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며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불변의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암이나 불치병에 절망하고 좌절한다.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는 아직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 아주 머나먼 미래로만 생각했기에 갑자기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에 절망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다는 것,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어떨까? 비장애인들 중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역시 비장애인일 때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다쳐서 갑작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거리에서 지하철 역사에서 마주치는 장애인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본래 장애인이었던 것처럼 나와는 무관한 삶이라 여겼기에 무심히 스쳐갔다.

그들 역시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불리기 전에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들, 딸로 아빠이자 엄마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 시각장애를 가진 나를 보는 비장애인들 역시 과거의 나처럼 생각하고 나를 지나쳐 갈 것이다.

이렇듯 나와 무관하다고 여겼던 삶이 아무런 예고 없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을 때 내 머릿속 의식은 비장애인으로 신체는 장애인으로 내안에서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삶에 대한 단절을 경험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갔다.

5년 전 나는 갑작스런 병으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눈은 이미 실명상태였다.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한줄기 빛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는 국내 유명한 병원들을 입퇴원하며 치료를 받았었다.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일말의 희망과 더불어 세상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존하던 시간이었다. 눈을 떠도 캄캄한 어둠을 견딜 수가 없었고 조금이라도 몸을 잘못 움직이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나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처자는 어디가 아파서 왔데?"

"눈이 갑자기 안보여서 그걸 고치려고 왔다던데..."

"에그, 전생에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사람은 뱀으로 환생하고 그 다음이 봉사로 태어난다던데..."

그분들이 내가자고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귀에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어떻게 했을까?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알지 못하는 내 전생에 대해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하고 기도했었다. 그들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결국 봉사가 되었고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셈이다.

그들의 대화는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었다. 비장애인이었던 나, 장애인이 된 나, 사악하고 죄 많은 전생의 나. 어느 것이 진짜 나인건지....

그리고 나는 오늘 이렇게 반문해 본다.

만약 내가 그들 자신이었거나 혹은 그들의 가족이었다면, 만약 장애가 생로병사처럼 모든 사람이 거쳐야하는 과정이었다면 그들은 과연 그런 말을 했을까?

세상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내 마음이나 어둠속에서 불편하게 살아갈 내 삶 그리고 애타게 나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려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삶을 살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그들은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 전생의 정체성을 나의 신체적 불편함만으로 판단하고 결정지어 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요즘은 장애인 10명 중 9명이 나처럼 후천적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장애를 갖고 장애인의 삶을 살아가기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 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우리에게 장애도 불가항력적으로 삶 속에 들어왔을 뿐이다.

신체적 기능의 결함이나 상실로 외모가 변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은 있지만 우리의 본질이 변형되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장애인일 때의 내 모습과 삶 그리고 현재 장애인인 내 모습과 삶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의 자아는 변함없으며 나는 여전히 딸로 엄마로 아내로 존재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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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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