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네이버 맘키즈섹션에 칼럼이 노출되다 보니, 블로그에 이웃블로거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댓글도 많이 달린다.

올 한해, 육아칼럼을 꾸준히 쓰다 보니, 양질의 칼럼 작성을 위해 육아 트렌드도 읽어야 하고, 비슷한 처지의 육아맘들은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고 싶어 육아 관련 포스팅이나 칼럼들도 매우 많이 읽고 있다.

그런데, 한 2년쯤 전부터 육아 관련 기사나 포스팅들을 읽다 보면, 언어에 대한 민감성이 음감만큼이나 예민한 내 신경을 건드리는 어휘들과 쉽게 마주치게 된다.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 최근 많은 육아관련 기사나 포스팅을 읽다보면 쉽게 이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Freepick

독박육아?

경력단절?

수많은 기사와 육아포스팅 속에서 이런 어휘를 접할 때마다, 나는 마치 조율이 잘 되지 않아 미세하게 어긋난 음을 내는 악기 소리를 계속 참아내며 연주하는 것과 같은 꽤 심한 불편감을 느낀다.

독박육아란, 남편이 (육아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어도 육아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에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어 오롯이 엄마 혼자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열악하고 힘든 육아상황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경력단절이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기존에 다니던 직장이나 자신의 일을 중단하고 육아에 전념하게 된 엄마들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독박육아의 경우 주로 엄마들이 스스로 자신의 힘든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고 사용하는 어휘이고, 경력단절은 주로 우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우리들의 상태를 명명하고 규정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 어휘들이 내게 주는 불편감의 요체는 그 어휘가 품고 있는 부정적 늬앙스가 아닐까 싶다. 독박은 혼자 억울하게 모든 것을 다 떠맡거나 뒤집어쓰는 것이고, 단절이란 무언가로부터 완전히 끊어지고 고립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세고 너무 극단적이다.

물론, 나도 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너무나도 팍팍하고, 육아의 길은 너무나도 험난하다는 것을. 나 역시 이런 막막함을 느끼며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고달픈 장애엄마니까.

삶이 너무 팍팍하고 매워서일까? 인생의 고단함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요즘 사람들은 맵디 매운 음식들에 열광한다. 심지어, 집에서도 극한의 매운 맛을 느끼라며 마트에서는 캡사이신까지 판매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도 우리의 팍팍한 삶처럼 더 세고 더 맵고 강해져만 간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위를 거침없이 독박과 단절 등의 부정성 강한어휘로 규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런데, 글은? 글은 나를 담는 타임캡슐쯤은 되지 않을까?

많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미래의 내 아이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소중한 공간으로 여기며 블로그를 가꾸고 다양한 형태의 육아 포스팅을 작성한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Google에게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이 시대에, 노동강도도 높고 외롭기 그지없는 육아가 힘에 부쳐 격한 감정으로 올렸던 넋두리 같은 육아일기나 댓글들은 인터넷의 망망대해를 둥둥 떠다니다가 언젠가 불쑥 나타나서 나를 당황케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우리 엄마들이 독박육아 같은 어휘를 사용하는 것에 조금만 더 조심성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당신의 아이가 자라나서 독박육아와 경력단절과 같은 자극적이며 부정성이 강한 어휘로 가득한 당신의 블로그를 본다면 아이의 기분이 어떨까?

아기였던 나는, 어린이였던 나는 어쩌면 내 엄마에게 사랑스럽고 축복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에게 나는 힘이 되는 존재가 아닌, 짐이 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슬퍼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록 진상의 신이 강림하신 아들과 씨름하다 지쳐버려 영혼까지 너덜거리는 밤에도, 엄마이기 전에 누렸던 많은 달콤한 것들이 그리워 사무치게 외롭고 쓸쓸해지는 밤에도, 우리의 지친 마음과 손가락을 조금만 더 조심조심 사려 깊게 다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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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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