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켠 우리 아이들 위한 여유와 배려의 꽃밭을 가꾸어 보아요란 글이 씌여진 이미지. ⓒ은진슬

이 칼럼은 지난 2016년 12월 23일자 칼럼 <시각장애 맘의 요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후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은진슬입니다.

제가 지난 연말에 썼던 칼럼이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면서 평소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이번 칼럼을 읽어 주시고, 다양한 의견들을 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의 의견을 통해 제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비춰 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칼럼을 쓰는 사람은 제한된 지면에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 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집단의 상황과 생각, 느낌을 공유하며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에 작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작은 변화를 꿈꾸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지면의 한계로 인한 소통의 제한성, 서로의 이견 등으로 인해 배타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들까지도 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직업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간의 건강한 소통과 세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인 만큼, 세상의 다양한 의견들은, 그것이 제 견해에 우호적이든 배타적이든 간에 제가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매우 양질의 자양분이 되어 준답니다. 그런데, 이번 칼럼에 대한 의견을 보면서, 칼럼의 의도와는 지나치게 달리 읽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칼럼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제 칼럼과 블로그가 사적인 포트폴리오나 다이어리의 수준을 넘어가게 되었고, 어느 정도 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시각과 상황을 대변할 만한 그릇이 되어 가다 보니, 제 칼럼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달되거나 하여 다른 장애 부모님들께 누가 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이번 칼럼이 약사님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약사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았다고 하여 화를 내거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약사님이 이러이러해서 잘못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 내 마음이 아쉬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거랍니다.

둘째, 약국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이 아프고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약사님께 제가 따로 찾아가 제 장애와 불편한 부분에 대해 미리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한 상태에서 이용하고 있던 약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아이와 병원에 갔다가, 약사님도 바뀌었고 약국도 한가한 터라, 약을 지으면서 제가 시각장애가 있어 약병 눈금이 보이지 않으니 좀 번거로우시더라도 약을 주실 때 유성펜으로 투약량을 표시해 주십사 정중히 부탁 드렸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갈 때마다 약병에 항상 표시를 해 주셨답니다. 게다가, 약을 타 달라고 부탁드리던 날에도 저와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셨기 때문에 저를 못 알아보셨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니, 그 날의 약사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모르셨을 수가 없었고, 제 어려움도 말씀을 드렸던 상황이기에 제 부탁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하다고 여겼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아쉬움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약한 속살을 보이며 정중하게 이해를 구했고, 어느 정도의 상호 신뢰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여겼던 상황에서 생긴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조금의 속상함과 아쉬움은 인간적으로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니까요.

셋째, 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로 남들과 조금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육아를 하는 많은 엄마 아빠들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 무조건적으로 이해 받고, 배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약 타기가 귀찮고 번거로워서 약국에 약을 타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블로그의 댓글을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적잖게 놀랐답니다. 제가 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제가 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장애부모 자조모임에서는 엄마 아빠들이 주변 사람들이나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하며 조심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신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이번 계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하며, 주위의 배려에 감사하며 그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넷째, 꼭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배려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를 배려하고 돕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다림, 작은 불편 등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내어 주시면 어떨까 하는 부탁을 조심스레 드려 봅니다.

(제가 그 배려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은 낯 부끄럽고 민망하지만요.)

약국 사례의 여유 없음과 조금은 달랐던 아이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작은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의사 선생님께서 언젠가, 아이의 코 안에 정확히 방향을 잡으시어 투약해 주어야 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을 처방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약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해 주시고는 이제 나가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약을 막 찾으시더니 저를 진료 의자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더니 제 손에 약을 쥐어 주시고는 아프지도 않은 제 코 속에 스프레이 노즐을 집어넣으셨어요. 방향을 잡아 주시더니 이 상태로 분사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분사를 하고 나니, ‘이제, 아이에게 어떻게 투약해야 하는지 아시겠지요!’라고 말씀 하시는 거였어요.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배려에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니, 아무래도 약이 스테로이드계라 과다 투약하는 것도, 적게 투약되는 것도 안 좋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으면 이렇게 설명 드리는 것이 정확한 투약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던 거라며, 의사선생님께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말씀 해 주셨답니다.

제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 건 아니기 때문에, 아이 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 주시는지 확언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몇 년 살면서 경험했던 약사님들이나 의사 선생님들은 약물의 투약, 오·남용 가능성, 투약 실수에 대한 위험성 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고 엄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접근성 문제로 투약 문제가 생겨 사고라도 발생하면, 미국 같은 경우에는 큰 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같은 크기의 같은 약 용기 때문에 구분이 어려운 약들의 경우,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질감이 다른 테이프를 붙여 준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함께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외국이라고 별스러운 서비스나 첨단의 기기가 갖추어져 장애인을 돕는 게 아니랍니다. 자필사인을 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이라 서류 내용 숙지와 사인해야 할 곳을 못 찾는다고 하면, 계약서 등을 함께 읽고, 사인할 공간만큼만 사인할 곳마다 네모난 구멍들을 뚫어 놓은 폴더를 덧대어 사인할 수 있게 도와준답니다.

이런 태도와 마인드가 작은 차이를 낳는 게 아닐까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점자보안카드를 신청하여 은행이 고객 당사자가 시각장애인임을 인지한 고객들은 인터넷뱅킹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실수로 뱅킹사고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면서요. (부글부글)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고요? 나는 이 점자 보안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 그러니 당신은 내가 시각장애인인 걸 모르는 거다. 하하하.

저는 VoiceOver(아이폰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탑제한 화면읽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스마트뱅킹을 이용하는 지금도, 한 번도 송금 실수 따위를 해 본적이 없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제 계좌로 돈을 잘못 송금해 돌려준 적은 있어도 말이죠.^^

아마도, 제게 멋진 배려를 해 주신 의사선생님의 소아과에서 우리 아이 뒤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꼬마 환자와 보호자는 약국에서보다 서너배는 더 기다렸을 겁니다. 그때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하원 시간대라 환자도 많았지요. 당연히, 의사선생님도 진료가 밀리면 힘드시긴 마찬가지였을테고요.

(게다가, 굳이 제게 투약 도움을 줄 좀 더 적절한 사람을 따져 보자면, 의사선생님 보다는 약사님이겠죠?)

​단지, 진료실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의사의 진료 행위이자 배려였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 상황의 본질은 제가 약국에서 겪은 일과 같은 셈이죠. 그런데, 모두가 상황을 다 볼 수 있는 약국에서, 내 시간에 피해가 되는 것이 고스란히 보이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조급해 하며 행여 저 장애인을 도와주느라 내 아이가 이 전염병의 소굴에 단 1분이라도 더 있는 건, 내 일정이 늦어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을 느끼신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너무 각박해지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친구를 배려하며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치잖아요. 우리 아이가 살아갈 더 나은 세상, 더 따뜻한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넓은 아량과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꿀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떤 일로, 누구에게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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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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