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와 월남쌈,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만 알고 있는 베트남에 11월초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관광 목적이 아니고 매우 뜻있는 현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과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하 인권포럼)이 베트남 호치민(구 사이공)에서 4년째 진행했고 현지에서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호치민 장애인이동지원센터’를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베트남은 신흥개발도상국으로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도로를 뒤덮은 역동적인 오토바이의 행렬은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년층을 많이 볼 수 있던 일본과는 다르게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시내 곳곳에서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자유로운 왕래에 이곳이 사회주의국가라는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사회기반 시설이 한국보다는 열악하지만 우리나라의 80년대 초반 정도라고 느꼈다. 대부분의 인도는 그나마 휠체어로 갈 수 있었지만 인도위에 상품과 오토바이 등 적재물들이 넘쳐서 불편했고 건물들에는 경사로 등이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장애인이 사용가능한 공중화장실도 많이 부족했으나 다행히 시내의 일부 대형 쇼핑상가에 가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아직은 장애인들이 마음껏 시내를 활보하며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듯 했다.

시내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건물 뒷부분에 경사로도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씩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변화의 주체는 장애인당사자의 사회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늘 그렇듯이 전쟁을 치르고 신흥국가로서 발전하는 단계에서 가장 열외되는 부류가 장애인 등의 소외계층일 것이다.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보기 힘들었던 것도 그런 반증일 수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전동휠체어나 수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었다.

저상버스 등의 장애인들이 쉽게 시승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절대 부족했다. 이곳은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호치민 시내에 건설 중인 지하철에 기대를 하지만 노선이 많지 않아 당분간 장애인들은 이동에 많은 제약을 느끼고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자립생활과 사회활동을 하기위해서는 여러 권리가 필요하지만 그중 이동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한국의 장애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전동휠체어의 전면 보급과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경사로와 화장실 등이 확대로 우리의 활동반경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곳 베트남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열악하기만 하다. 이러한 틈새를 한국의 장애인 단체인 인권포럼이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정확히 필요성을 간파했고, KOICA의 지원으로 이곳에서 4년 동안 장애인 이동사업을 해왔다.

KOICA의 국제개발협력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현지화와 출구전략이다. 현지화는 현지의 상황과 욕구를 정확히 파악을 하고 현지의 목소리를 정확히 담아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구전략은 한국의 지원이 중단되었을 때 진행되었던 사업도 같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진행시키도록 역량을 강화해주는 것을 말한다.

호치민 장애인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 중인 오토바이를 세밀히 관찰하는 필자와 인권포럼 직원들. ⓒ이찬우

현지에 맞게 개조된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이곳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뒷부분에 휠체어를 걸 수 있는 장비가 보인다. ⓒ이찬우

이곳 베트남의 사업은 현지의 사정과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사업이었다. 인권포럼의 사업담당자는 이곳을 자주 드나들면서 수십차례 현지 파트너인 DRD와의 논의와 현지조사를 통해 오토바이를 이용한 ‘장애인 이동 센터’를 기획하고,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탑승이 가능한 오토바이로 개조하고, 운전자 교육과 콜센터의 준비까지 진행을 했다.

4년차로 마무리되는 이 사업은 이곳 호치민에 많이 알려졌고 방송에도 수 십 차례 나왔다고 한다. 장애인들을 운전자로 채용하여 또 다른 고용창출을 하였고 많은 장애인들이 이곳 센터를 통하여 학교도 가고 병원도 가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다.

이곳 호치민에서 이러한 이동지원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19,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지만 약 500명만이 이 혜택을 받고 있다. 물론 모든 사업을 한국의 지원으로만은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표본이 될 만한 사업을 만들어주고 현지에서 스스로 운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진정한 의의이다.

올해 말로 KOICA의 지원이 끝나지만 이곳 단체는 독자적인 운영을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실행을 하고 있었다. 무료사용을 유료화하여 기금을 적립하였고 기업의 후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다. 이러한 자조적인 움직임들이 한국 장애인단체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현지 파트너기관인 DRD의 건물앞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 ⓒ이찬우

최근까지 장애인들을 위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장애 당사자의 참여 없이는 그 완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장애인’을 포함시켰으며, 제2차 분야별기본계획(2016~2020)에는 인천 전략을 포함시킴으로써 장애분야 ODA(공적개발원조)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직은 관계 부처가 장애 포괄적 국제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는 많이 부족하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의 장애인단체들이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하도록 문호를 조금 열어 놓았지만 활성화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인권포럼, 한국장애인연맹 등 몇몇 단체만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관계기관은 장애포괄적인 국제개발협력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장애인단체의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당사자로 구성된 전문 인력의 양성을 위한 로드맵도 필요하다. KOICA 연수프로그램에 한국과 외국의 장애인들에게도 참가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사업을 위한 자부담이 걸림돌이다. 재정이 열악한 장애인 단체에 총사업규모의 20%를 자부담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부담이 된다. 자부담의 지원을 통해 사업수행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단체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면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자부담을 위한 편드를 조성하여 철저한 검증으로 실력과 의지를 파악하고 자부담을 지원한다면 많은 장애인단체들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시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는 인천전략의 주도국인 한국이 이를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한국의 장애인단체는 역동적인 활동으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취를 이루어왔다. 이런 에너지를 해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장애복지의 상향평준화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한국 장애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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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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