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있는 그림. ⓒ은진슬

주기적인 압박이 있는 칼럼을 쓰다 보면,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아 텅 빈 하얀 스크린을 노려보며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종종 네이버나 구글 검색창에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키워드를 영문과 한글로 이리 저리 조합하여 기상천외 한 곳까지 Searching adventure(?)를 통한 아이디어 헌팅을 떠나곤 한다.

오늘의 아이디어 헌팅 키워드는 장.애.부.모.

장애부모, 장애인부모, Disabled parents, Parents with disabilities, …

네이버에 ‘장애부모’라는 키워드를 넣어 보면, 온통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비장애부모들 이야기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 힘들다. 엄청 힘든 거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내가 그 키우기 힘들다는 장애아로 내 부모 가슴을 얼마나 태웠으며,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으로 경제적으로도 적어도 아파트 몇 채쯤은 가뿐히?) 날려 드렸거늘…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우리 장애부모의 사회적 입지나 존재감은 터무니 없이 약하기만 하다.

<장애인부모>, <장애엄마>, <장애아빠>, …

그 어떤 식으로 키워드를 달리 해 보아도 사이버 세계에서의 우리의 존재감은 너무도 희박하기만 하다. 마치, 우리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투명인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같은 종족들끼리만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서로의 눈에만 서로가 보이는 외계 생명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쓸 데 없어 보이는 짓을 하던 중, 신기한 연관 검색어 하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장애부모서울대>

'장애인 부모에 서울대 합격 선물한 고** 군' 장애인 부모를 둔 수험생이 부모에게 서울대학교 합격증을 선물했다는 기사, ⓒ 연합뉴스 캡처

그렇다. 이건 정말 장애 부모의 이야기였다. 여기서 장애 부모란, 장애를 가진 성인이 아빠나 엄마 역할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적장애 3급의 엄마와 중증 신체장애를 가진 아빠가 키운 아이가 (뜻 밖에?), (대단하게도?) 서울대 통계학부에 입학했다는 이야기였다.

씁쓸했다. 그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서울대쯤은 가줘야 장애 부모라도 부모 취급을 해 주는구나!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도 올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자느니,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정서를 가진 아이로 키우겠다느니 하는 거 다 집어 치우고 이응이를 서울대, 아니 예일이나 MIT쯤에 보내는 걸로 육아의 방향 수정을 해야 하는 건가? 적어도 이 이야기 속 부모님은 아들의 서울대 입학으로 장애부모로서의 사회적 인증에 성공하신 것 같으니…

길지도 않은 시간, 고작 만 4년 아이를 키웠을 뿐인데도, 그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부모를 바라보는 관점은 참 재미없었던 것 같다.

두 돌짜리 아이가 자기가 가끔 물리던 아이를 발로 찼더니 대뜸 엄마를 불러, 다짜고짜 가르치는 투로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부모가 눈이 안 보이니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발로 차고 다녀서 혹시 애가 그걸 모방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공립 어린이집 원감의 클라스다.

이 사건 덕분에 나는 본의 아닌 4킬로그램 체중감량에 성공했고, 강력한 문제제기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는 어렵게 들어갔던 국공립어린이집을 4개월여 만에 박차고 나와야만 했다.

아이가 주말에 어디 멀리 재미있는 곳에라도 놀러 갔다 왔다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당연히 친척들이랑 갔다 왔다고 생각한다. 유치원에 종일반 지원 신청을 하면서, 내가 일을 해서 지원 자격이 된다고 하니 아버님도 일을 하셔야 신청이 가능하다는 매우 기상천외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뭐, 이런 것들이야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한 예시들 몇 개 정도지만, 비슷한 입장에서 육아 하는 장애아이를 가진 엄마, 아빠들에게서 더욱 기상천해하고 스펙타클한 경험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맞다. 편견과 참견이 가득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딸 노릇 하기도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만, 장애엄마 노릇 하는 건 그보다 몇 만 배는 더 힘들고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런 철학적 고민 다 집어 치우고, 그냥 일정한 경제 수준과 일정한 정서 검사 같은 것으로 필터링해서 은행 거래 할 때 주어지는 공인인증서처럼 부모 공인인증서 같은 것을 우리한테 신분증처럼 발급해 줬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그냥 이런 편견이나 참견에 마주쳤을 때 구차한 설명도, 쓸 데 없는 인식개선 강의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이 부모 공인인증서 하나 불쑥 들이밀고 끝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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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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