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64세 A씨는 동료들과 현장식당(함바집)에서 회식 도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져서 경수 3~5번의 최중증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모병원의 신경외과에서 긴급수술을 받고 1개월간 입원치료를 하다가 바로 퇴원을 하였고 퇴원한지 20여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경수 3~5번의 손상이면 자가 호흡에도 문제가 있고 어깨만 겨우 들썩일 정도의 그야말로 척수장애 중에서도 최중증의 척수장애에 속한다. 사망의 원인은 척수손상에 따른 쇼크라고 했다.

척수손상에 따른 쇼크 중 과반사 쇼크라는 무서운 증상이 있는데 이는 자율신경과반사(Autonomic Dysreflexia)로 인해 오는 쇼크로 T6(흉수 6번) 상부의 척수손상의 경우 나타나며, 자극에 대해 자율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증상으로는 갑자기 혈압 상승에 의해 발한, 홍조, 두통, 빈맥이 나타난다. 신경인성 장과 방광의 과팽창이 주된 원인이 된다고 한다.

1년 전에도 사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의식을 잃어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아 사망했던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원인은 소변줄이 막혀서 소변배출이 원활하지 못해 과반사 쇼크로 인한 사망이었다.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는 재활의학과로 옮길 것을 요청했지만 가족들은 병원에서 하는 치료가 하루에 한 두 번하는 물리치료 정도라고 생각을 하고 차라리 집으로 가서 잘 먹이고 운동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퇴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여일 만에 사망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왜? 신경외과 의사는 적극적으로 퇴원을 말리지 않았나? 왜? 가족들은 무리하게 집으로 갔느냐? 하는 잘잘못을 논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척수손상에 대한 치료와 재활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선진국의 경우, 척수손상이 발생하면 초기부터 팀접근(Team approch)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재활의학과의 의사들이 한 팀이 되어 척수손상환자의 수술과 치료, 재활과정에 대한 논의를 한다고 한다.

수술실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도 참관을 한다. 손상부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재활계획을 좀 더 세심히 세울 수가 있어서라고 한다.

사망자가 입원했던 병원의 신경외과에서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척수손상의 예후를 설명했는지 모른다. 신경외과의사는 그의 전문성을 살려 수술과 초기 치료는 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과 합병증, 재활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이는 재활의학의 전문분야이다.

만일 신경외과와 재활의학과가 긴밀한 협진이 이루어졌더라면, 가족에게 척수장애에 대한 이해와 향후의 치료과정, 재활과정에 대해 세심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에 척수협회라는 곳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면 황망하게 가장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척수손상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둔 책도 변변치가 않다. 척수협회에서 발행한 ‘일상의 삶으로(Back on Track)'와 최근 군자출판사에서 발간한 안내서 정도이다. 가족들이 척수장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그러한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전무한 실정이다.

척수장애와 관련된 서적들이 부족하다. 척수협회에서 발간한 지침서 2권(왼쪽, 가운데) 민간출판사에서 발행한 서적(오른쪽). ⓒ이찬우

병원과 척수협회가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되어야 함에도 의료전문분야에 객식구들이 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장애수용과 가족의 지지가 수술과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재활병원은 척수협회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고, 뉴질랜드는 병원 안에 척수협회가 같이 존재한다.

병원에서의 치료과정이 1~2년이라면 그 이후의 삶은 지역에 있는 척수협회와 긴밀한 유대가 이루어진다. 차라리 손상 초기부터 척수협회와 유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환자의 평생관리라는 측면에서 병원의 입장에서는 손해볼일이 아니다.

그저 환자의 치료에만 집중을 하지 척수장애인 가족의 존재감을 병원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척수환자를 간호하는 간병인정도로 인지하는 지도 모른다. 아마 가족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알아도 수가가 발생하지 않기에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수도 있겠다.

동료상담과 가족상담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척수장애인 당사자들은 우리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경험을 못 믿는다면, 각종 논문에서 이를 입증 하고 있다. 최근 다녀온 스웨덴의 척수재활과정에서도 당사자로 구성된 RI(Rehab Instructor, 재활코치)의 역할이 대해 병원에서도 센터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인정을 하고 존중을 해준다.

척수장애의 체계적인 시스템의 완성은 병원이 아니라 당사자가 살던 지역사회이다. 척수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일어나면 안 되는 후진국형 척수장애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척수장애에 대해 무지했던 1950년대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다시 한번 힘을 주어 강조한다. 척수손상에 대한 선진국형의 체계적인 재활시스템이 확립되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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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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