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 개표소. ⓒ홍서윤

필자는 지난 9일 대통령 선거 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하면서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선거와 관련하여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씁쓸하고도 달콤한 이면을 동시에 느꼈다.

사전 투표 당시부터 투표소 접근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선관위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같은 문제를 호소하고 있지만 변화하지 않는 모습이 씁쓸했다.

반면 대선 과정에서 소수자 이슈가 불거지면서 투표소의 접근성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달콤했다. 특히 SNS를 통해 확산되는 투표소 이슈와 그것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와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한 지역구의 개표소에서 두 가지 어려움을 경험했다. 하나는 물리적 어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 인식 문제이다.

모든 지역구 개표소는 경찰 병력의 철통 보안으로 쉽게 접근이 불가능하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다보니 개표 참관인들이 타고 온 차량 역시 별도의 공간에 주차하도록 지시했지만 마땅한 장소는 아니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개표 참관인이나 개표 사무원들의 차량 주차 문제를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개표소 주변 길이나 공터는 차량으로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장애인 주차장은 당연히 없다. 겨우 뒤죽박죽인 차량 틈에 주차를 한다고 해도 휠체어가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기 어려웠고 접근로가 있는 개표소 입구까지 거리도 한참을 우회해야 했다. 물론 개표소로 사용된 시민체육관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지만 관계자나 소방·경찰을 제외하고는 통제 상태였다.

여기서 개표 참관인으로서 장애인 참여가 당연히 없을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 이전에 개표 사무원이나 참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선거 당일 하루 인력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스러웠다. 적어도 국가적 중대사를 전두 지휘하는 선관위에서 개표 사무원이나 참관인들의 기본적 편의성 정도는 한번 쯤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그러니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주차와 진출입로 문제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개표소 근처 주차장 진입 허가를 요청했지만 역시 대답은 ‘NO’였다.

때마침 참관인 교육시간이 시작되어도 필자가 들어오지 않자 지역구 정당 관계자 분께서 직접 나서주었다. 경찰과 선관위 담당자에게 수차례 설명하여 결국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씁쓸했다. 장애가 있는 국민에겐 투표소처럼 개표소 역시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표소 개표 상황 모습. ⓒ홍서윤

또 하나는 장애인 개표 참관인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어색해했다. 같이 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생소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생소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여전히 어렵고, 선거와 관련한 분야에서 휠체어를 타고 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더욱 드문 사례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 발생했다. 투표함 봉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투표함과 가까운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느라 속속 도착하는 투표함을 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선관위 직원과 옷깃이 스쳤는데 그의 표현이 뇌리를 깊숙히 훑고 같다.

그는 유사한 상황에서 비장애인 개표 참관인에게 “만지면 안 된다.”, “눈으로만 보세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개표 참관인 교육 당시 숙지했던 내용처럼 개표 과정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같은 직원은 필자에게 “그 곳에 계시면 저희들이 불편해서 일을 못해요”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국가적 중대사를 치르는 과정이라 예민할 거라 여기고 입을 다물었다.

장애 개표 참관인이 걸림돌이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물론 필자가 조금 곡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개표 참관인이라 할지라도 다르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그 직원의 말에 불현듯 ‘여전히 장애인은 2등 시민인가?’하며 의문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동등한 주권을 가진 국민이지만 차등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문제를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 한다.

예컨대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의 장애 인식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장애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해야하는지를 알려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열정이 가득한 장애 시민이 앞으로 치뤄질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개표 참관인에 참여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동등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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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윤 칼럼리스트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로 활동했으며, 2016년 장애인 여행 에세이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출간하여 장애인 관광에 대한 대중 인식 변화를 이끌었고 현재 장애인을 비롯한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 발전을 위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장애인은 왜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유행 선도자)나 힙스터(Hipster: 유행을 쫓는 자)가 될 수 없는지 그 궁금증에서 출발해,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 청년 세대의 라이프와 문화에 새로운 인식과 변화를 재조명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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