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소복히 눈이 내렸다.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한껏 분위기에 취해본다.

얼마만의 눈인가?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눈길은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뛰고 싶은 유혹이 온다.

설경. ⓒ박금주

아참! 오늘 남편 레슨가는 날이지.

아뿔사, 내 현실을 잃고 마냥 난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순간

걷고 싶던 눈길이 걱정으로 다가온다.

길이 미끄러울 텐데

눈이 많으면 휠체어를 어떻게 밀지

레슨 가는 곳이 2층이고 골목인데 누가 남편을 업을 것인가.

여러 가지로 방법을 찾아보지만 답이 나오질 않는다.

“여보 길 미끄러운데 오늘 못 간다고 연락 좀 해봐요.

당신은 업혀서 모르지만 업는 사람도 힘들 거야.

교수님도 오늘 바쁘다고 하셨는데 우리 때문에 일정이 분주 하실 거야”

남편 황영택씨를 계단으로 업고 내려가는 모습. ⓒ박금주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은 전화를 해서 못갈 이유들을 말했지만

“영택씨만 괜찮으면 난 괜찮아요”

두 마디의 말이 필요없이 우리의 의지는 꺾여졌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불과 30분전의 낭만이 이젠 원망으로 다가온 눈길.

조금만 더 설득해 보지 왜 굳이 가려는 걸까

늘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은 이유가 오늘 남편을 만들었지만

정말 나가기 싫은 외출이 되어 버렸다.

레슨실이 있는 2층엘 결국 남편은 업혀서 올라갔다.

눈이 쌓인 풍경. ⓒ박금주

25년 동안 내 삶속의 계절은 눈이 오면 비가오면 더우면 추우면 어떻게 외출을 할까. 우산은 어디서 큰 것을 사고 마비된 다리를 따뜻하게 할 방한내의를 사고 더워도 에어컨을 켤수 없는 모든 것이 남편 몸 상태로 셋팅 된 것 같다.

난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싶고 비가오면 창 넓은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낭만도 나에겐 꿈이 되어 버린지 오래된 것 같다. 내가 갑자기 낭만에 취해 호사를 누리려 했던 것도 그저 한여름밤의 꿈으로 돌아갔다.

남편의 레슨 동안 습관처럼 걱정이 밀려온다.

날이 추운데 가는길은 얼지 않아야 될 텐데.

도대체 눈은 왜 온거야 휴!

오늘도 무사히 귀가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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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주 칼럼리스트 결혼한지 5개월 만에 남편이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됐고 그 뒤로 평범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24년을 살고 있다. 장애를 가진 남편은 비장애인이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멋진 삶을 살고 있고 아들도 하나있는 47세의 주부이다.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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