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이 그려진 이미지. 은진슬

요즘 유치원이나 학교들은 졸업식이 한창이다.​ 이맘때가 되면, 한해 동안 우리 아이들을 잘 맡아 가르치시고 사랑해 주신 선생님들께 무언가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의 같은 마음이리라 여겨진다.

​우리 유치원 반톡방에도 수료식 일주일 전부터 스멀스멀 이런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우리 선생님께서 1년 간 수고가 많으셨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년이 끝나 직무연관성이 없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 졸업이 아니고서는 유치원에 계속 다니게 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 등등…'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늘 그렇듯, 약 20%내의 목소리 크고 채팅량도 많은 엄마들에 의해 선생님께 반 아이들이 단체로 수료식 날 등원 때 꽃을 드리며 노래를 불러 드리자는 이벤트 쪽으로 옮아갔다.

​누구 엄마가 꽃을 알아봐서 산다. 누구 엄마가 유치원에 미리 양해를 구해 먼저 등원한 방과후 과정반 아이들을 유치원에 들어가 인솔해 나와서(우리 유치원은 부모교육이나 학부모 행사가 아닌한, 기본적으로 엄마가 유치원 내에 들어갈 수 없다), 꽃을 나눠 주며 등원하는 반일반 아이들과 합류하여 선생님께 노래를 불러 드리고 꽃을 드리며 등원하면 좋겠다. 애들 노래 따라 부를 수 있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온다…

미안하지만, 좀 세게 발언하겠다.

‘얼쑤! 엄마들이 신났다.’

‘유치원은 애들이 아니라 엄마들이 다니고 있군!’

몇몇 빅 마우스 엄마들의 뜨거운 채팅 속에 아이들은 없었다.

심지어, 이건 우리만의 깜짝 이벤트이니 다른 반엔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둥, 선생님이 깜짝 놀라 감격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물 날 거 같다는 둥… 물론, 아무리 까칠한 나임에도 엄마들의 선한 의도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를 수가 없었다.

​한해 동안 자신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고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는 법을 알려 주어야 하는 건 맞고, 그 역할은 부모가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엄마의 마음이 아닌, 아이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이벤트 속에 아이의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이에게 나는 며칠 전부터 이제 달님반 선생님과 헤어지게 되니,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편지로 쓰고 종이접기나 글라스데코 같은 걸 만들어 선물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해 둔 상태였다.

​아이는 이미, 졸업을 앞둔 형아 누나들을 위한 편지와 선물을 만드느라 며칠 째, 쓰기 싫어하는 글씨도 스스로 쓰며 자가발전으로 열심을 내고 있던 상태.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다른 엄마들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너무너무 고민스러웠다.

​아이에게 내 가치관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소수가 되기를 유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말하고,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결과를 야기하는지 나는 40년을 살아오며 이미 몸소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특히나 더 많았다.

과연, 내가 아무리 옳다고 여긴다 하여, 아이를 그 힘든 길로 이끌어야 할까?

평소에는 아예 알림을 꺼두는 반톡방에서 엄마들이 일을 끌어가고 유치원에 허가를 얻으며 그들만의 이벤트를 진전시켜 가는 채팅을 귀를 부릅뜨고(?^^) 지켜보던 나는, 며칠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어렴풋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아이에게 물어 보자.

이 모든 상황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해 주고,

늘 내가 그렇게 했듯이 기본으로 돌아가 이응이의 마음을 들어 보자.

'이응아, 엄마가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이제, 곧 우리 달님반 선생님과 헤어져 형님반에 가게 되잖아? 그래서 이응이는 달님반 선생님께 편지랑 작은 선물도 준비 했고…’

‘맞아.’

‘그런데, 우리 반의 몇몇 엄마들이 꽃을 사서 등원길에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고 선생님께 드리면서 등원하자고 하는데, 이응이 생각은 어때?’

‘나는 그런 거 안 하고 싶어. 이상할 것 같아.’

‘왜?’

‘엄마들이 맘대로 정했잖아. 우리가 감사 하는 건데, 엄마들이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갔어.’

