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었다.

평소 알림음을 꺼두고 몰아서 체크하던 유치원 단톡방에 들어갔는데, 한 친구의 어머님께서 본인의 친구가 키자니아 직원이라 가족당 4인의 지인할인 50% 쿠폰을 발급해 줄 수 있다면서 필요한 엄마들은 말해 달라는 톡을 올렸다.

평소, 단톡방에서 어떤 물품이나 공연이 소셜에서 반짝 할인을 한다는 등을 정보 공유 차원에서 종종 올리는 엄마들이 있지만,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 나인데, 이번엔 귀가 번쩍 띄었다.

왜냐하면, 이제 일곱 살이 된 이응이, 어느 정도 간단한 덧셈을 하며 체험 가능한 키 제한도 넘어갔으니 키자니아에 가면 여러 가지 직업 체험과 경제활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재미있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몇 달 전부터 기회를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직업 및 경제활동을 체험해볼 수 있는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키자니아홈페이지

그런데, 이렇게 몇 달간 벼르고 있음에도 선뜻 가지 못했던 속사정이 하나 있는데…

어떤 체험이 몇 시에 시작하며, 몇 명의 잔여 인원이 남았는지 빨리빨리 눈으로 조망하고 아이를 재빨리 데려가 줄을 세워야 하는 직업체험 테마파크의 특성상, 시각장애 엄마로서 선뜻 데려가기가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얼마 전부터는, 시각장애 부모들의 육아 모임인 ‘심봉사임당’ 나들이 프로그램으로, 가족당 1인의 자원봉사자를 매칭한 키자니아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와 남편은, 늘 심봉사임당 나들이 프로그램을 짤 때, 사전 조사 차원에서 이응이를 데리고 먼저 가 보는데, 저렴한 금액으로 다녀올 수 있다니, 누가 돈을 보태 주는 것도 아닌 내 입장에서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래서, 얼른 톡을 올린 어머님께 개인톡을 드려, 괜찮다면 우리 가족도 쿠폰을 얻을 수 있을지 여쭈어 보았다.

나의 질문에 아이 친구 어머님께서는, 당연히 된다고 하시며, 필요한 인적사항 등을 물어 보시다가, 갑자기 내게 혹시 가족끼리 가실 예정이냐고 물으시더니, 괜찮으면 함께 가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대기시간이 긴 키자니아의 특성상, 아이들이 함께 가면, 긴 시간이라도 재미있게 기다릴 수도 있고, 어른들도 한결 편하다고 하시면서…

매우 뜻밖이었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입학하고 적응하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하원 때도 내가 직접 가서 아이를 데려 오고, 같은 반 엄마들과 함께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엄마들과의 교류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고 오래 대기했던 종일반을 시작하게 된 여섯 살 때부터는, 나도 자연스럽게 일을 늘렸고, 그에 따라 엄마들과의 교류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엄마들이 너무 많이 모여 너무 많은 말들과 불필요한 오해들을 양산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부류였기에, 이 상태에 무척 만족하며 나름의 자유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내가 먼저 다가가려 노력하지 않는 한, 장애인인 나에게 쉽게 다가오는 엄마도 별로 없었기에, 이런 일이 내게 생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2년 넘는 유치원 생활에서 이번이 딱 두 번째이다.)

갑작스런 아이 친구 엄마의 제안을 받고는, 오만 가지 생각이 다 스쳐 가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장애 엄마만 아니었다면, 소위 엄마들 말로, ‘아이 한 번 놀리자’는 건데, 그냥 잘 됐다 여기며 쿨 하게 하루 즐겁게 놀며 적당히 예의만 지키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엄마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냥 키즈카페나 야외에서 노는 거라면, 내 눈 상태로도 어느 정도 민폐 안 끼치며 핸들링 할 수 있겠지만, 장소가 키자니아라는 게 큰 문제였다.

이미, 오랜 인터넷 사전조사를 통해, 이곳은 시각장애맘들에게는 부모로서의 유능감을 한껏 떨어뜨리며, 오롯이 자력 생존은 불가능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 혼자 오래 생각하며 답변을 미룰 수 있는 문제도 아니요, 알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그것도 내가 장애인인지 모르는 엄마도 아니요, 먼저 같이 가자고 제안한 사람에게 주절주절 상황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 일단, 대안 모색은 차후로 미루고, 서로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하고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

일단, 함께 가겠다는 답변을 남기고, 서로 감사 인사를 나눈 뒤, 카카오톡을 마쳤다.

