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친구와 셀카를 찍고 있는 은혜 그림 ⓒ최선영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몽실 거리는 모습을 미소 가득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은혜는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갑니다

한껏 부풀어 있는 뭉게구름만큼이나 은혜의 마음도 커져있습니다 여행의 설렘으로 버스 안의 재잘거림은 빠른 노랫말처럼 통통 튀어 오릅니다

쉼 없는 재잘거림 속에 도착한 곳은 햇살이 가득 머무는 경주입니다 톨게이트의 지붕이 기와모양인 것에 처음 찾은 경주가 더 신기해 보입니다

은혜와 친구들은 첨성대 앞에서 마치 선덕여왕처럼 그럴듯한 모양새를 내며 셀카를 찍습니다

에밀레종 앞에서는 여기에 담긴 설화를 떠올리며 그게 사실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잠시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지켜보던 남학생 4명이 은혜와 친구들 쪽으로 다가옵니다

"수학여행 왔어요?"

"네..."

"첨성대에서도 봤는데... 어디서 온 거예요?"

"서울에서요"

"우린 부산에서 왔어요 이름이 뭐예요?"

그중에 키가 제일 큰 태종이 은혜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은 알아서 뭐 하시게요?"

새침하게 되묻는 은혜를 보며 태종은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자꾸 마주쳐서 궁금하다고 말을 합니다

태종의 일행은 부산에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중학생인 은혜와 친구들을 본 그들은 귀여운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유독 수학여행 온 아이들 틈에 눈에 띄기도 해서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태종은 은혜에게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며 폰카가 아닌 사진작가들이나 들고 다닐법한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냅니다

"동생분들이 너무 예뻐서 같이 사진 찍고 싶어서 그래요..."

태종의 따뜻한 말에도 은혜와 친구들은 장애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지 다시 물어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밝게 웃는 모습이 예쁘고 우리 다 여동생이 없어서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요"

태종의 일행과 사진을 찍고 있는 은혜의 일행 그림 ⓒ최선영

은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태종이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묻습니다

은혜의 이메일 주소를 불러줍니다 2박 3일 수학여행 내내 그들은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은혜는 태종을 잊고 있다 이메일을 보고 그를 다시 떠올립니다

천사 같은 소녀에게...라고 시작된 그의 이메일은 길고 긴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처음 첨성대에서 은혜를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다시 봤을 때는 꼭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는 내용과 함께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한 덕분에 장애인 친구도 많다고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다름을 느끼지 않는다며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고 했습니다

태종과 은혜는 함께 사진 찍었던 친구들과 단톡방을 만들었습니다

일상적인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고 오빠들은 동생들에게 공부비법을 올려주기도 하고 좋은 책 소개도 해주며 그들만의 공간을 예쁘게 채워나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태종과 친구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은혜와 친구들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의 즐거움에 들어선 태종과 친구들... 고등학생이 된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공감할 만한 일상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단톡방에서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예전처럼 매일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차츰 이름뿐인 방이 되었습니다

서울과 부산... 그 거리만큼이나 그들의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차츰 서로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고 폰을 바꾸면서 단톡방도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은혜는 장애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 바람대로 은혜는 준비를 했었고 이제 실습을 나갑니다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서 은혜는 뜻밖의 반가운 얼굴을 만납니다

다시 만난 태종과 은혜 그림 ⓒ최선영

"어..."

"어머..."

태종과 은혜의 만남입니다

태종은 이미 교사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그들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서울에 살던 은혜는 아빠 직장이 부산으로 옮겨지고 기러기는 절대 못한다는 아빠 때문에 온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태종은 대학에서도 장애인 학교 등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교사였다며 특수학교 교사가 된 사연을 말합니다

​"남자친구는? 없어?"

