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가고 2017년 정유년 새해도 어느새 십여 일이 지났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이 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일 것이다. 올해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들었던 말. 그렇다면 지난 2016년은 어떠했는가? 행복했는가, 불행했는가?

이 질문에 많은 분들이 “그냥 그렇게 보냈지”하시며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 가운데쯤을 말하곤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물었으니 불행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것이며 행복하지 않았다면 불행했다고 해야 할 텐데.

우리는 불행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인지하면서 행복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처럼 행복도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 박봉이라도 직장에 다닐 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큰 병이 나면 건강할 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결국 행복은 우리 주위에 우리 일상 속에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선 행복을 찾겠다고 쫓기듯 동분서주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범한 일상을 따분하고 공허하게 느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장애를 갖게 되면서 사소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 일상을 할 수 없게 되어서야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음, 장애인은 불행 하겠구나’하고 오해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솔직히 장애를 갖고 얼마 동안은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비장애인의 삶만을 생각했고 그런 삶만이 평범한 삶이라 생각했으니까.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볼 때 장애인의 삶은 힘든 삶이라 생각할 것이다. 사실 불편한 것도 힘든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삶이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비장애인에게는 그들의 삶이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인 것처럼 우리에게는 이 삶이 평범한 일상이니까.

어쩌면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을 잃어보았기에 힘들고 불편한 일상이지만 다시 누릴 수 있음에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혹시 장애로 내가 더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정말 장애로 삶이 불행해졌는지 그리고 비장애인일 때는 마냥 모든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셨는지.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면 장애는 불행한 삶과는 상관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비장애인의 삶에 대한 동경과 애착 때문은 아닐까?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장애로 인해 잃었고 그 삶을 다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신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비해 모든 면에서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왜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 좋은 환경에서 부족할 게 없이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왜 자살을 하고 맨발의 헐벗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끼니를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엄마가 어쩌다 사주는 과자나 사탕 한 알에 참 행복했었다.

어르신들은 맘껏 공부하고 싶을 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하셨고 멋지고 좋은 장난감 하나 없어도 흙이며 돌멩이, 풀잎 따다 놀 면서도 행복하다 했다.

행복은 구하고 획득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좌절감은 커지고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막상 내 주위의 행복은 느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이미지와 빛을 잃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체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장애인일 때 알고 지냈던 많은 이들이 떠나갔지만 내 장애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서툴고 부족한 일상이지만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형제들과 주위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갑자기 나에게 닥친 장애는 분명 불행이었고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삶 속에서 나는 더 또렷하게 감사함과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우리 곁에 항상 있다. ‘나 좀 알아봐 달라’며 하루 종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고 생각해 보자. 당신의 삶 속에 깃든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에는 보다 많은 분들이 맴도는 행복을 깨닫고 보다 충만한 한해를 보내시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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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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