‘그렇게 생각 하는구나! 사실 엄마도 이응이랑 똑같은 생각 하거든. 그런데, 이응이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면, 이응이의 마음을 지킬 수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은 꽃을 드릴텐데, 혹시 이응이가 나만 안 드려서 서운하다는 외로움 같은 걸 느낄 수도 있어. 그리고, 그게 불편해서 이응이가 엄마들 뜻대로 꽃을 드리며 등원하기로 선택한다면, 이응이의 마음과 조금은 다른 일을 하게 되지만,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께 꽃을 드리며 함께 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엄마 말 이해할 수 있어?’

‘응’

‘그럼, 이응이는 어떤 선택을 하고 싶어?’

‘나는 내 편지랑 글라스데코 드리고, 꽃 드리면서 등원 하는건 안 할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그렇게 전할게.’

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역시 전생에 독립군이었을지 모를 내 아들 답다. 하지만, 혹시나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가 은연중에 느꼈을지 모를 엄마의 ‘뜻’, 엄마의 ‘선호’에 휘둘리는 건 아닐까 몇 번 더 텀을 두고 물어 보고는, 마음 편히 아이의 뜻을 카톡방에 알렸다.

말하지 않는 엄마들은 많아도, (나처럼) 반기를 드는 엄마는 없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담백하게 이응이는 그날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다고만 알렸다.

역시나 오지라퍼 엄마 하나가 개인톡을 보냈다. 혹시 이응이가 그날 등원하지 않느냐고… 나는 오해가 없도록 담백하게 아이의 뜻을 물었더니 원하지 않기에 전한다고 말씀 드렸다.

나는 첫번째 스포일러 맘이 된 것이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렇게 엄마주도적인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면, 정식으로 카톡의 투표기능을 활용해 투명하게 의견을 구할 수는 없었는지?

그걸 너무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여태까지 초대도 하지 않던 엄마까지 학기가 끝나가는 이 마당에 굳이 반톡방에 초대했어야 했는지?

(그렇게 초대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초대하지, 너무 별로다.) …

하지만, 어차피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변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기에 그 말은 그냥 속으로만 삼키고 내 아이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만 간결하게 전했다. 어차피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의 티타임 가십거리가 되기엔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테니까…

유치원 수료식 아침, 드디어 꽃을 드리며 등원하기로 되어 있던 바로 그 날.

아이와 등원 직전에 다시 한번 어떤 일이 있을지, 정말 그래도 괜찮은지 물어보고 아이를 보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일은 어른도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나라에서 소수가 된다는 것, 남들이 모두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원하자마자 아침에 어땠냐고 물었더니, 너무도 쿨하고 담백하게 괜찮았다고 말해 주었다. 본인 말고 몇몇 아이들도 꽃을 받지 않았고, 자신은 괜찮았다고…

아이의 천진하고 담백한 상황 설명에 그제서야 근 일주일간 노심초사했던 마음의 평정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혹자는, 뭐 그렇게 까칠하고 유난하게 엄마도 아이도 힘든 일을 자처했느냐,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충 묻어가지 그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도 이렇게 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저 눈 한번 가리고 아웅 하면서 편한 길을 가는게 나나 아이에게나 더 안전하고 편안했을 수 있다는 걸 결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소수의 의견, 남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등이 인정 받지도, 존중 받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조금 힘들더라도, 내 아이를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오롯이 귀 기울일 수 있는 아이, 모두가 오른손을 들 때 용기있게 왼손을 들 수 있는 아이,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보더라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다.

이응아! 세상을 살다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마음의 소리와 생각에 귀 기울이며 힘들더라도 남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해야 할 때가 가끔 있단다. 이번 일로 이응이는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된 건데, 정말 멋지고 대견했어. 남과 다른 생각을 갖는 것, 남과 다른 결정,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거든. 조금은 외로울 수도, 심지어 다수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면, 이응이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엄마는 이응이가 그 외로운 길에 기꺼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

멋진 아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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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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