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자폐성장애인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진행한 캠프에 돕는 사람으로 따라 갔습니다. 캠프 시작에 앞서 한 가지 행동 지침을 들었습니다.

‘절대, 장애인의 뒤를 쫓아가지 마라!’

캠프에 참가한 어느 자폐성장애인이 어디론가 뛰어간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니 잡으려 하거나 쫓아가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사자의 행동을 인정하라는 의미겠지요.

캠프 내내 그러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누가 불쑥 일어나 뛰면 저도 모르게 쫓아갔습니다. 가다가 흠칫하여 멈추고 멀찍이서 지켜봤습니다. 대개 어디까지 가면 스스로 멈췄고, 멈춘 자리에서 혼자 무엇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가가 제자리로 오게 하거나 같이 그 자리에 있으면 됐습니다.

쫓아가지 마라, 강렬했습니다.

월평빌라 문을 연 지 벌써 십 년입니다. 그사이 무디어지고 허술해진 곳을 살핍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잘못을 범합니다. 그렇게 되기 쉬운 현장이 장애인시설입니다.

깨어 있으려면 말과 행동과 생각을 쉼 없이 다듬어야 하지만 몇 마디 말이라도 끄집어내서 다듬습니다.

1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시설 입주 장애인이 ‘안 돼. 하지 마.’ 이런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겨우 몇 마디 할 줄 아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안 돼. 하지 마.’일 때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물론 그 말을 누구에게서 배웠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시설 직원에게 얼마쯤의 책임이 있겠지요.

‘안 돼. 하지 마.’는 그의 삶이 얼마나 간섭받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장애가 주는 제약이 클 텐데, 거기에 돌덩이 하나를 더 얹는 거죠.

‘안 돼. 하지 마.’ 하는 저를 볼 때가 있습니다. 미안하고 민망합니다. ‘이렇게 할래요? 이거 할까요?’ 하며 다른 것으로 유도하거나 달래겠다고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안 돼. 하지 마.’ 아예 쓰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겠습니다.

2

올바른 호칭과 ‘친구’

우리말에는 높임말이 있습니다. 높임말을 격식에 맞게 쓰지 않으면 양반 소리 듣기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돌아서면 욕을 먹습니다.

시설 입주자와 직원 사이에도 높임말을 올바르게 써야 합니다. 나이를 따져서 써야 하고, 직원과 입주자라는 관계를 헤아려서 써야 합니다. 친하다고 낮추거나, 친근한 표시로 낮추거나, 입주자를 마치 어린 아이로 여기고 낮추면 안 됩니다.

월평빌라는 ‘2015년 호칭 워크숍’에서 입주자에 대하여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① 의사소통 가능한 입주자는 당사자가 원하는 호칭을 쓴다.

② 성인 입주자는 홍길동 씨, 길동 씨, 아저씨, 아주머니, 아가씨, 총각, 어르신 가운데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한다.

③ 미성년 입주자는 김철수 군, 김영희 양, 길동 군, 영희 양, 길동아 가운데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한다.

④ 입주 시 미성년이었다가 성인이 되면 성인 입주자에 맞는 호칭을 사용한다.

⑤ 공문서에는, 성인 입주자는 홍길동 씨로, 미성년 입주자는 김철수 군, 김영희 양으로 한다.

⑥ 일지는, 공문서이지만, 일상의 호칭으로 기록한다.

⑦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부를 때는 성만 부른다든지 이름만 부르는 게 허용된다. (홍길동 씨, 홍 씨, 길동 씨, 홍 군, 길동아). 그러나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부를 때는 성과 이름을 모두 붙여야 한다. (홍길동 씨, 홍길동 아저씨, 김영희 아주머니). 입주자를 부를 때 이것은 기본이다. 입주자와 직원 간이지만, 위아래를 살펴서 부르는 것이 옳다. 나이 어린 직원이 ‘길동 아저씨, 영희 아주머니’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때로는 ‘홍길동 씨’도 어색한 경우가 있다.

「2015년 4월 17일, 호칭 워크숍」

우리말 호칭의 기본을 정리한 겁니다. 월평빌라 형편에 맞춰 따로 정한 게 아닙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기본입니다.

입주자와 직원의 관계를 헤아리면 위아래만 따져서도 안 됩니다. 가능하면 존대하는 게 좋습니다. 어린 아이라도 반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대하는 게 좋습니다. 호칭만 제대로 써도 함부로 대하기 어렵습니다. 호칭으로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다듬습니다.

좋은 뜻으로 쓴다는 ‘친구’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친근한 표시라는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입장 바꾸면 어떨지?

