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도시락이니 교복이니 하는 말들을 종종 듣게 된다.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라는 호칭을 달고 살아가며 느껴야 하는 무게감이 학창시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만들어 내기에 이런 이벤트나 상품을 등장시킨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학창시절이 내게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전혀 그립지조차 않은 시간이다. 칠판에 써 놓은 글씨는 도통 알아볼 방법이 없어서 답답했고, 심한 운동을 하면 눈에 이상이 생긴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체육시간도 혼자서 교실을 지키는 시간으로 변했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인가 한번은 컴퓨터실습을 한다고 컴퓨터실에 가서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칠판에 뭔가를 잔뜩 적어놓고 각자의 자리 앞에 있는 컴퓨터에 그대로 입력해 보도록 하는 수업이었다.

MSX라는 이름이 붙은 8비트 컴퓨터는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이 잔뜩 생기게 만들었는데 정작 따라 입력할 방법도 없고 처음보는 기계인지라 어떻게 조작하는지 조차 몰라 그냥 혼자 멍하게 다른 생각만 하다 수업을 마쳤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25년쯤 지났을 무렵 이제는 컴퓨터로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능숙해 졌다.

그런데 초등학교 컴퓨터실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어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학원에서 통계수업을 듣는데 실습이 컴퓨터실에서 진행된 적이 있다. SPSS를 실행하고 프로젝터에 연결된 화면을 보고 따라하는 수업이었는데 초등학교때 그러했듯 그냥 우두커니 시간이 빨리 지나가 주기만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과제도 부여되었고 시험에도 관련 내용이 출제되어 성적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었고 여러 가지 보조공학 기술들도 발전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컴퓨터 수업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불이익은 더 커져 있었던 것이다.

사회인이 된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내 권리를 충분히 주장할 수도 있으며 정당한 편의제공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초, 중, 고생들은 어떨까? 그 시절의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특히나 컴퓨터나 프리젠테이션 파일들이 수업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니 더욱 걱정이 된다.

국가교육과정정보센터 웹사이트 화면. http://ncic.go.kr/을 통해 교육과정 개정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봉래

그런데 교육계는 이런 우려를 더욱 커지게 할 지각변동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변화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특수교육계의 대응이다. 지난 2015년 교육부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지난해 유치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변경된 교육과정을 도입해 나가게 된다. 여러 변화들이 예정되어 있지만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정보(소프트웨어)교육이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2018년부터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이었던 ‘정보 교과’가 필수과목이 되어 34시간으로 편성되고, 고등학교에서는 심화 선택과목이었던 ‘정보 교과’가 일반 선택과목으로 바뀌게 된다.

2019년에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실과 과목에 배정되어 있던 정보 수업시간이 12시간에서 17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중학교 교육과정의 개편이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특수교육계에서도 ‘정보 교과’를 필수과목으로 지도해야 하는 것인데 맹학교 몇 곳과 특수교육지원센터 등을 통해 확인해 본 바로는 시각장애 중학생의 정보교육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교육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듯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맹학교나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조차 이러하니 시각장애학생들이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일선 학교는 어떠할까?

내가 통합교육 환경에서 컴퓨터교육을 받아보았던 사람으로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바로는 적어도 이 교육과정개편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특수교육계의 SW교육 필수과목 지정에 대한 대응에 이의를 제기한다.

대표적 블록형 코딩 프로그램인 스크래치 구동모습. ⓒ조봉래

먼저, SW교육이 도입된 배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SW교육을 통해 프로그램의 활용법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교육함으로써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관련분야 전문가를 통해 조언을 구한 바로는 미국의 코딩교육 등과 유사한 방식의 수업이 될 것이며 ‘스크레치’나 ‘엔트리’라는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스크래치나 엔트리는 블록형 코딩 프로그램이라 하여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MS-Powerpoint와 유사하게 다양한 모양의 블록들을 화면에 배열하고 변수값 등을 입력하여서 SW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스크래치는 스크린리더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연구진을 직접 만나 확인해 본 바로는 그나마 엔트리가 시각장애인 접근을 염두에 두고 보완 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느 정도 선까지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SW교육을 진행하게 된다면 시각장애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앞장서 줘야 할 특수학교 교사 등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30년 전 컴퓨터프로그래밍 교육에 쓰이던 GW-BASIC와 같은 것을 이용해 단순히 코드를 입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는 이도 있다.

반면 일반학교 교사들은 SW교육에 대해 교사수급에서부터 교과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고 연수프로그램 등을 통해 교육과정 개편에 대비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SW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교육 시장까지 형성된 것이 현실이다. 유독 특수교육계만 이러한 변화에 미온적인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물론, 교육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나친 기우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미리미리 대비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이 시행된 이후 발견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면 결국 그 해결을 위해 사용된 시간만큼 우리 시각장애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 때 우두커니 앉아있어야만 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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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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