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내다보는 준호 그림 ⓒ최선영

마당에 핀 벚꽃의 꽃잎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며 여기저기를 수놓을 때 창 너머로 아름다운 봄을 바라보는 준호는 봄날의 햇살과는 달리 시무룩한 얼굴로 꽃잎의 흩날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준호야 뭐 하니? 이리 와서 과일 좀 먹으렴"

엄마의 부르는 말에도 준호는 대구 없이 그저 꽃잎 하나하나의 몸동작에 시선을 보냅니다.

"엄마 저도 저 꽃잎처럼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 날아가 보고 싶어요"

준호의 말에 엄마의 표정도 시무룩해집니다.

"준호야... ​"

"엄마 저 그냥 해본 소리에요"

준호는 엄마의 말을 자르고 ​애써 웃어 보입니다. 준호는 일곱 살이던 5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에 사고를 당한 뒤 한 쪽 다리가 불편해졌습니다.

수술만 하면 다시 예전처럼 친구들이랑 뛰어다니며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술 후에도 준호의 다리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부러진 뼈는 제자리를 잡고 찢어진 상처는 아물었지만, 준호의 마음은 여전히 멍들어 있었고 다리는 온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당한 사고 때문인지 준호는 아직도 차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합니다. 자동차를 타는 것이 무서워서 먼 길에는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아 준호가 사고 난 이후로 가족여행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시무룩한 준호를 지켜보다 엄마는 준호를 부릅니다.

"준호야... 엄마랑 공원에 산책 갈까? 엄마 몸이 많이 뻐근한데... 준호가 같이 가줄래?"

준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네..."

준호와 엄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햇살은 준호의 뺨을 달구어 주었고 엄마는 준호가 그 햇살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되찾기를 바랐습니다.

"엄마..."

"응 준호야"

"언제부터인가 제가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어떤 기억?"

"어떻게 자전거를 타는지 어떻게 뛰어야 하는 건지...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엄마는 마음이 내려앉는 듯 저려옵니다​.

"아마 오래 뛰어보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그날 이후로 자전거도 못 탔으니까"

준호는 사고 이후 자전거도 절대로 타지 않았고 뛰는 것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낑낑~"

"엄마 이게 무슨 소리예요?"

"글쎄... 무슨 소리? 엄마는 못 들었는데..."

준호는 어디선가 신음하듯 낑낑거리는 작은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엄마 여기 좀 보세요"

"어머나 이를 어째~"

준호와 엄마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 놓여있는 작고 허름한 상자를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아직 아기처럼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상자 여기저기를 더듬거리며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상자에 담겨 버려진 강아지 그림 ⓒ 최선영

"엄마 누가 버렸나 봐요..."

"어휴... 불쌍해라 이렇게 예쁜 아기를 누가 버렸을까..."

준호는 상자를 쓰레기 더미에서 옮겨 조금 떨어진 곳에 놓고는 배고파서 우는지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지 알 수 없는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와 느릿느릿 어둔한 몸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준호가 엄마에게 말을 합니다.

"엄마 이 강아지 우리가 키우면 안 돼요?"

"불쌍하기는 한데... 준호야 살아있는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야, 유기 동물보호 센터 같은데 데려가보면 어떨까?"

"아니... 엄마 제가 꼭 키우고 싶어요 정말 잘 키울게요"

​"준호야 일단 병원부터 데려가보자 지금 아픈 거일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봐야지..."

준호는 엄마와 함께 상자를 들고 동네 동물병원으로 갑니다.

"다른 건 건강한데... 이 강아지 다리가 불편하네요"

의사선생님은 꼼꼼하게 강아지를 살펴보시더니 이 강아지는 선천적으로 왼쪽 뒤 다리가 약하고 길이도 짧은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강아지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주인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준호와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준호는 강아지를 품에 안았습니다.

"이제 내가 너의 형이 되어줄게..."

준호는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집으로 온 준호는 동생이 된 강아지를 쭌이라고 이름 붙여주었어요.

쭌의 목욕도 준호가 해주었어요. 쭌의 몸에 물이 닿자 쭌이는 더 작아졌어요 그리고 쭌의 짧은 다리가 보였어요

"쭌~너도 나처럼 다리가 불편하구나... 형이 너 잘 돌봐줄게"

준호는 쭌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며 정말 친 동생처럼 사랑해주고 아껴주었어요.

쭌을 만나고 준호의 표정이 밝아져서 엄마도 아빠도 기뻤답니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고 준호는 쭌을 데리고 공원으로 첫 산책을 나갑니다. 쭌은 다리 하나가 짧고 약해서 절뚝거렸지만 아주아주 신나게 공원을 뛰어다녔어요.

그런 쭌을 보며 준호는 생각합니다.

"난 내가 창피하고 싫어서 공원에도 잘 안 나왔는데... 쭌... 너는 정말 씩씩하구나"

준호는 쭌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불편하다는 것을 핑계로 게으르게 살았고, 친구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했어요.

쭌은 뒤 다리가 짧아 계단을 오르는 것도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쭌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쭌과의 몇 날이 지나고, 준호는 엄마 아빠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준호야... 너 무서워서 자전거 싫다고 했잖아... 괜찮겠니?"

"네 다시 자전거 타고 싶어요. 그때는 세발자전거였는데 저 이제 두발자전거 사주세요"

"그래 내일 당장 사러 가자"

아빠는 기뻐서 얼른 사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준호는 아빠가 사오신 자전거를 타며 사고 이후 난생처음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 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준호 그림 ⓒ최선영

"세발자전거랑은 다를 거야... 중심을 잘 잡고 천천히 해보자"

아빠는 준호 뒤에서 준호가 자전거와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빠의 도움으로 몇 바퀴 돌던 준호는 어느새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네요.

엄마와 쭌이 먼 발치에서 지켜보다 엄마가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쭌도 폴짝 거리며 준호의 멋진 모습을 응원해 주었어요. 아빠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뭉클해졌답니다​.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바람이 준호의 뺨을 스칠 때 준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난 왜 못한다고만 생각했을까...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준호는 사고 이후 다시는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시는 자동차도 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고가 남긴 가장 큰 장애는 불편한 다리가 아니라 준호의 어두운 마음이었습니다.

준호의 어두운 마음에 버려진 작고 불쌍한 강아지 쭌이 들어오고, 불편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은 채 폴짝 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 외진 곳으로 숨으려 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준호는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구겨져 있지도 멍 자국이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였을 뿐인데 세상은 준호를 따뜻하게 반겨주었고 준호의 씩씩한 도전에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준호와 쭌 그림 ⓒ최선영

준호와 쭌이 함께 한지도 이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준호는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고 쭌도 이제 더 이상 아가가 아닙니다.

준호와 쭌은 지금도 서로를 안아주는 멋진 친구로 더 씩씩한 모습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행복한 미소를 주고받습니다.

준호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누구에겐가는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 준호는 매일 등하교를 자전거로 하며 가족과 먼 여행도 즐겁게 다녀옵니다.

이번 학기에 반을 이끌어가는 회장이 되어 열심히 학급활동을 합니다.

준호와 쭌 이들의 깊은 우정과 씩씩함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내며

지켜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