‘친구’라 부른 다음에 격식에 맞춰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시설 입주자를 ‘친구’라 하면 낮춰 부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 취급하는 느낌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를 부르는 억양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대할 것이고, 그렇게 말이 이어지겠죠. 돕는 방법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친구’는 친구 사이에 쓰는 게 좋겠습니다.

3

똑똑, 노크.

“시설은 입주자 그 사람의 집입니다.” <<복지요결>> <시설 사사회사업>, 2017

그렇다면 노크는 기본입니다. 그 가구를 전담하는 직원은 노크 후에 용무를 간단히 말하고 들어가도 되겠으나, 그 가구를 전담하는 직원이 아니라면 노크 후에 용건을 말하고 반드시 허락을 구한 다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시설장이라고 예외가 아님은 당연하고요. 노크하지 않으면 ‘입주자 그 사람의 집’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직원회의를 하는데 의자가 모자랐습니다. 한 직원이 입주자의 집에서 의자를 가져 오더군요. 노크도 하지 않았고 허락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괜찮다? 아무도 없을 때 가져오면 절도인데…. 입주자의 물건을 쓸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빈집은 출입을 삼갑니다.

어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웠더니 그 집 앞에 직원 신발이 여럿 놓였습니다. 입주자의 집인데… 초대받고 왔을까? 아, 여럿이 같이 먹으면 맛있다고요? 사람이 북적이면 좋다고요?

요즘은 집들이를 하지 않더군요. 아주 친한 몇 사람만 불러서, 그마저도 밥은 식당에서 해결하고 집에서는 차나 간식 정도 대접합니다. 내 공간을 남에게 내주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입주자와 입주자의 집은 예외일까요? 끼니마다 불쑥 찾아오는 걸 마냥 좋다고 해야 할지, 그저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얻어먹었으면 다음에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해야죠. 아니면 뭐라도 대접해야 합니다. 입주자 집에 갈 때는 초대받아서 가고, 얻어먹었으면 다음에 대접할 요량으로 가야 합니다.

직원들로 북적이는 입주자의 집에 입주자의 둘레 사람이 북적이기 바랍니다. 부모형제, 친구, 이웃, 교우, 직장 동료, 동아리 회원, 직장 동료가 수시로 드나들며 삼겹살 구워 먹기 바랍니다.

4

강압적인 말과 행동.

이거 하세요, 그만 하세요, 하지 마세요, 안 됩니다, 앉아 계세요, 빨리 하세요… 강압적이고 구속하는 말.

강제로 일으켜 세운다, 강제로 앉힌다, 줄을 세운다, 바로 서게 한다, 눈을 맞추게 한다… 강압적이고 구속하는 행동. (특히, 눈을 맞추게 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무지에서 비롯한 폭력입니다. 몸을 헤치고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입주자가 다치고 직원도 다칩니다.

폭력, 폭언, 감금, 갈취하는 시설 직원은 드뭅니다. 폭력이 인권의 핵심처럼 말하는데, 폭행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예와 성으로 대해야 합니다. 존대하며, 통제하지 않고, 입주자의 집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이고 핵심입니다.

5

몇 가지 더.

1) 입주자 대할 때 목소리를 차분하게 합니다. 톤을 좀 낮춥시다.

2) 입주자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지 맙시다. 그 분을 찾아 가까이 가서 말합시다.

3) 입주자에게 대답할 때, 입주자와 이야기할 때는 멈춰 서서 얼굴 보고 합시다. 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서지 맙시다.

4)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말하더라도 잘 들읍시다. 들을 형편이 안 되면 양해를 구합니다.

5) 입주자가 말하지 못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말하지 못해도 진지하게 묻고 설명합시다.

6) 입주자와 의논할 때는 서서 하지 않습니다. 좋은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합니다. 그럴 상황이 아니면 앉아서 차분히 합시다.

7) 입주자의 형편을 남에게 함부로 알리지 않습니다. 업무상 공유면 모를까, 그 외는 침묵합니다. 가족과 친구를 조심하십시오.

8) 입주자를, 특히 입주자의 흉허물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지 않습니다. 특히 시설 동료를 조심하십시오.

9) 입주자와 단둘이 있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10) 입주자의 집 안을 훔쳐보지 않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도, 맛있는 것을 해도 애써 외면합니다. 관심 있으면 노크합시다.

11) 입주자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냥 두십시오. 지나가는 말로 상관‧간섭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는 벌써 여러 번입니다.

12) 입주자의 잘잘못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시설 직원은 판사가 아닙니다. 타이르거나 이를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 곳에서 차분히 설명합시다.

한 해를 시작하며, 월평빌라 십 년을 맞으며, 몸과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몸부림합니다. 입주자를 사람으로 보고 사람답게 도우려고 몸부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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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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