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가 그려져 있는 이미지. ⓒ은진슬

** 지금부터, 3에서 4회에 걸쳐, 출산 후 아이가 백일이 되기까지의 육아에 있어 장애부모의 관점에서의 감회, 애로사항, 좀 더 나은 육아 환경을 위한 제안 등을 칼럼에 담아 보고자 한다.

출산 한 달 전.

​이 때쯤부터 이제 곧 세상에 나올 아가를 어떻게 맞아야 할지, 숱한 수술을 경험했던 나에게조차도 두렵기만 한 출산과정 등등이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게 했다.(무거운 몸과 숨이 턱턱 막히는 불편감, 부어오르는 손발은 말할 것도 없고…)

​갑상성 문제와 임신성 고혈압 등으로 임신중독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임신기간 내내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종합병원 산부인과에 다녔다.

임신 9개월 들어가기 전 1.6킬로그램을 찍었던 이응이는, 마지막 한달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히 체중을 불려갔다. 의사는 내 골반구조와 체형,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아이가 3킬로그램을 넘으면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이가 예상보다 빠른 9개월 2주차 쯤에 3킬로를 찍고 말았다.

​이 때부터는 언제라도 출산에 대처하기 위해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38주경, 갑자기 양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진찰을 마친 담당 의사는 바로 집에 가서 짐을 싸 들고 입원하라고 하셨다. 양수가 줄면서 ‘아이가 전혀 놀지 않는다’며, 근심스런 표정으로 서둘러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부랴부랴 돌아와,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몇 가지 사항들을 체크해 두고는, 미리 싸 둔 캐리어를 끌고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출산 대기실에 도착하니, 산소호흡기를 세팅하고 배에는 태동기(아기의 움직임과 호흡 같은 걸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기)를 채우고는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산소포화도 같은게 문제 되는 것 같았고, 아이가 움직이고 놀아야 하는데, 아이가 놀지 않는다며 체크를 반복할 때마다 담당 레지던트는 근심스럽게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아이의 안위가 불안했지만, 병원 생활에는 이력이 나있는 사람이어서 그냥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독일에 사는 절친에게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불안을 달랬다. 밤새도록 그곳에는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 내가 차고 있는 태동기와 산소호흡기의 반복적이며 건조한 스타카토 리듬을 들으며 너무 익숙하면서도 너무 낯선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유도분만을 시도해 보자며 주사를 투여했음에도, 아이는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세상에 나오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살아 온 세상이 충분히 만만치 않았고 힘겨운 곳이었으니 그 심정 충분히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뱃속에 영원히 있게 해줄 방법도 없으니, 안타깝지만 아가야 너는 이제 나와야 한다며 씁쓸한 생각도 했다. 이제는 별수 없이 제왕절개를 서둘러 해야 한다는데, 수술방이 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오전 내내 수술방이 나기만을 기다리며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냈다.

​열두시가 갓 넘은 시각, 갑자기 수술방이 났다면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분주해졌다. 어차피 링거도 꽂고 있었고, 수술 준비는 다 되어 있던 터라 부랴부랴 이동침대에 실려 수술방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이 병원 수술방에 들어와 본 건 2년 전이었다. 그러니 일단 마취주사를 맞기 시작하자 나는 별두려움도 저항감도 없이 약간의 안도감마저 느끼며 상황을 비교적 차분히 관조할 수 있었다. 물론, 늘 전신마취를 했던 다른 수술과는 달리 이번에는 부분마취만 한다는 게 다르긴 했다. 이게 생각보다 불편한 경험이 될 줄은 그 땐 미처 몰랐다.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찰의 한국성과 이름 사이에 미들네임을 영어로 쓰고 있던 레지던트(그녀는 적어도 임신 중기는 지난 것 같았다)가 그야말로 자신의 온 몸의 무게를 실어 팔꿈치 이하의 전완부를 밀대처럼 사용하여 뱃속의 아이를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밀어내는 모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또렷했던 나는 일단 부담스러웠고, 그녀가 걱정되었는데… 그녀도 그 일을 하면서 자조 섞인 말투로 헉헉거리며 동료 의사에게 수술 때마다 자신의 뱃속 아기가 걱정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할 수는 없었던 걸까?)

환자로서 부담스럽고 불편했고, 같은 임산부로 동정심도 느껴졌다.

