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말로 풀이하면 몸을 닦고 집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가 평안해진다라는 뜻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선비가 해야할 일의 순서인데 지난 20일 정부의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미래부장관이 발표한 ‘취약계층 정보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책방안’에 대한 보도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기도 하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웹 접근성과 모바일 접근성을 제고하고, 정보접근성 법적적용 대상범위를 확대하며, 정보접근성 관련 제품 보급과 시장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사결정권자의 인식제고와 실태조사 결과 공개, 개발자 세미나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로부터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 발표된 것만으로도 환영할 수 있겠으나, 시각장애인의 한 사람으로 매일 정보검색을 하며 여러 장벽들을 마주하게 되는 나로서는 이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치국평천하는 언급하고 있지만 수신제가는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 생각된다.

미래부산하 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공지사항 메뉴에서는 가끔 내용을 알 수 없는 게시물을 발견하곤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공지사항 캡쳐. ⓒ조봉래

한국정보화진흥원에 게시된 게시의 본문을 스크린리더를 사용하여 접근해 보면

"2017년도 국가정보화 추진방향 설명회 새창 방문한 그래픽 링크"

"설명회 포스터 프로그램안 이미지"

"참여신청 새창 방문한 그래픽 링크"

라는 TTS 음성만 출력될 뿐이다. 게시물에 글을 입력하는 대신 행사포스터 이미지를 그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공지에 사용된 포스터. ⓒ조봉래

눈으로 볼 때에는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게시물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엇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미래부의 접근성 관련 정책 수행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정보화진흥원 홈페이지에서 조차 이러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과연 미래부의 정책수립 담당자들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정책발표에 앞서 집안단속부터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다른 기관들의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라는데 있다. 지난해 복지부 산하의 장애인관련 사업들을 수행하는 한 공공기관에서 채용정보사이트를 별도로 구축했는데, 여기에 등록된 채용공고 게시물이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예처럼 공고문을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그대로 등록한 것이었다.

담당자와 전화통화로 해당 게시물은 바로 수정이 되었지만 여러 기관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접근성지침을 만들고 웹 개발자들이 이 지침을 준수하도록 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웹사이트 이용이 용이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콘텐츠나 게시물 등을 등록하는 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지침을 만들고 개발자들을 교육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담당자들일 것이다.

도서관을 한 번 생각해보자. 방문객을 고려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서고를 잘 구성해 두었더라도 도서를 정리하는 담당자나 사서 등이 그 규칙을 무시하고 책을 아무렇게나 꽂아 놓는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책을 쉽게 찾아 열람할 수 없을 것이다.

접근성도 마찬가지이다. 의사결정권자와 웹 개발자 등에 대한 인식 제고도 분명 중요하지만 도서관의 예처럼 콘텐츠와 게시물을 제공하는 실무자들의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함에 있어 이러한 사항들도 충분히 고려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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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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