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하는 민수 그림 ⓒ최선영

"세상에서 빛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민수는 조금 더워진 날씨 탓에 교복 넥타이가 거추장스러운지 느슨하게 풀어헤치고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제법 그럴듯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놓고는 한참을 말없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마음껏 뛰어오르고 싶은 친구들은 서둘러 점심을 먹고 다들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튕기고 있는데

민수는 다른 세상에서 온 아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그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부를 한다하는 친구들은 외고나 과학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고 일반적인 친구들은 각자 가야 할

학교를 정해두고 더 먼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 틈에 민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자신의 길을 생각하며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민수에게 오래전 내려진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은 이제 민수에게 아주 많이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민수와 민수 부모님은 민수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점자를 배우는 일부터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민수의 마음은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를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나에게서... 점점 더 좁혀지는 이 빛이 사라져 버린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저 푸른 하늘도, 햇살의 눈부심도, 하얀 뭉게구름도... 그저 기억 속에서만 더듬어야 되는 걸까..."

민수는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어두운 세상이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모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나인 거냐고"

민수는 하루하루 찾아오는 어두운 세상이 눈물 나게 싫었고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몹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민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어둠은 더 짙어졌고 민수의 마음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민수야... 그동안 우리는 준비해 왔고 빛을 잃었다고 마음의 빛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돼...

우리가 도와줄 테니 어둠에서 또 다른 빛을 함께 찾아보자"

부모님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함께 민수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부모님의 눈물겨운 사랑 때문에 민수는 좌절하는 것조차도 쉽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말대로 민수는 새롭게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교실에 웃고 있는 학생들 그림 ⓒ최선영

민수와 달리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밝은 미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뭐가 저렇게 즐거운지 민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시간이 되어 음악실로 이동하는 중에도 친구들은 연신 웃으며 조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어제 그 드라마 봤어? 여주 너무 예쁘지 않아~"

"난 여주 보다 여주 친구가 더 예쁘던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보이지도 않으면서 예쁜지 안 예쁜지 어떻게 알아..."

민수는 속으로 그들의 말을 비웃었습니다

시각장애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빛조차 느낄 수 없는 전맹이 있고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단계 그리고 큰 글씨를 읽을 수 있는 단계...

1에서 6등급까지 나누어지는데 민수가 다니는 학교는 거의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흐릿하게나마 보는 친구들이 전맹인 친구들의 길 안내를 하며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민수는 아직 약간의 빛을 보는 통로가 남아있어 혼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음악실에 들어선 민수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다양한 악기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멋진 피아노도 한대 있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는 음악 선생님은 아름다운 연주로 그들을 반겨주었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선생님 그림 ⓒ최선영

"자 음악 첫 시간이지~우선 내 소개부터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 선생님의 소개를 듣던 민수는 놀라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떠서

아주 작은 빛으로 선생님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왼손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주 어린 나이에 사고를 당하면서 두 눈과 오른쪽 손을 잃으셨습니다

악보도 볼 수 없는 선생님은 모든 노래를 듣기만 하면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음악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거나 천재여서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불러보고 남들은 양손으로 하는 피아노를 한 손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남들의 두 배 세배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모여 왼손으로만 연주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입니다

민수는 선생님과 만난 음악시간 이후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끄시는 음악 밴드부에 들어가기로 하고 했습니다

민수는 어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배운 피아노 실력을 전자오르간 앞에서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밴드의 형과 누나들은 민수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고 민수는 음악밴드를 시작하면서

매일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어릴 때 겪은 무서운 사고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다른 빛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민수도 음악으로 시작된 새로운 삶이

어두운 민수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새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민수는 아주 작게 남아있던 한 줄기 빛마저도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 작은 한줄기의 희망에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민수는 그 빛을 잃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민수는 그 작은 한줄기의 빛에 의지하며 마음 전부를 어둡게 했던 시간들을

후회합니다

민수가 찾은 빛은 세상이 보여줄 수 없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악 선생님을 만나고 음악밴드에서 활동하면서 그 꺼지지 않는 빛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받은 그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연주하는 민수 그림 ⓒ최선영

민수의 학교 밴드부는 공연을 많이 합니다

민수가 2학년이 되고 교도소를 방문해서 공연을 하는 날...

민수는 그곳에서 다른 학교에서 온 중창단 여학생들을 만납니다

여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민수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음악밴드 부원들과 중창단 여학생들은 함께 공연을 한다는 공통의 이유만으로도 짧은 시간

아주 많이 친해졌습니다

공연장에서 만난 여학생들과 웃고 있는 민수 그림 ⓒ최선영

"오빠~오빠~"하며 따르는 그들의 친절함에 민수는 여동생이 생긴 것처럼 기뻤습니다

이름을 알려주겠다며 여학생들은 밴드부 오빠들의 손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써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다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전맹인 친구들은 모두 점자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여학생들에게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글씨를 알아볼 수도 있는 사람도 있고

빛조차 느끼지 못하는 전맹인 경우는 글씨를 모른다는 것을...

"어머... 죄송해요 몰랐어요"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며 민수는 그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민수는 그날 그런 일이 있고부터 또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시청각장애인을 이해하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아주 작게라도 자신이 쓰임 받고 싶다는 미래에 대한 조금은 더 분명해진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민수는 자신이 품은 꿈을 펼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에게 새빛을 찾게 해준

음악밴드 활동도 열심히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 앞에 우리는 어떻게 그 시련을 바라보고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음악 선생님과 민수를 통해 배우는 것 같습니다

민수가 세상의 빛은 잃었지만 어둠 속에 머물지 않고 그곳에서 새로운 마음의 빛을 찾아

새롭게 꾸는 그 아름다운 꿈이 활짝 펼쳐질 수 있도록 모두가 응원하며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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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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