에게는 별 고민 없이 아이들 잘 놀리고 돌아온 평범한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애엄마인 내게는 생각도 많았고, 긴장도 해야 했고, 조금은 어렵고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던 나들이였다.

이번 나들이를 통해, 장애부모의 육아 문제에 있어서의 적재적소의 인적 조력이 장애부모의 부모로서의 유능감과 자존감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제3자와의 동행에 편하게 응해 주시고,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나들이를 제안해 주셨던 이응이 친구 어머님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장애엄마에게는 다소 힘들 수도 있었던 이 날의 아이와의 키자니아 나들이가, 엄마끼리 동등한 입장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 있도록, 원래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일요일 꿀 같은 시간을 내어 흔쾌히 나를 도와 준 우애씨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해 본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들이 있는 만큼, 장애부모과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생각해주는 키자니아가 되주길 바래본다. ⓒ은진슬

마지막으로, 키자니아에 건의 몇 가지를 남겨 본다.

우선, 지난 번 롯데타워 서울스카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아동이나 부모가 장애인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현장발권만 가능했다. 특히, 키자니아처럼 무시무시하게 경합성이 높은 티켓을 이렇게 사라는 건, 장애인은 오지 말라는 소리이다.

나는 일반권을 체험 전 날에 모바일로 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접근권이 장애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여간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애인 요금이 적용되는 티켓 발권에 불편에 대한 문제는, 내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듯, 매우광범위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인 만큼, 좀 더 거시적인 해결 방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제발, 장애인도 온라인 티켓 예매를 할 수 있게 해 달라!

키자니아에는 8세 이상 어린이들 4인을 한 팀으로 묶어 전담 인솔자가 하루 동안의 체험을 모두 케어해 주는 ‘나홀로 키자니아’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이것을 보고는, 나처럼 장애를 가진 부모가 키자니아에 아이를 보낼 때 참 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79,000원으로 가격이 좀 비싸다는 게 흠이라면 흠. 그래도, 아이를 데려가는 보호자의 입장료나 함께 식사하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나, 나 같은 시각장애 엄마라면, 내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 주니 얼마나 긴요하겠는가?

현재는, 장애를 가진 아동과 성인,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대해서만 키자니아 요금 할인이 적용되는데, 장애부모들이 가족관계를 증명할 경우, 그들의 자녀가 ‘나홀로 키자니아’를 이용할 때, 어느 정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아이들이 클수록 그에 맞는 다양한 체험들이 있기에, 앞으로 제법 긴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가게 될 듯한 키자니아 나들이인지라, 장애부모님들께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두서없이 길어진 후기가 되었다.

모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잘 써지지 않았던 기나 긴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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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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