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판이나 이의제기 대신 개인적인 회상을 조금 풀어 놓을까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혹시 일년 중 장애학생의 삶 중 가장 고단하고 힘든 시기가 언제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2월말 3월초가 아닐까 한다.

물론 독자들 중에는 장애학생으로 살아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장애학생으로 살아보았거나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장애학생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이들도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또, 특수교육을 받은 사람이냐 아니면 통합교육을 받은 사람이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교육환경이 많이 변해 내 이야기가 현실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독자들은 그냥 중증시각장애를 가지고 통합교육을 받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해 주면 좋겠고, 지금도 나와 같은 상황인 학생들은 그래도 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이기에 저 사람은 지금 이런 회상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좋겠다.

만일 그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통합교육 환경에서 살아가는 시각장애학생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등교하면 지나가버린 방학이 아쉬워 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막상 봄방학이 되면 하루하루 가는게 그렇게 한숨만 나오는 일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형제들이나 동네 친구들을 보면, 그냥 신나게 뛰어 놀기도 하고, 설날 받아서 모아두었던 세배 돈을 꺼내거나 부모님을 졸라서 새 가방, 새 옷, 새 신발, 새 학용품 등을 사와서 다가올 새학기에 대한 설레임을 만끽하곤 했다. 내가 그들처럼 설레여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렇다.

첫째, 새 학용품의 대명사인 새 노트, 예쁜 그림이나 무늬는 나에게는 그저 노트를 빌리기 위해 물색해 봐야 하는 새로운 학급 친구들 얼굴처럼 느껴졌다. 무늬나 캐릭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친구에게 부탁해야 겨우 노트를 빌려서 필기를 할 수 있을 것처럼만 생각되었다.

둘째, 새 교실과 새 친구들, 새 교실은 어렵게 찾아가야 할 목적지였고 이동수업이 진행되기라도 하면 그 과목수 만큼이 고스란히 탐험하듯 찾아가야만 하는 곳들이 되어주었다. 새 친구들은 학급 학생수의 30~40%가량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10명 중 3~4명 정도는 놀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새로운 선생님, 이게 가장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문제였다. 전교에 시각장애학생이라 해 봐야 나 한명 뿐이었기에 교사들 중에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국 그 문제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고 난 후라야 조금 해결되는 부분인데, 어머니는 개학 당일 날 학교에 다녀가시기보다 2~3일 정도 지나서 담임교사가 어느정도 상담할 여유가 생긴 후에라야 학교에 오시곤 했다.

최소한 며칠은 극도의 불안감 속에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과목별로 다른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중학교부터는 분명히 책을 보고 있는 것인데 바짝 고개를 책에 붙이고 보고 있기에 대놓고 잔다고 뒤통수를 맞기 일쑤였다.

이렇다보니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점인 2월말과 3월초는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늘 입술이 다 부르트고 예민해져서 온 식구들에게 화풀이하기 일쑤였다.

한편, 대학 진학 후에는 어떠했을까? 그건 또 그것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그래도 좀 넓은 편이어서 건물만 40~50여개 가까이가 있었다. 새 학기가 되어 과목별로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같은과 친구들도 수업은 대부분 다른 것을 듣기에 순전히 혼자 찾아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가 산을 깎아서 만든 탓인지 이쪽으로 들어가면 3층인데 저쪽으로 들어가면 1층이고 구조는 또 왜 그리 복잡한지. 또, 수강신청은 선착순인지라 컴퓨터 화면을 보는게 불편한 나에게는 인기 강좌들은 넘기 힘든 벽이기만 했기에 그나마 친한 친구하고도 같이 수업을 듣기가 녹녹치 않았다.

노트를 빌리려면 안면몰수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학교안에 복사해주는 매장이 있어서 빌려오고 찾아가서 돌려주고 하는 번거로움은 조금 줄었다. 다만, 대상을 잘못 선택하면 아무리 얼굴을 바짝 붙이고 알아보려 해도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는 단점은 있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의에 사용하는 교재가 여러권 이거나 과제로 책이나 논문을 읽고 와서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책 읽는 속도가 비장애인의 몇 배는 느린 나는 밤을 세가며 준비하기 일쑤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성인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이 되었기에 어머니와 같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새 학기에 학교에 찾아와 상담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 학기는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한 시기였다.

지금은 분명히 사회가 변하였기에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을 것이고 통합교육을 받는 시각장애학생이라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2월말과 3월초 장애학생 중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더 부담스러운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장애학생의 신학기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교육이나 복지관련 분야에서도 장애학생들의 새 학년, 새 학기에 대하여 필요한 지원제도에 대해 숙고해 보고 관련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을 우리 후배들 모두 용기있게 새 학기를 맞이하기를, 또 행복하기를 당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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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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