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처음 몇 주간은 예방접종을 하느라 집안에만 두다가 며칠 전부터 동네산책을 시켜 주었다. 그런데 산책을 편안하게 즐기게 되면 길 구석구석에 오줌도 누고 똥도 눈다고 하는데, 사나흘 동안 한 번도 누질 않아 걱정이 되었다.

그로 인해 잠을 못 이루던 딸이 어느 날 새벽 일찍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감격적으로 소리쳤다.

“드디어 똥을 눴어! 만져보니 따끈따끈한 게 강아지 분신 같더라.”

내가 첫아기를 낳고 키울 때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소화기관이 약하게 태어난 아들의 젖 먹은 후 트림소리나, 기저귀를 갈려고 앙상한 두 다리를 들어 올릴 때 뽀지직 가지런히 내어놓는 똥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간혹 분수처럼 솟는 오줌 줄기를 얼굴에 맞을 때도 그저 웃음만 나왔었다.

권정생 작가는 동화에서 ‘똥’의 가치에 대해 새삼 일깨워준다. 만나는 이들마다 더럽다고 피하고 놀려서, 수치와 자괴감에 슬퍼하던 강아지똥이 한 겨울 추위를 홀로 견디며 밤하늘의 별을 품는 꿈을 꾸다가 새봄이 되었을 때, 새싹을 만나 온전히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써 노란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똥과 민들레, 강아지와 딸, 그리고 아들과 엄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로 서로 만나게 된다. 누가 더 낫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수고로 채워주는 반려로서 성장하게 된다.

인간복지는 동물복지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호칭도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바뀌어가고 있다. 명령을 내리는 주인과 복종하는 종 또는 먹이를 주고 귀여워하는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돕는 친구 같은 관계로서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이른 봄, 길가에 피어나는 애기똥풀. ⓒ김석주

사람과 동물 사이 뿐 아니라, 부부간, 사제간, 노사간에도 반려로서 함께 성장하는 관계들이 있는가 하면,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로서 억압과 위축, 횡포와 굴욕의 왜곡된 습관으로 서로를 해치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교육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라는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다 온 국민의 원성을 듣고 파면까지 이른 일이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상위 1%가 나머지 99%를 밥만 먹고 살게 해주면 된다는 수직적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청주에서는 한 60대 부부가 지적장애인을 18년 동안이나 축사 옆 창고에서 재우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임금을 주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그 부부는 지적장애인을 축사의 소들과 같은 존재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먹여주고 재워 주는 주인에게, 소들처럼 젖을 내고 고기를 내어주는 대신 노동을 바치게 했을 것이다.

2014년 신안군의 염전에서는 한 섬마을 전체가 장애인들을 강제납치하고 노역시킨 일들이 밝혀졌다. 이는 지역 경찰들까지 주민들과 묵인 공모하여 마을의 염전 수입만을 위해 인권을 유린한 집단적 잔혹함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최근 그 지역 여교사 집단강간사건으로 다시 드러난 실태에 의하면 이 사건이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은폐된 채 남아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건들은 왜곡된 가치관이 인간을 어디까지 비하하고 잔혹하게 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집단적으로 습관화될 때 얼마나 무감각하게 만연될 수 있는지 부패한 사회의 위험한 깊이를 보게 한다.

사회란, 각 개인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언제든지 서로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고 뒤섞여질 수 있다. 즉,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성을 가지며 한 약자의 인권이 무시될 때, 그것은 돌고 돌아 강자에게도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완전하고 영원한 지배와 피지배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불완전한 인간들은 각기 다른 모양과 내용으로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게 된다.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다. 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먹고, 초식동물이 풀을 먹고, 풀은 흙과 물과 햇볕 그리고 똥을 먹고 자라게 된다. 즉 똥이 없으면 풀이 시들고, 풀이 적으면 초식동물이 줄어들고, 결국은 잡식동물 또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단편적으로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듯 보여도, 근원적으로는 공생과 상부상조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먼 북극의 빙하나 하늘 위 오존층까지 살펴보지 않더라도, 동물을 반려로 키우는 사람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리더들은 그 원리를 매일 경험한다. 엄마가 아이를 억압하고 누를 때, 아이가 상처를 인지하기도 전에 엄마는 이미 느낀다, 자신의 마음이 찢기는 통증을. 그러나, 그 일이 습관적으로 반복될 때 통증은 마비되고 점점 더 곪아서 치명적인 불치의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상호 연결된다. 곪은 가정들, 곪은 관계들이 모이면 사회 전체가 썩어들고, 그리고 건강한 곳곳에까지 암처럼 번져나간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약자인 강아지 똥에서부터 그 귀함을 발견하고 존중할 때에야 대지에서 다시 꽃이 피고 온 사회가 치유될 것이다. 민들레부터 소나무까지, 동물들과 인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건강해질 것이다. 실상은 하위 1%가 상위 99%를 일깨우는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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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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