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보았던 공상과학 영화나 첩보 영화에는 출입이 제한된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지문이나 목소리, 눈동자 등을 통해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곤 했었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나 나오던 모습들이 20년쯤 지난 뒤에는 현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에 설치된 도어락에 지문을 인식시켜 문을 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출근과 퇴근을 할 때 출근부 대신 지문인식으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데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의 잠금을 해제하기 위해 얼굴이나 홍채를 사용하는 사례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폭발 문제로 이슈가 되었던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었더라면 홍채 인식이라는 생소한 기술도 더 보편적인 기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속에 밀접한 기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생체인식 기술을 '바이오메트릭스(Biometrics)'라고 한다. 사람의 신체나 행동이 갖는 고유한 개인별 특성을 추출하여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데 활용하는 기술을 포함하여 생물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점이 있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식구 수 대로 열쇠를 복사하고 하나씩 가지고 다니던 때를 생각해 보자. 복사하느라 들어가는 비용과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열쇠를 잃어버리면 도난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자물쇠까지 교체하고 다시 열쇠를 복사해야 했기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출입하는 장소의 수 만큼의 열쇠를 가지고 있노라면 주머니가 불룩해 질 수밖에 없었다.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이 이러한 불편함을 덜어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정보통신기기라기보다는 생활필수품 이라는 용어가 더 잘 어울리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은데 메시지 확인이나 정보검색을 위해 화면을 켤 때마다 매번 다시 잠금을 해제하는데서 오는 불편함을 지문인식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화면을 보며 비밀번호를 입력하는데 더 큰 불편을 겪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지문인식을 통한 잠금 해제는 더욱 편리한 기술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편리함에 더하여 생체정보가 갖는 특성 덕분에 위변조가 어려워 자신을 인증하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은 아무런 문제없이 완벽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추출된 신체적 특성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게 되기 때문에 여타의 개인정보들과 마찬가지로 정보유출이나 악용으로 인한 피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자주 지적되곤 한다.

그래도 이러한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조금이라도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이를 적용한 제품들이 널리 쓰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제품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신기술이 적용된 기기들은 늘 일부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불편을 주거나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리모컨을 사용하는 제품들이 개발되면서 다이얼식 채널변경 방식의 텔레비전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들은 새로운 방식의 텔레비전과 리모컨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적지 않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버튼의 수를 줄인다든가 버튼에 인쇄된 글자를 크게 한다든가 하는 등 소수의 소비자들을 위한 대안들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휴대전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보급율이 높아지며 피처폰(Feature phone)을 구입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이들을 위해 복지관 같은 곳에서는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수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생체정보 기술을 이용한 제품에 대해서도 이러한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보조공학관련 분야에서 근무할 때, 전시회에 갈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 안구마우스를 체험해 보았는데 내 눈의 상태로는 이 제품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 출시되었던 핸드폰의 홍채 인식 기술이 적용된 제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휴대전화가 시장에 큰 반양을 일으키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이 기술을 적용해 잠금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홍채 인식만 제공하게 된다면 나와 같은 사람은 잠금기능을 사용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지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문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술만 적용된 도어락과 같은 제품이 사용된 공간은 출입이 불가능한 곳일 것이다. 이처럼 생체정보 기술은 우리 장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사회적 제약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도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생체정보기술에 대한 접근성 지침을 마련하는 등 기술로 인해 소수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기술발전은 분명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기술발전이 문제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기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여러 사람과 상황들을 고려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누군가 불편을 겪은 후에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안을 찾아가는 것은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대안으로써의 기능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에게 유익한 기술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다양한 입장의 인간에게 유리한 기술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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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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