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16년을 시작한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말미에 와있다니 참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다.

올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니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의 정신적 장애인에게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필자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아직도 여전한 정신적 장애인 혐오’ = ‘관리’ 명목으로 상동행동이 있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지적장애인을 6년 동안 폭행한 남원 평화의 집 사건이 올해 5월, 언론에 알려졌다.

평화에 집에 근무하던 생활재활교사들은 거주한 지적장애인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주인 머리를 찍어 2주 상해를 입히거나 거주인의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성기를 노출시키는 등 성추행을 하는 등의 인권유린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에 필자를 포함해 장애계와 장애인은 공분했고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1심 판결에서 6명의 재활교사는 징역형이 확정되었고 판결에 불복하는 생활재활교사 3명은 항소해 2심 재판 진행 중이라 한다.

올해 5월 장애계와 장애인의 공분을 샀던 남원 평화의 집 폭행사건 CCTV 녹화본들 ⓒ에이블뉴스DB

올해 5월 17일에는 23세의 여성이 서울 강남역 부근의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만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를 여러 번 맞고 사망하는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진술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경찰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 결론 내리며 정신질환자범죄 방지를 위한 범죄위험 소지 정신질환자 판단 체크리스트 완성, 현장경찰관 의뢰 시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 입원 요청, 당사자 퇴원 요구 시 적극 거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2011년 대검찰청 범죄분석보고서에서 정신장애인 범죄율이 비장애인의 10%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경찰 대책은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로 싸잡아 매도하는 논리나 마찬가지라 일반화의 오류이고 인권침해다.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존재하는 여성 혐오로 인해 발생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런 논리 때문에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정신보건시설에 총 80,462명이 수용되고, 이 가운데 73.1%가 보호의무자 강제입원제도에 의한 비자의 입원이라는 2013정신보건통계현황집 자료도 이를 입증한다.

우리나라의 이런 현실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정신장애인 관련단체와 장애계에서는 인권을 침해하는 경찰 대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심지어는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긴급집담회까지 할 정도였다.

올해 5월 말 경찰청 앞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의 강남역 살인사건 대책 발표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관련단체가 경찰청장에게 입장철회 및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 ⓒ에이블뉴스DB

올해 7월에는 일본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한 남성이 “장애인을 안락시키거나 살처분해야 한다.”, “중증장애인은 살아 있어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으로 거주인을 집단 살인했다. 일본에서도 이런 무섭고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는 이 세 가지 사건들을 보며 그 근저에는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역사회에서 타인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존재로 정신적 장애인을 생각하고 대했다면 시설수용 및 폭력, 정신병원 강제입원, 장애인 살상 등이 일어날 수 없었으리라.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타인과 깊게 공감하고 싶다. 또한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다만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힘들게 배울 뿐이다. 아울러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체계적인 발달장애인 자기옹호·권리옹호 시스템의 미비, 정부의 형식적 장애인식 계획 등의 원인까지 겹쳐 이런 일들이 더욱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향후에 발달장애인 자기옹호·권리옹호와 관련한 체계적 시스템의 마련, 어려서부터 장애교육 및 장애에 관해 장애당사자들과 비장애인들 간의 소규모 토론 등을 통해 효과적인 장애인식이 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대책을 세심하게 세웠으면 한다.

아울러 정신적 장애인들도 여성단체, 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 단체 및 시민사회 등과의 강력한 연대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그리고 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신적 장애인도 혐오를 받지 않고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세상이길 바라는 심정이다.

올해 7월 말,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일본 장애인시설 집단살인사건 피해자 분향소에서 묵념하는 시민들.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에이블뉴스DB

‘그래도 희망은 있다’ = 이렇게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상당한 우리나라, 일본 등의 현실임에도 필자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들이 있었다.

먼저 올해 6월 뉴욕에서 개최된 제9차 UN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 회의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뉴질랜드 출신의 로버트 마틴(Robert Martin) 후보가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되었다.