태종은 은혜에게 묻습니다

"네~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라고 하셨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얼마나 꽁꽁 숨어있는지 호호"

은혜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말합니다

​"오빠는요? 결혼은 아직 안 하셨죠"

" 응~벌써 결혼은 안 하지... 사귀던 사람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졌어"

한 달간의 실습 기간 동안 태종은 매일 아침 은혜와 함께 학교를 가기 위해 은혜 집 앞을 옵니다 은혜도 편한 마음으로 태종과 함께 합니다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왔음 좋겠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의 바람대로 은혜는 졸업하고 태종이 있는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동료 교사로 그들은 함께 합니다

은혜가 교사가 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은혜의 아빠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은혜 곁을 떠나셨습니다

엄마와 단둘이 세상에 남겨진 은혜에게 태종은 든든한 오빠처럼 함께 하며 큰 슬픔을 덜어주었습니다

​은혜 엄마는 태종을 아들처럼 의지했고 태종의 따뜻함에 고마워했습니다

은혜를 위로하는 태종 그림 ⓒ최선영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라는 말은 태종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은혜가 가장 힘들 때 태종은 은혜의 옆에서 은혜가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태종이 없었다면 친척도 많지 않은 은혜와 엄마가 어떻게 그 큰일과 이별의 슬픔을 감당했을지...

아빠의 빈자리를 태종이 빈틈없이 채워주었습니다

​그렇게 의지하고 함께 하는 동안 태종의 마음에 또 은혜의 마음에 우정이 아닌 감정들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

예쁜 여동생 같던 은혜가 아름다운 여자로 보였고 든든한 오빠 같던 태종이 기대고 싶은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같은 색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한 체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두 사람의 달라진 마음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느꼈나 봅니다

태종을 좋아하던 또 다른 동료 교사가 제일 먼저 그들의 달라진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은혜에게 태종에 대한 마음을 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는데 태종이 먼저 말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저 태종 오빠랑... 아니... 김태종 선생님이랑 남매 같은 사이예요"

은혜는 애써 자기의 감정을 감추며 말합니다

"아무 감정 없어요? 나중에 딴소리 말고 지금 확실하게 대답해주면 좋겠어요"

은혜의 숨겨진 마음을 그녀는 끄집어내기라도 하듯 은혜를 당황시킵니다 은혜의 마음이 울퉁불퉁 일그러집니다

"은혜 선생님 오기 전에 태종 선생님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그 시선을 뺏지 말아주세요"

은혜의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뭐야 이건... 무슨 막장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은혜는 혼잣말을 하며 그녀에게 받은 쓰디쓴 감정들을 내뱉습니다

은혜는 더 이상 태종과 예전처럼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은혜의 변화에 태종은 은혜를 만나 묻습니다

"요즘 왜 그래?"

"결혼할 나이가 된 어른인 남녀가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도 오해를 살수 있는 거잖아요"

"오해하면 어떤데? 그거... 오해 아닌 거 같아 나에게는"

태종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냅니다

"너 민희 선생 만났지? 나 이 학교 오기전부터 사귀는 사람 있었고 너 만나기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민희 선생이랑 다른 감정이 생겼겠어?

혼자만의 착각이었겠지 어제 만나서 감정 지우라고 했어 나 한 번도 민희 선생에게 관심 가져본 적 없어 너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아니었어"

​은혜는 태종의 말을 듣기만 합니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냐? 혹시라도 네가 부담스러울까 봐 조심스러워서 네 마음에 확신이 들도록 해주려고 기다린 거야

은혜야... 망설이지 말고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 너랑 같은 내 마음 받아줬으면 좋겠어"

그제야 은혜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태종이 은혜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립니다

"은혜야 내가 메일로 사진 보내며 했던 말 기억나?"

"천사 같은 소녀..."

"응... 나 너 처음 봤을 때 천사가 있다면 저런 미소를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넌 내 첫사랑이었어"

활짝 웃고 있는 은혜 그림 ⓒ최선영

아마 태종과 은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나눠가진 사람들인가 봅니다

수학여행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이 잠시 끊어졌다 다시 어른이 되어 이어져 사랑에 빠지는 이들을 보며 아름다운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들을 잇고 있는 이 운명의 끈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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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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