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눈을 감고 아이 재롱잔치를 보게 된다면? 아니, 보아야만 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

가톨릭계인 우리 아이 유치원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성탄축제’(여기서는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재롱잔치로 명명하겠다.)를 열어, 부모님들께 보여 드릴 깜찍한 무대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만든 작품도 전시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회도 연다.

이응이도 엄마랑 2학기 들어 꾸준히 연습하고 준비했던 동시 짓기 과제도 멋지게 해냈고, 유치원에서 몇 달간 틈틈이 준비했던 장구난타 공연 역시, 그야말로 무대를 즐기며 멋지게 선보였다.

특히, 동시작품 전시물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각장애 엄마는 안 되는 쓰고 그리는 실기를 만회하기 위한 엄청난 잔머리와 노력을 투입해야만 했다.

올해 이응이는 성탄축제에서 진행한 동시 짓기 과제를 열심히 준비하여 멋지게 해냈다. ⓒ은진슬

아마도, 요맘때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가장 뿌듯하고 가슴 벅찬 경험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이의 재롱잔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돕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기가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고, 한 해 한 해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몰라보게 성장하는 모습을 체감하고 반추하며, 그야말로 뜨거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보는 행위’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재롱잔치에서 시각장애 부모들은 과연 어떤 감응을 얻을 수 있을까?

아이들의 멋진 동시 전시물도 ‘보아야’ 한다.

아이들의 깜찍하고 멋진 난타공연도 ‘보아야’ 한다.

유치원에서 진행된 동시전시물의 경우 함께 준비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공감해줄 수 있었다. ⓒ은진슬

그나마, 동시 전시물의 경우, 나와 아이가 함께 준비한 것이기에 내가 잘 보지 못한다고 해도 큰 문제없이 그 과정까지 칭찬하며 감응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전시물들을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닌데, 다른 아이들의 작품을 세세히 뜯어볼 수 없는 내 약점(?)이 다른 아이와 내 아이의 수준을 은연중에 비교하며 상처 주고 상처 받을 수 있는 엄마의 건강하지 못한 마음가짐을 원천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그저 내 아이의 과정, 내 아이의 결과에만 집중하며 칭찬하고 기뻐하면 되니, 마음 편한 구석도 있다는 것이다.

동시전시와 함께 올해 성탄축제에는 장구난타 공연이 있었다. 유치원과 원장수녀님의 배려로 아이의 공연을 환호해줄 수 있었다. ⓒ은진슬

하지만, 장구난타 무대의 경우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한 떼의 아이들이 모두 똑 같은 의상을 입고 똑 같은 소리를 내는 공연을 한다. 그 속에서 내 아이의 모습을 찾는 건,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내 아이의 소리를 듣는 것 역시, 이응이가 맡은 이질적인 파트가 있거나, 독주나 독창 부분이 있지 않고서야 아무리 소머즈급의 ‘Musical ear’를 가진 나라도 구분 불가다. 그나마 감사한 점은, 아이가 장구난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응이 반 친구들의 절반은 한삼춤, 절반은 장구난타를 스스로 선택했고, 이응이는 둘다 멋져 보여 초반에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갈등했다고 하는데, 만약에 이응이가 최종적으로 한삼춤을 선택했더라면, BGM 외에는 소리도 없이 나플거리는 모션밖에 없는 무대에 시각장애 엄마인 내가 감응하기는 더욱 힘들었을 게 분명하니까.

어느 새, 재롱잔치 참관 2년차에 접어든 시각장애 엄마지만, 아직도 아이의 공연 무대를 마주하며 느끼는 시각적 정보의 부재로 인한 철저한 고독감과 고립감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무대 위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떤 표정, 어떤 몸짓으로 엄마가 봐 주기를 바라며 열심히 공연하고 있는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연주했던 엄마보다 훨씬 더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아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치고 박수치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아이.

공연할 때는, 행여나 아이들이 당황해서 동작을 잊을까 함께 따라 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봐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눈을 맞추며 리액션을 해 줄 수도 없고, 특정하게 아이가 잘 한 부분에서 환호해 줄 수도 없다.

사실, 무대에 많이 올라가 봤던 사람으로서 나는 아이에게 더 많이 미안하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반응하는 관객으로부터 연주자가 얻는 에너지와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자리에 있어 주고, 바라봐 주는 수밖에…

상황이 이러하기에 내 입장에서 동영상 촬영은 필수이다. 그래야 뒷북 공감, 뒷북 환호라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이, 전술했듯이, 내 아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원활한 촬영이 가능한데,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처음으로 동영상 촬영에 제대로 성공했다.

작년과 달리, 감사하게도 유치원에서 미리 무대 배치도를 공유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내 아이가 몇 열 몇 번째에 있는지 만 미리 알 수 있어도, 아이를 향해 손도 흔들어 줄 수 있고, 응원도 해 줄 수 있으며, 동영상도 찍어볼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올해는 아이를 향해 손도 흔들어 주고, 공연 마치고 인사한 뒤에는 최고 제스처도 취해줄 수 있었다.

특히, 이제 2년째 어리버리 돈보스꼬 학부모 노릇을 하다 보니, 우리 원장수녀님께서 내 어려움을 간파하고 배려하셔서 무대 위 이응이 모습까지 손수 사진 찍어서 실시간 카톡으로 공유해 주셨는데, 너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희한하게도, 아이의 장구난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더 긴장하고 숨죽이며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다. 뵈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게 아마도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상투적으로 쓰는 ‘마음으로 본다’는 관용구의 의미인건가 싶었다.

또한, 공연 중간에 전혀 모르는 어떤 분께서 ‘이응이 잘하네’라고 말씀 하시는 걸 들었는데, 무대 상황은 잘 몰랐지만, 내 아이가 멋지게 잘 하고 있다는 감을 잡을 수 있어 관람에 의도치 않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 공연에 대한 환호 섞인 피드백은, 집에 와서 동영상을 시청하며 격하게 뒷북 공감, 뒷북 환호해 주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응이. ⓒ은진슬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아이 공연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어쩌면, 아이의 무대 자체를 공감해 주고, 환호해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노력하고 공 들여 만든 동시 작품 앞에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사진 포즈를 취하는 아이의 모습.

평소, 문득문득 장구난타 연습에 대해 자신의 느낌을 엄마에게 들려주던 아이의 모습.

엄마 아빠를 위한 멋진 무대를 준비하며, 수업시간에 만든 예쁜 초대장을 건네주던 아이의 모습.

공연을 마치고 자신을 대견하고 멋지게 여기며 자랑스럽고 기쁜 모습으로 엄마에게 안기던 아이의 모습.

성탄축제를 준비하던 아이의 순간, 순간의 과정들을 나는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찰나의 무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 아이가 보여주는 ‘노력’과 ‘성장’을 함께 느끼고 기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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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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