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이는 엄마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엄마가 글씨를 볼 수 없어 공부를 하거나 이응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는 점자를 사용하고,

글씨를 볼 수 없기에, 이응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는 점자를 사용한다. ⓒ은진슬

베이킹할 때 요리저울을 보거나, 마트에서 물건값을 보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확대경 App.을 사용하며,

스마트폰 확대경 앱으로 요리할 때나, 마트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은진슬

컴퓨터로 강의 준비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컴퓨터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걸 늘 보고 있으니까.

컴퓨터를 이용할 때는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은진슬

그런데, 요즘 들어 이응이는 남들과 조금 다른 엄마의 눈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는지, 보이는 엄마 눈을 가리고는 보이지 않는 눈을 유심히 바라보며 ‘엄마, 나 보여?’라고 물어보곤 했지.

이제는 이응이도 많은 걸 이해할 수 있는 6세 형아가 되었으니, 엄마의 눈에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엄마가 왜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글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게.

이응이는 혹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몇 달을 보내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알고 있니?

뱃속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내야만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단다. 그런데, 엄마는 외할머니 뱃속에서 일곱 달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지 뭐야?

아기였던 엄마는 세상이 너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빨리 나와서 보고 싶었던 모양이야. 외할머니도, 의사선생님들도 아기가 너무 빨리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갓 태어난 아기였던 엄마는 너무도 약해서 혼자서 숨도 쉴 수 없고, 젖을 빨 수도 없었어. 의사선생님들은 엄마를 살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포기하라고 외할머니에게 말씀하셨다고해.

하지만, 외할머니는 7년만에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기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대. 외할머니는 의사선생님들께 제발 아기를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셨지.

그래서 의사선생님들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인큐베이터라는 유리상자 속에 넣고 3개월 넘게 치료하고 돌봐 주셨단다.

세상에 빨리 나오고 싶어 일곱 달도 다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인큐베이터에서 3개월 넘게 생활하게 되었다.ⓒGrowing Baby

혹시 기억 나?

우리 작년에 유아교육진흥원의 건강영역에서 인큐베이터와 그 속에 있던 작은 아기 모형을 돌봤었잖아?

아직 다 자라지 못하고 약한 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픈 아기는 스스로 숨쉬기가 어렵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있도록 산소도 넣어 주고, 스스로 젖병을 빨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주사기로 영양분도 넣어 주어야 하지.

이런 일들은 외할머니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외할머니와 떨어져 병원 인큐베이터 속에서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있던 인큐베이터에 산소가 너무 많이 들어오는 바람에, 엄마 눈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어.

조금 이상하지? 이응이가 알기로 산소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인데 말이야. 오늘 아침 등원길에도 이야기 했지만, 우주에는 산소가 없어서 우리가 우주에 그냥 가게 된다면 숨을 쉴 수가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우리에게 고마운 산소이지만, 너무 많아도 우리에게는 무척 위험한 일이 생긴단다. 너무 많은 산소는 우리의 생각주머니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우리 눈 속의 망막이라는 곳을 다치게도 해.

망막은, 카메라로 물건을 비추면 물건의 모양이 나타나게 하는 카메라렌즈와도 같은 것인데, 엄마의 망막은 너무 많은 산소 때문에 다치게 된 거야.

이응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흔하게 생기는 신생아황달이라는 병 때문에 이응이만 병원에 남겨두고 엄마 먼저 퇴원해야 했었거든. 그 때 이응이도 잉큐베이터에서 며칠을 보냈고, 아빠는 매일 엄마가 짜놓은 모유를 병원으로 배달했었지.

이응이가 심한 병에 걸린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응이를 병원에 혼자 두고 지낸 그 며칠이 엄마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마음 아팠던 시간이었는데… 그런데, 아기였던 엄마는 그 당시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를 만큼 너무너무 많이 많이 아팠는데, 그런 아기를 석 달씩이나 인큐베이터에 입원시켜 두고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외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할머니는 엄마가 너무나도 걱정되어서 매일 눈물을 흘리며 한양대학교병원 언덕길을 오르내리셨다고 했거든. 이제 엄마도 엄마가 되어보니 그 때 할머니가 얼마나 가슴 아프고 힘들고 외로우셨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그 조그만 아기를 몇 번이고 힘든 수술도 시켜 보고, 미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약까지 외할머니가 어렵게 어렵게 구해가며 여러 가지 치료도 해 보았지만, 결국 엄마의 왼쪽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오른쪽 눈은 아주 조금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단다.

외할머니는, 비록 엄마의 눈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너무도 많이 아팠던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하셨어.

그렇다면, 엄마의 눈과 이응이의 눈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사실, 엄마가 아예 볼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잠깐 보아서는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

지금부터, 엄마가 어린이 수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그림들로 엄마의 눈으로는 얼만큼 세상이 보이는지, 또 어떻게 보이는지를 쉽게 알려줄게.

풍경이 환하게 보이는 모습. ⓒ은진슬

이응이는 이 풍경이 또렷하고 환하게 잘 보일거야.

장애로 인해 부분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풍경 모습. ⓒ은진슬

그런데, 엄마가 딱 이응이 나이 때였던가? 외갓집 마당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뭔가 이상한 거야.

‘어! 왜 내가 보는 세상은 한쪽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다른 쪽은 캄캄하게 구멍이 막혀 있는 거지?’

아마도 이 때쯤 엄마는 엄마의 눈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이응이가 왼쪽 눈을 꼭 감고 있으면 세상이 이렇게 보일 거야. 엄마의 왼쪽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치 눈을 감았을 때랑 똑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지. 오른쪽 눈은 조금은 볼 수 있긴 한데, 사실, 얼만큼 보이는지, 어떻게 보이는지를 정확히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굳이 이응이가 영유아검진할 때 시력검사를 하는 것처럼 시력으로 표기하자면, -20디옥터 정도 되겠지만, 이런 건 감도 오지 않고 큰 의미도 없지.

쉽게 설명하자면, 엄마의 오른쪽 눈 앞에서 30에서 5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이게 몇 개냐고 물어보면 겨우 대답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엄마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알려줄게.

책, 자동차, 아이들을 뚜렷히 볼 수 있는 모습. ⓒ은진슬

이응이에게는 책을 읽고 있는 아이, 자동차 등이 아주 또렷하게 잘 보일거야. 그런데, 엄마의 오른쪽 눈으로 이 모습을 보면…

장애로 인한 시력 상태. ⓒ은진슬

이렇게 안개가 낀 것처럼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야.

어때? 이렇게 보여주니 좀 쉽게 이해가 되지?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쓸게. 다음에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자라난 엄마의 유치원 생활은 어땠는지, 초등학교 가서 공부는 잘 했는지, 혹시 놀리는 친구는 없었는지… 책도 제대로 안 보이고, 칠판도 안 보이는 엄마가 공부는 어떻게 했을지…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줄게. 다음 얘기가 궁금하지? 이제 곧 이응이 하원할 시간이네!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유치원에서는 즐겁게 지냈을지 궁금하네! 그럼 우리 곧 만나서 신나게 놀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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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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