마틴 위원은 어려서 뇌 손상으로 인해 지적장애를 입었고, 유년시절 대부분을 ‘킴벌리 지적장애인 병원’등 대규모 시설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시설에서 육체적, 감정적, 성적 학대 등을 겪었고 통제와 훈육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지적장애인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상사에 맞서 파업도 주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마틴 위원은 ‘이제부터 어려운 임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사실 2년 전 있었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 때 필자로선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필자가 장애인정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위원들 가운데 발달장애인을 대표한 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다른 장애가 있는 위원들이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의 인권 현실에 대해 이해하며 나름대로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권고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열악한 현실을 가장 깊게 공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발달장애인 당사자다.

2년 전 제네바에서 열린 제12차 장애인권리위원회 오프닝 세션 모습, 오프닝 세션이 열리고, 이틀 뒤 우리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가 있었다. ⓒ이원무

이런 의미에서 마틴 위원의 당선은 필자로선 간접적으로 강력한 지원군을 하나 얻게 됨은 물론 희망을 본 느낌이었다. 향후 2차 국가심의 때, 아니 그 이전에라도 마틴 위원을 만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만나기 전까지 발달장애인의 인권과 관련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지식을 쌓고 싶다.

그래서 2차 심의 때 그분을 만나게 되면 발달장애인의 인권현실을 제대로 알려 발달장애인 인권증진에 진짜 도움이 되는 권고를 얻어내고 싶다. 이후 이와 관련된 국내활동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현실이 될 수 있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설령 필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장애가 있는 누군가가 이런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난 12월 15일에는 발달장애인의 직업훈련을 위한 기관인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 개소식이 있었다. 이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 1년 3개월 동안 서울시교육청과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가진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훈련센터가 세워진 성일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발달장애인을 전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데 쉽지 않은 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센터 내에서 발달장애인에게 타인의 권리도 소중함을 알도록 하는 교육을 직업교육에서 장기적으로 계속 하고, 중학교 내에서도 발달장애인과 중학생 간의 장애에 대한 소규모 토론을 할 기회를 자주 갖도록 한다면, 장애인식은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훈련센터 설립 및 개소식은 발달장애 인식개선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이런 희망을 갖게 하도록 애쓰신 발달장애인 부모, 고용공단, 서울시교육청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 있는 1층 직업체험실 중 우정사업본부 연계 우체국 체험실 모습 ⓒ이원무

정신장애인에게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있었다. 2년 전 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 때 권리위원회에서는 정신보건법의 비자의 강제입원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정신보건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말, 정신보건법 제24조의 보호의무자 2인과 의사의 동의만으로 입원하는 비자의 입원조항이 헌법 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필자로선 이 결정이 강제입원을 못하게끔 하는 근거가 생겨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탈원화를 주장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정신장애인에게도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카미(KAMI) 등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는 헌법 불합치에 대해 환영하지만 아직도 행정기관장에 의한 입원조항 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조항이 있다며 정신보건법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정신보건법의 완전 폐지에 필자도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다. 정신보건법 폐지를 위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관계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앞으로도 이들의 노력을 응원한다.

이외에도 발달장애인법 시행 중에도, 서울시에서 법에 따른 자립생활 지원방안 마련이 없어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에 발달장애인 정책 수립을 촉구했던 일이 있었다. 정책 요구안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중심 주거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 운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시가 5월에 청원경찰을 동원하며 부모들을 시청 밖으로 쫒아내자 부모들은 노숙투쟁과 삭발을 감행하며 서울시를 압박했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의 농성장 방문을 계기로 부모들과 서울시와의 대화의 길이 열리며 12일 뒤 농성은 끝났다.

이후 부모들은 서울시와 TF를 구성하며 3~4번 회의를 했고, 결국 올해 7월 부모들이 요구한 정책 요구안이 서울시 의회를 통과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올해 필자의 느낌을 두 가지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아직도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뿌리 깊고 상당하다.’

‘그 가운데서도 정신적 장애인 인권증진 노력이 있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내년에는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줄어들고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당사자와 부모, 정부, 전문가 등의 노력이 어우러졌으면 한다. 그래서 정신적 장애인들이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통합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도 여기에 함께 하며 더 노력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 장애인에게 좋은 소식들이 많아지는 정유년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필자는 내년 1월, 27번째 칼럼에서 다시 뵐 것을 약속드리며 내년에도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다음의 말로 올해의 칼럼을 마치겠다.

‘정신적 장애인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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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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