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마켓이 출판해 10월 5일 선을 보인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읽는 책 ’어머니‘ (원저자는 알퐁스 도데임) 책 표지. ⓒ이원무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간접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음은 물론 학창시절 때 국어성적이 늘 좋지 않아 힘들었다.

그래서 ‘책 좀 읽어!’라고 얘기하는 학창시절 동료들과 내 가족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이었음을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관심이 있는 책을 사서 읽으며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를 느끼는 기회를 가진다. 최근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을 알게 되고 타인 이해의 계기를 만든 시간을 가졌다.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어울려 살고 싶은 건 똑같다. 하지만 시중 도서들은 비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고 발달장애인에게는 이해가 어려워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화콘텐츠 기업인 피치마켓은 지난 10월 5일 마포구청소년수련관에서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읽는 책 ‘어머니’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를 시작하면서 마포구청장, 한국장애인문화예술협회 회장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축사를 전하며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버전의 ‘어머니’ 출판기념회를 축하했다.

이어서 피치마켓의 함의영 대표와 홍성훈 작가와의 북 콘서트가 이어졌다. 홍성훈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홍성훈 작가는 이날 북 콘서트에서 컴퓨터 타자를 이용해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버전의 ‘어머니’를 각색할 때의 심정을 전했다. 그 가운데 기억이 남는 내용을 나누고 싶다.

함의영 대표가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어머니의 글쓰기는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하자 홍성훈 작가는 스크린에 ‘한숨’이라는 말을 입력하고 이어 “제가 배워온 문학관과 많이 달랐다.”는 답을 했다. 좌중들은 폭소했다.

이에 함 대표는 “원래 홍 작가는 문장이 길 면서 수식어가 많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워해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나중에 함 대표와 피치마켓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더니 피치마켓에서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을 한 그룹당 15명해서 총 30여명 정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교실에 있는 발달장애인이 작가의 글에 밑줄을 그어 무려 17번을 수정했다고 한다. 작가는 나름대로 쉽게 썼는데, 밑줄이 쳐진 부분이 많은 것을 보고서는 힘들어했다고 한다.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와 홍성훈 작가의 북 콘서트 장면. ⓒ이원무

이 얘기를 들으며 이런 질문을 속으로 하게 되었다. 작가와 독서교실에 있는 발달장애인 간에는 살아온 방식, 이해하는 방식 등이 다른데, 어떻게 17번 감수 끝에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어머니’로 각색할 수 있었을까?

문학 분야는 아니지만, 연구소에 있을 당시 협약인 장애인권리협약과 국내법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달장애인이 알기 쉽게 제작한 과정이 생각났다. 권리협약, 차별금지법에 나온 단어가 상당히 어려워 어떻게 하면 쉽게 바꿀지 발달장애인들과 강사가 같이 고민하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더 이상 쉬운 말이 떠오르지 않는 단어의 경우에는 제작과정에 참여한 발달장애인이 예시를 들면 쉽다고 해 강사가 예까지 들어서 단어를 풀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강사가 나름대로 조문을 쉽게 바꿨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워해 뜻에 맞게 더 쉽게 바꾸면 안 되냐고 했던 때도 있었다.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조문을 알기 쉽게 바꾸는 작업도 당연히 있었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강사와 발달장애인 간의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두 책을 알기 쉽게 바꿀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책으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토로한 작가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이 갔다.

한편으로는 그 기억을 통해 작가와 발달장애인 간의 소통하는 노력이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어머니’를 출판한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에도 이르게 되었다. 살아온 방식이 달라도, 소통이 쉽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위대함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말이다.

작가는 또한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라는 작품의 원작이 A4 한 장짜리 분량 정도로 짧지만 생략된 부분을 시대적 정황과 문맥에 따라 유추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원작자의 의도에 맞게 유추하며 ‘어머니’를 발달장애인이 읽기 쉽게 재구성하는 것을 고민했고 원작에 나온 글 한 줄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풀어냈다.”며 원작자 의도에 맞게 어머니, 아버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도 고민했다고 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 다시 알기 쉬운 권리협약과 장차법을 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알기 쉽게 바꾼 글이 권리협약과 장차법의 제정 취지, 의도와 다르지는 않은지 강사와 발달장애인, 전문가 등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작가의 말은 더욱 공감이 갔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이 읽기 쉽게 각색한 어머니를 읽어보았다. 무뚝뚝하고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 오로지 자식 루이만을 생각하며 자식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려는 어머니이지만, 방법의 차이일 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똑같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원작 의도와 시대상황에 맞게 각색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쉽게 잘 묘사하려는 작가의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이외에도 피치마켓의 함 대표가 발달장애인 독서교실 운영과 관련된 노하우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무뚝뚝하다’는 낮선 단어가 나오면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 알기 쉽게 바꾸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경험을 끄집어내 ‘가족 중에 누가 무뚝뚝합니까?’라는 식으로 질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낮선 단어에 대해 생각하도록 도와 단어를 알 수 있게 하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버전의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발달장애인이 다른 유형의 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이는 사회통합으로 가는 방향이기도 해 고무적이다.

2년 전에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이 작년 11월 21일부터 시행되었고, 그 법 10조에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정보를 알기 쉽게 작성하라는 내용이 있어 발달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혀져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장차법에는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에 대한 규정이 없다. 저작권법에는 저작물 변환이 시·청각장애인 중심으로 되어 있고 발달장애인과 관련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발달장애인법에도 알기 쉽게 하는 것은 정책정보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도서는 국립장애인도서관 사이트상에는 국가대체자료종합목록에 가야 찾을 수 있어 발달장애인용 도서를 찾기 쉽지 않다. 있어도 읽기 쉬운 한국단편소설(운수좋은 날, 봄봄, 소나기 등의 작품집), 개탐정 민철이 등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장차법에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를 규정하고 저작권법에는 발달장애인에 관련된 알기 쉬운 형태로의 저작물 변환에 대한 사항, 발달장애인법에는 정책정보만이 아닌 책자, 안내표지, 방송 등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립장애인도서관 메인페이지 상에 ‘발달장애인용 도서란’을 따로 만들어 그 도서를 발달장애인이 찾기 쉽게 사이트를 설계했으면 한다.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도서가 많이 출판되어 그 도서들이 절차를 거쳐 파일형태로 변환돼 방금 전에 말한 ‘발달장애인용 도서란’에 올라갔으면 한다.

돌에 새겨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란 표어. ⓒ네이버캡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발달장애인 버전의 스스로 읽기 쉬운 책이 많이 만들어져, 발달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온전한 인격체이자 한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발달장애인들이 그런 책들을 읽은 것들이 쌓여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많아져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누리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현실이 되어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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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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