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으로 지나가는 그녀. ⓒ최선영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두운 지하 주차장이었습니다

거친 바퀴 소리를 내며 낯선 차 한 대가 달려 들어옵니다

무엇인가에 쫓기 듯 황급히 차에서 내린 그녀는 앞만 보며

무표정 한 얼굴로 나를 지나쳐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2층에서 다시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긴장한 탓인지 굳어진 얼굴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표정이 왜 저럴까?

왜 저렇게 얼굴빛이 어두울까?

누굴까?“

숱한 물음표를 던지며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옆에 낯익은 분의 얼굴이 다가갑니다

“왔어~”

“네”

그렇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 그들은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시 그 사촌동생?”

궁금함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응~”

“아...”

6개월 동안 전도사님 부탁으로 얼굴 모르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기에 친구의 짧은 대답에도

그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풀어졌습니다

 

전도사님의 사촌 여동생은 회사에서 안 좋은 기억을 안고

6개월 전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 세상에 대한 절망..

그녀는 그렇게 아픈 기억을 안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법의 도움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해 보려고 하던 중에 사촌 오빠인

전도사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이름과 짧게 들은 어려운 현실을 잘 이겨내기를 바라며

그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와 만나게 되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녀가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되찾아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그. ⓒ최선영

그녀가 청첩장을 건네주던 날, 그녀가 그렇게 빨리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또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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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2층에 들어서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잘 찾아온 건지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한 남자가 손짓을 하며 거기 앉으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단어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미소가 아름답다...”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뭐가 좋아서

표정이 저렇게 밝은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보내는 그 미소가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던 그녀는 성가대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찬양 소리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한 사람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좀 전에 봤던 그 휠체어에 앉은 그 사람...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그의 모습에서 마치 빛이 나는 것처럼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는 것처럼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또 이상한 단어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너는 내 운명...”

 

그리고 그녀는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들킬까 봐 숨을 죽이며

붉어지는 얼굴빛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낮추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해가 바뀔수록 더 커져만 갔고

하나님을 만나고부터는 그를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 남자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하는 일 없이

동네를 다니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군대를 갔던 그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은 운전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운전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군대 가서도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했는데 언덕길에서 타고 가던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통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평생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인생의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후회는 절망이 되었고 절망은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그의 절망은 이제 그로 하여금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둠에서 절망하던 중에

가끔 시골에 내려와서 전도를 하며 동네를 다니시던 전도사님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먼 거리였지만 매주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성가대에서 찬양 봉사를 하고 청년부에서 총무를 하면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는 멋진 청년으로 그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성가대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족함은 기도하며 채워나갔습니다.

목소리가 아닌 진실함을 담은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셈이 밝아서 총무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제일 싫어하던 그는 정직하게 총무직을 감당하며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그녀를 선물로 만나게 하신 것일까요?...

 

그녀는 회사에서 아픔을 당하기 전까지 좋은 학교를 나와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오던 집안에서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녀가 직장 상사가 쳐놓은 덫에 걸려 그 사람 대신 누명을 쓰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말도 안 되는 이 현실들도 이들의 만남을 위한 배경이었을까요?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그녀. ⓒ최선영

우리는 그들의 결혼 소식에 그동안의 모든 행적들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티를 내면서 둘이 사랑을 나누었는데 왜 우리는 몰랐을까요...

휠체어에서 그를 번쩍 들어서 의자에 옮겨주며 자신이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이라는 것에 감사할 때도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려 할 때도

“제가 할게요”하며 멀리 있다가도 달려와서

그를 도와줄 때도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그녀의 성격 탓으로 만 생각했습니다

청첩장을 받아들고서야 우리는 숨김없이 나누고 있었던 그들의 사랑을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에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보다 먼저 교회를 나왔고 그녀보다 먼저 그를 만났습니다.

누구보다 그를 아껴주고 친절하셨지만 당신의 딸이 그를 선택했다는 것에는

고개를 돌리시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설득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누구보다 반겨주어야 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혹여라도 상처받을까 봐

마음에도 없는 반대를 끝까지 하셨습니다.

 

장애물은 넘어버리면 장애물이 아닌 게 되나 봅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사랑이라는 큰 도구로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두 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하는 그와 그녀. ⓒ최선영

“오빠를 처음 본 순간 전기에 감전된 느낌이었어요~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고 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오글거리는 그녀의 멘트를 들으며

첫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군대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내가 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너를 만날 수 있었을까?...

너를 만나게 해 준 그날의 사고가 내겐 선물인 것 같다"

끔찍한 기억을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그를 보며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잣대를 가지고 본다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들의 사랑 앞에

어떤 잣대도, 그 어떤 의견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랑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밖에

우리는 다른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아들. ⓒ최선영

그녀의 눈에는 휠체어에 앉은 그를 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데서 나오는 생명의 빛을 그에게서 본 것이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렵게 얻은 두 아들이 있습니다.

씩씩하게 자란 아들들이 이제 엄마 대신 아빠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아빠를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그들의 사랑의 열매로 피어난 아들들의 밝은 미소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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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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