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천안에 있는 중증장애인 주간보호시설에서 연구소에 있는 필자에게 장애당사자로서의 삶의 경험에 대한 강의를 의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소장님과 한번 상의를 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 소장님과 상의했는데 소장님은 필자가 고기능 자폐성 장애가 있고 나와 주간보호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다르고 청중들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얘기를 하셨다.

또한 주간보호시설은 중증의 비중이 많다는 얘기도 아울러 해주셨다. 생각을 해본 결과 필자는 강의를 안 하기로 했다.

1년 전에는 천안시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도 장애당사자로서의 경험에 대한 강의를 의뢰했었다.

필자는 ‘소장님과 상의를 해보겠지만 보호작업장에 있는 사람들과 나와 생활방식이 다르고 어려운 말을 쉽게 해야 하기에 걱정이 되고 좀 회의적이네요.’라는 답을 했다.

집에서 사는 필자와 같은 사람과 보호작업장 등의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분명 다르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나사렛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하는 간담회의 경우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대학생들과 생활방식도 어느 정도 비슷하고 삶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판단이 들어 간담회를 수락했다.

작년 11월 말 나사렛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의 간담회를 마친 후에 한 선생님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판단이 맞았어요.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당사자로서의 삶을 나누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말을 듣고서 필자는 ‘그렇군요. 사실 같은 발달장애인이더라도 삶의 방식과 장애의 특성, 정도 등이 달라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강의를 수락하지 않았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요즘 발달장애인 당사자 강의가 들어오고 사회적으로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움직임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강의를 의뢰한다고 무조건 다 수락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물론 ‘시간이 되니까 해주자!’ 하는 생각도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무의식중에 깔려 있어 그런 생각으로 강의 의뢰를 수락하면 안 된다.

하지만 청중들과 강의하는 당사자의 삶의 방식, 그리고 장애 정도 등이 다르다면, 당사자 강의 의뢰를 수락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사자 강의를 통해 청중들은 장애, 장애정도가 비슷하거나 같은 강사가 자신과 비슷하게 겪는 좋은 상황, 힘든 상황들을 겪으며 당당하고 타인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듣길 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힘을 얻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 계기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유형은 같지만 삶의 방식, 장애정도가 다른 강사의 삶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삶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음은 물론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하지 못하고 자신도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얻어가기 쉽지 않게 된다.

그 사람에게 강사의 삶을 듣는 것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고 도움을 받기는커녕 상처를 받고 자신감이 떨어질 삶을 살 여지가 크다. 오히려 장애인당사자 교육을 통한 장애인식개선에 방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당사자 강의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 부분을 의뢰할 시 상사 및 주변사람들과 약간의 논의를 거쳐 이견이 없다면 장애인 당사자는 장애가 심한 청중의 경우에 알기 쉬운 표현을 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각오하고 강의 수락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나누는 부분의 강의 의뢰가 온다면 청중들의 장애특성과 정도, 삶의 방식 등을 고려해 상사 및 주변사람들과 논의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강의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보호작업장, 주간보호시설 등에 있으면서 장애가 심하지만 자신의 권리와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의의뢰와 관련해 수락, 거절하는 과정 속에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그러기에 우리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발달장애가 더 심한 사람들에게 알기 쉬운 당사자 권리교육 등을 할 수 있는 환경들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이와 관련된 당사자활동에 정부 차원에서 예산지원을 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어야 발달장애가 심한 당사자도 교육을 듣고 권리와 책임을 다하면서 당당하게 살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로 인해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장애가 심한 당사자들이 많이 늘어나서 자신의 삶과 아울러 권리를 알기 쉽고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보호작업장, 주간보호시설 등에 있는 장애가 심한 많은 당사자들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와 힘을 얻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모든 발달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로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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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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