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과거를 회상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회상 속에서 과거의 기억들 중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힘든 점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연히 초등학교 1학년 때를 생각해 보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30여년 전인 그때에는 ‘받아쓰기’라는 이름으로 쪽지시험을 자주 보았었다. 담임교사가 간단한 문장을 말하면 학생들은 그 문장을 맞춤법에 맞게 또박또박 적고 바른 문장과 틀린 문장을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주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에 한 가지 모순이 있다. 과연 담임교사의 발음은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리 없을 것이다. 교사들에게 별도로 발음법이나 낭독규칙을 교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문제출제 자체가 오류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에는 한 문제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애썼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어 본다. 단지 옛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통합교육을 받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별도의 한글 맞춤법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내가 칼럼을 작성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서들을 작성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맞춤법이다. 시각장애 학생으로서 통합교육을 받았던 나는 수업을 들을 때 칠판에 판서된 내용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옆에 앉은 친구가 불러주는 내용을 듣고 노트필기를 해야 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자그마치 12년 동안을 받아쓰기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늘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맞춤법을 지켜 글을 작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저학년 때 까지는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글을 적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한자로 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맞춤법을 지켜가며 글을 적는 것이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결재’와 ‘결제’를 생각해 보자. 두 단어가 갖는 뜻이 분명 다르지만 발음으로는 두 단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굳이 한자로 된 단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배다’와 ‘베다’를 생각해 봐도 발음으로는 두 단어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처럼 ‘ㅐ’와 ‘ㅔ’는 소리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맞춤법을 틀리기 쉽게 만들어 준다. 저시력학생이 비록 잔존시력이 있어 확대된 책자 등을 보고 공부하면 보완이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일단 확대교재의 양 자체가 부족하고 확대교재가 있다 하더라도 맞춤법을 하나하나 생각해 가면서 문자의 모양을 익혀 나가기에는 학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 ‘ㅏ’와 ‘ㅑ’, ‘ㅓ’와 ‘ㅕ’, ‘ㅗ’와 ‘ㅛ’, ‘ㅜ’와 ‘ㅠ’, ‘ㅔ’와 ‘ㅐ’ 등을 저시력인의 눈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기에 보통은 문맥을 바탕으로 추론해 가며 읽는 경우가 많아 맞춤법을 정확히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맞춤법에 대한 것은 저시력학생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점자를 학습에 활용하는 경우도 맞춤법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예전에 읽었던 논문 중 비장애 학생과 특수교육을 받으며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 학생의 한글 맞춤법을 주제로 한 것이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비장애 학생들은 한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음소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모양을 통으로 익히고 부모 등의 지도를 통해 음소를 학습해 가는 과정으로 시각을 통해 글자를 배워 나간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각장애 학생의 경우는 점자를 배워 가며 하나하나 음소단위로 글자를 익히게 된다. 물론 단지 이러한 이유만으로 시각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보다 맞춤법에 있어서 취약한 특성을 보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점에 유의하여 교육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연구 결과 중 예상 밖의 결과가 있었다. 보통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시각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감각들이 상대적으로 발달하게 되고 청각 또한 비장애인보다 민감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맞춤법에서도 소리에 관한 영역에서는 비장애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우수한 결과를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조사에 따르면 된소리, 구개음화와, ‘ㄷ’소리 받침, 모음, 두음법칙, 겹쳐 나는 소리 등 소리와 관련된 맞춤법에 대해서도 시각장애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물론 표집이나 조사방법, 문항 구성 등 조사에 한계가 있겠지만 시각장애 학생의 맞춤법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연구결과 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처럼 맞춤법은 전맹, 저시력 구분할 것 없이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시각장애 특성을 고려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통합교육 환경 속의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더욱 큰 어려움으로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는 굳이 맞춤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미 우리는 국어수업 시간에 이에 대해 충분히 들어왔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이공계열보다는 인문사회계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학교교육을 마치고 취업을 하게 될 경우에도 주로 현장업무보다는 행정사무가 중심이 되는 분야로 진출하게 된다. 결국 이들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끝없이 글을 쓰며 살아가야 하는데 맞춤법은 두고두고 이들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각적 제약으로 인해 직업생활 전반에서 무수히 많은 어려움들과 마주해야 할 텐데 맞춤법에 대해서 만이라도 이들을 위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맞춤법에 맞는지 몇 번이나 사전을 찾아가며 작성해야 했고 글을 등록하기에 앞서 비장애인 누군가에게 맞춤법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한번 살펴봐 달라고 부탁을 할 것이다. 이게 통합교육 환경에서 공부한 시각장애학생의 현실임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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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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