싹둑싹둑, 쓱싹쓱싹, 차가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의사들의 대화소리…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긴장을 이완할 수 있는 음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담당 박사님은 음악을 좋아하는 분은 아닌 듯 했다. 수술을 많이 받아 보면 알 수 있는데, 의사의 성향에 따라 수술방 분위기도 각양각색이다.

​내가 7개월도 다 못 채우고 태어나 잉큐베이터에서 지낼 때부터 내 눈을 수술하고 약 37년간 나를 치료해 주셨던 주치의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프로급으로 연주하시는 클래식 애호가셨다. 그래서 그 선생님의 수술방에는 언제나 바이올린 선율이 흘렀고, 그것은 수술시 의사를 도와 안구운동을 적절히 해야 하기에 부분마취를 한 채, 침대난간을 잡고 몸이 2센티미터 정도는 긴장으로 공중부양 하여 덜덜 떨고 있어야만 하는 나와 같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부분마취를 하고 실패하지 않는 모든 경우의 수가 20%이하였던 무시무시한 눈 수술을 받던 날에도 베토벤의 스프링소나타가 흐르고 있었다.

​몸속에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시간관념이 정확한 나임에도 가늠할 수 없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르자, ‘13시 01분(?) 3.32kg 남자아이 출산하셨습니다.’라는 건조한 멘트와 함께 아이가 내 배속에서 꺼내어졌다. 수술로 태어난 아기는 울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울려 주었다. 하지만, 약에 취해서인지 TV에서 본 것 같은 우렁찬 울음소리는 아니었고, 그냥 ‘응…애…’ 한 번 뿐이었다. 울음이 시원하게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만져보지도, 실체를 확인해 보지도 못한 내 아이는, (건조한 멘트와 함께 잠깐 내 얼굴에 덮힌 커버를 들어 올려 힐끗 보여주긴 했지만, 시각장애인인 내가 제대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무언가 처치를 받고는 유리상자 같은 것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내가 정말 아이를 낳긴 낳은 건가 싶었다.

그냥 늘 하던 수술을 받은 느낌뿐이었다.

​아이가 떠난 후, 금방 수술방을 나올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고 남편이 말했을 정도로 나는 수술방에 오래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실에서 정신을 추스르고 입원실로 옮겨졌을 때가 오후 3시도 넘었으니까.

나는 내가 엄마가 된 걸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지리멸렬한 수술 한 번 더 받은 느낌뿐이었다. 대학병원의 특성상 산모의 상황에 맞춘 섬세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도 않았고, 가족출산실의 경쟁은 엄청나게 치열해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차피 건강 문제 때문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에 가족출산실에서 출산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더욱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출산을 위한 수술 및 입원기간 동안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불편이 있으니 이러저러한 것을 감안해 달라거나 배려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는 대학병원 시스템은 너무 팍팍하고 빈 틈 없이 돌아갔다.

시각장애인 산모를 위해 3D프린터로 아이의 모습을 구현하여 준 하*기스 브라질지사 ⓒ유투브

작년에 하*스 기저귀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PNG는, 3D프린터로 브라질에 사는 시각장애임산부의 초음파사진 속 태아를 3차원으로 구현하여 선물하였다. 초음파사진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 엄마에게는 너무도 감격스럽고 뜻 깊은 선물이었기에, 반향도 컸던 걸로 기억한다.

​임산부들이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라는 초음파 촬영 시간이 시각장애인인 나에게는 정말로 의미없고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니, 나의 담당의사 선생님도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수술 후 아기를 한 번이라도 안아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장애를 가진 임산부에게는 각각의 장애 영역에 따라 의료적으로나 비의료적으로 나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할 사안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한 일선 병원 의료진들의 인식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장애인 임산부들만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병원을 만들자고 하면, 수익성이나 수요 공급 차원의 문제에서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차선은, 각 지역의 국/공립 거점병원에라도 장애인 임산부의 임신과 출산 과정을 전문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척수장애나 뇌병변장애 등 의료적으로도 다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장애 영역에 대한 의료적 전문성을 높이고, 장애 영역별 임산부와 산모들을 케어할 때 필요한 적절한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어 의료진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또한, 일반 병원에서 장애로 인한 출산시 위험부담 등을 이유로 진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 임산부를 진료하는 병원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주어 예비 장애부모들도 맘 편하게 진료 받으며 여느 평범한 예비맘들처럼 새 생명의 탄생의 기쁨에 오롯이 집중하며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