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평안하게 지내는가?
그곳은 어떤지? 자네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 세상과는 얼마나 다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자네와 같은 처지인 척수장애인으로서 영화에 완전히 몰입이 되었고 자네의 처지를 이해하였네. 같은 상황의 사지마비 경수장애인이라면 그 몰입도가 더 했을 걸세.
자네가 느꼈던 어려움을 100% 이해할 것 같네.
사고 전과 사고 후가 너무나 다른 삶이 얼마나 받아들이기가 어려운지, 손가락 하나 꿈쩍 할 수 없고 내 발로 서지 못하고 걷지 못하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이유 없이 열이 올라 병원을 수시로 왕래할 때마다 얼마나 나약한 존재감을 느끼는지, 소·대변 문제와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 등 신변에 관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지,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의 호전되지 않을 육신에 대한 헌신적인 간호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말일세.
자네의 영화를 보고나서 어느 분께 전화가 왔네.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더군. “어떻게 자살을 선택할 수 있어? 그래도 살아야지. 감독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어야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그 분의 신념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셨던 모양이네.
잘 생겼고, 자상한 부모님과 남부럽지 않은 재산, 자네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친구들과 지인 들, 사랑하는 사람 루이자도 있고, 남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관대함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고 소통 할 수 있는 현명함까지 있는데 왜 자살을 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할걸세.
그럴 수도 있지. 척수장애의 고통을 모른다면 말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네의 결정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이해하네. 그리고 자네의 결정을 존중 하네.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도 이해하네. 척수장애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상상을 하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있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의 삶에 대한 목적은 있다고 생각하네, 사람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역할이 있다고 말이야.
윌, 나는 자네가 살아서 결혼도 하고, 사업도 잘하고 잔잔하게 일상의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능력이라면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이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에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네.
그리고 자네의 경험을 살려 척수장애인의 초기 재활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부분 기여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특히 심리적인 부분 말일세.
이기적인 마음도 중요하지만 이타적인 마음도 중요하다고 믿네. 슈퍼맨으로 유명한 미국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보게, 그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났겠지만...
그는 화려한 스포트와 명성을 뒤로하고 자네보다 더 중한 척수손상을 입고 휴대용 호흡기를 늘 달고 다니면서도 척수장애인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 이 사회에 척수장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삶의 질을 위해, 사회가 노력해 줄 것을 위해, 고군분투를 했네.
그리고 자네와 비슷한 상황의 한국의 김종배 박사는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고, 자네보다 훨씬 중증이신 이상묵 교수는 장애인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이시지. 이렇듯 장애 후 나머지 삶을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네.
자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자기애로 결정을 하고 존중을 했어도 남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강제적으로라도 막지 못한 아쉬움과 회환으로 평생을 살 걸세.
자네의 결정에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베르테르효과(‘자살 전염’ 또는 ‘모방 자살’, ‘동조 자살’이라고도 함)로 자네의 방식을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라 나는 믿네. 그들은 이곳에서 자기의 삶의 방향에 순응하며 더 나은 삶을 향해 노력을 할 것이고, 이 사회의 척수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노력을 할 걸세.
부디 자네는 그 곳에서 행복하게. 그리고 이 지구에 남아 고군분투하는 척수장애인을 위해 기도해 주게. 남은 우리들은 이곳에서 열심히 살겠네.
어느 날 그곳에서 자네를 만난다면 같은 척수장애를 가진 동료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
이 글은 최근 개봉한 척수장애인의 안락사(조력자살)에 대한 영화 ‘미 비포 유’를 보고 주인공인 윌에게 쓴 편지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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