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30일부터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이 시행된다.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 수립, 장애인 건강검진사업, 장애인 건강관리사업, 장애인의 의료기관 접근 및 이용 보장, 장애인 건강보건연구사업, 장애인과 그 가족, 의료종사자의 건강교육, 재활운동 및 체육, 장애인 건강 주치의, 의료비 지원 등이 포함돼 있는 굵직한 사업들로 시행령을 만드느라 분주하고, 관련 연구와 시범사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장애인 당사자와 의료전문가 사이에 생각차도 크고 깊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선점을 하기위해 눈치싸움과 기싸움이 치열하다. 검진사업을 위해 기존의 건강검진센터의 활용과 새로운 전문 검진센터를 위한 저울질과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접근성은 병원으로 가는 이동권, 병원입구와 내부의 물리적 접근, 의료진의 장애인식, 의료기기(장비)의 접근성 등을 말한다.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작 예방과 검진, 치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의료장비접근성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의료장비는 비장애인 위주의 장비들이다.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이 불편한 장비로 치료와 예방을 한다는 것에 불안감과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인 측정인 체중과 신장측정, 체지방 장비도 없어서 문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청각의 측정도 측정실문이 좁아 휠체어로는 들어가 갈 수가 없어서 밖에서 측정을 한 적도 있다.

엑스레이(X-Ray)와 자기공명영상장치(MRI)도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몸이 변형이 된 장애인에게는 진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포기를 하기도 하고, 의료기사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그 불신의 벽은 더 높고 견고해 지기도 한다.

여성장애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유방촬영기도 휠체어 사용 여성장애인들에게는 수치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방촬영기를 사용할 수가 없으니 추가비용을 내고 초음파로 검진을 해야 한다. 장비의 미비로 경제력이 부족한 장애인에게 부담을 주는 이것은 장애에 대한 차별이다.

치과진료의자나 치과용 촬영기도 장애인과 그리 친화적이지 않다. 특히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더욱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건강검진차량의 경우에도 리프트 시설이 없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업혀서 올라간다. 이 경우에도 엑스레이나 유방검진기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럴진대 이런 준비상태로 장애인 건강권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자. 측정 장비 없이 어떻게 판단을 하고 어떻게 건강예방과 증진이 가능할까?

잔치하자고 메뉴 짜놓고 레시피도 준비하고 요리사도 불렸는데 정작 조리기구가 없는 꼴이고 남이 쓰던 조리기구를 불편하게 사용하는 꼴이다. 허기야 가시겠지만 뭔가 불편함과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전 국민건강보험시대에도 장애인의 건강은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그 폐해를 줄이려는 반성과 노력이 장애인건강권법의 시작이다. 이는 장비도 공공성의 성격을 가지고 당연히 개발과 보급이 되야 된다. 장애인건강과 관련된 의료장비의 개발과 보급의 항목을 추가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의료장비관계자들은 장애인용 의료기기는 만들어도 수요가 적어서 개발과 생산에 뛰어 들 수가 없다고 한다. 꼭 장애인용이라고 한정하지 말고 노인과 임산부, 장애인 등 모든 이동약자와 건강약자들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용으로 개발하고 사용하면 될 것이다.

외국의 장비를 수입하는 단순한 발상 말고 국내에서 개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과거 전동휠체어를 처음 보급할 당시 단순히 수입하여 보급하는 과정보다 국내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보급했으면 지금의 전동휠체어 및 보조기기 시장 환경은 현저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의료기기의 개발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제품의 품질을 담보할 수가 있다. 한 마디 논의도 없이 물건 다 만들어 놓고 형식상 의견을 묻는 식은 매우 비효율적인 처사이다. 당사자가 쓸 장비를 당사자에게 꼭 물어보고 제품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유니버설 다자인 의료장비의 개발이 우리나라의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한 트렌드가 되었으면 한다. 이공계와 인문계의 융합사업으로도 가능하고 청년실업의 문제도 희망을 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비의 개발과 보급이 만족될 때까지는 의료기관에 추가인원을 배치하여 장애인들의 검진과 치료를 도와주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어야겠다. 인식개선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 뻔히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 ‘저쪽으로 올라가세요.’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노령인구의 요양문제로 골머리를 안고 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의료비의 증가로 고민이 깊다고 들었다. 이를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장애인들의 건강권과 노령층의 요양비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의료기기’의 개발과 보급에 힘을 모아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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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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