이곳 저곳을 빠르게 다니며 체험하는 키자니아인 만큼 여러 문제로 가기 전날까지 갈팡질팡, 오락가락, 고민고민의 연속이었다. ⓒ은진슬

‘큰일났네!’

일단, 나 혼자 가는 건, 키자니아에서 체험하는 아이를 거의 도울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 자명하기에, 결국, 전혀 모르던 엄마에게 두 아이를 맡기는 꼴이 되어 버릴텐데…

이건 너무 민폐다. 그렇다면, 나를 도와줄 누군가를 데려가야 할텐데…

양해를 구하면 되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상대 엄마와 아이가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다 차치하더라도, 이제 제법 자란 이응이가 다른 친구는 엄마랑만 가는데, 내가 도와줄 사람을 데려가는 것을 괜찮아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엄마들끼리 애들 한 번 놀리자는, 별 것도 아닌 일에 뭐 그리 생각이 많냐고 내게 핀잔을 준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꼭 내가 장애엄마라서가 아니라, 엄마들 사이에서 적당히 예의를 지키고 줄타기를 하며 민폐맘이나 무개념맘이 되지 않고, 말에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이라면, 여느 엄마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장애까지 가진 엄마로서 더더욱 처신하기 조심스럽고 어려운 내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가기 전날, 아들 친구 엄마께 키자니아에서의 내 어려움을 담백하게 알리고는, 초면이라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좋을 듯한데, 괜찮을지를 여쭈어 보니, 그렇게 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실은, 본인이 자주 가 본 곳이라서 아이 둘을 함께 데리고 안내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단다.

어차피, 나는 유치원의 유명인사, 내가 장애인인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막상 이런 말씀을 들으니, 그냥 얼렁뚱땅 눈 질끈 감고 제3자 없이 오붓하게 다녀오는 게 더 나았을까 싶기도 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 고민고민…

휴! 어떻게 해야 할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도저히 결정 못 하겠다고 생각될 때, 어느 쪽이 옳은지 도저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 이럴 때 난… 기본으로 돌아가서 그냥 단순해진다.

어차피 이 모든 고뇌와 갈등의 목적은, 다 아이를 즐겁게 해 주고 잘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니, 난 이 모든 고민과 갈등의 근원이자 단 하나의 소중한 이유인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응아! 우리, **랑 키자니아 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엄마는 우애이모랑 함께 가면 어떨까 생각중인데, 이응이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 혹시 엄마가 시각장애가 있으니까 키자니아 한 번도 안 가봐서 잘 모를까봐 걱정되어서 그래?’(아들아! 화두를 꺼냈더니 바로 문제의 핵심으로 점프해 버리는게… 넘 빠른 거 아니니?)

‘응, 그런 측면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우애이모가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이 엄마가 계시고, 잘 알고 있으니 같이 다녀도 큰 문제는 없을 거거든. 그러니 엄마 생각 하지 말고, 이응이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해도 괜찮아. 엄마랑 이응이, 엄마랑 **이, 이렇게 오붓하게 가는 게 좋으면 그렇게 하고, 우애이모가 가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고…’

‘그래? 엄마! 그럼 우애이모랑 가자!’(매우 쿨한 목소리로…)

벌써 많이 커서,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고 가늠하고 배려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좀 짠하기도 하고, 의젓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 혼자만 생각이 많아서, 아이가 걸린 문제라 조심스러워서, 고민고민, 지끈지끈, 갈팡질팡, 우왕좌왕 고생했다.

무사히 재미있게 키자니아를 다녀온 후, 같은 입장의 절친한 시각장애 맘과 통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 그 간의 내 갈등과 어려움에 적극 공감 해 주었다.

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과연, 그 누가 장애엄마가 아이들 키우면서 겪는 이런 부류의 난감함을, 티도 안 나는 백조의 발버둥 같은 고뇌와 뻘짓과 노력을 알아주랴? 같은 장애를 가진 엄마로서 함께 육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있어 새삼 감사했다.

시각장애맘의 좌충우돌 키자니아 방문기-②에서 계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