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배기 아들과 로봇만화를 보다 기겁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공이 악당과 싸우다 위기를 맞거나, 반대로 승기를 잡을 대단한 찬스의 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트랜스포메이션~”, “테이크 오프~”, “파워 스매시~”, “소닉터보~” 등을 외치며 핏대를 세우기 시작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로봇의 신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거나, 가공할 공격기술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아~ 씨, 아직 한글도 몰라 자기 이름 석 자도 겨우 그리고 있는데, 입에 달라붙지도 않는 영어를, 그것도 그것이 한국말이라 철석같이 믿으며 로봇의 아바타가 되어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숱한 날 밑줄에 밑줄 또 밑줄을 그어가며 형체조차 알아볼 수도 없는 맨투맨을 씹어 먹으며 영어를 공부했던 저로서는 엄청난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가 이러려고 영어 공부했나?” 싶습니다.

그 순간, 귀에 익은 단어 하나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갑니다.

“인티그레이션(Integration)~~~”

엉? 내가 아는 그 인티그레이션?

장애인의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할 때 그 ‘인티그레이션?’

뭐시여? 로봇 만화에 웬 통합? 하도 궁금해 전후 사정을 유추해 보니 이렇습니다. 우리들의 착한 로봇이 자기들끼리 힘을 합쳐 싸우다 죽도록 맞고 한 대 더 맞을 시국쯤 되니 “인티그레이션~”하면서 덕지덕지 달라붙어 종국엔 하나의 커다란, 한 눈에 봐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는 로봇으로 합체를 하더란 말입니다.

만화를 보며 상황을 유추해 그것이 ‘합체’를 의미하는 말이란 걸 알았지, 만약 아들과 함께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입니다.

“아빠, 아빠, 인티그레이션이 뭐에요?”

(유식한 척) “어? 그거 ‘통합’이라고 하는 거야. 흠흠.”

(흥분하면서) “아~ 아빠, 아빠! 로봇이 통합을 했어요. 통.합.요.”

“뭐? 그게 무슨 (dog)소리야?”

그런데, 가만히 듣고 보니 굉장히 일리가 있습니다. 합체란 것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둘 이상의 것이 합쳐져서 하나가 됨, 혹은 여럿이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가 됨’이라 되어있습니다. 여러 성질의 것이 의미 없이 달라붙어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 있게 달라붙어 오롯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을 합체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회통합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홀쭉한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건강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입으로 말하는 사람, 손으로 말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의미 있게 합체하여 하나의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통합인데요, 중요한 것은 그 하나가 된 사회가 따로 국밥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래 전 이익섭(1994) 선생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구별해 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장애인이 사회와 아주 밀착되어 있어 장애가 있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상태. 즉, 휠체어를 타고도 못가는 곳이 없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이동에 불편이 없으며, 잘 듣지 못해도 소통에 불편이 없고, 혈액투석을 해도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는 상태를 두고 사회통합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통합에 있어 굳이 ‘장애인’을 두각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장애인의 사회통합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통합이 잘 된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 혹은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시민’의 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이후 장애인복지의 최고봉은 ‘정상화’에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비장애인과 동일한 정상적인 삶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장애인에게 있어 정상적인 삶의 의미였던 것이지요. 80년 대 초 ‘울펜스버거’라는 학자가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장애인에게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Social Role Valorization).’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장애인에게 있어 사회통합의 척도는 비장애인의 삶의 형태와의 유사성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 전용’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 장애인 전용 주차장 등이 유니버설디자인의 형태로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변화하고 있는데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의식도 유니버설 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애써 사회 속에서 장애인을 구별해 내지 말고, 사회를 구성하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시민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제거하고, 시민들 사이에 오해나 편견이 있다면 죽 쒀서 개나 줘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니,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니 ‘편의증진법’이니 하는 법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입니다.

‘비장애인차별금지법’이란 법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비장애인을 위한 편의증진법’은 또 어떻습니까? 장애인 전용이라는 말이 사라져 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장애인 전용 법’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은 분명 언밸런스입니다. ‘시민권운동’이 그래서 일어났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봐 달라는 외침이었던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부자가 있듯, 키 큰 사람이 있으면 키 작은 사람이 있는 법이고, 건강한 사람이 있으면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 법이지요.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장애인의 사회통합.

이참에 그냥 ‘합체’란 말로 바꿔 쓰면 어떨까요? 한 몸에 있는 팔, 다리, 머리를 두고 애써 통합되었다고 말하기는 참 어색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있는 것이지요. 장애가 있건 없건 다양한 사람이 합쳐져서 하나의 유기적인 ‘사회’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 통합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다소 수동적입니다.

사회가 몸이라면,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눈, 코, 귀, 입 등은 다양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A4 용지에 손끝이 살짝 스쳐도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처럼, 장애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을 늘 염두에 둔다면 장애인의 사회통합이라는 논제에 대한 접근은 한 결 수월해지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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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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