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농아인협회 창립 70년 행사에 연사로 참석하여 ‘언어를 배울 권리와 농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조셉 머레이 박사는 갈로뎃 대학교 농학과 교수로 ‘Deaf Gain’이라는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필자는 농인들과 생활하면서 수어가 얼마나 유익한 언어인지 실감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아직 이 저서를 접하여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간 농사회에 몸담은 경험을 기반으로 어떠한 내용들이 담겨 있을지 대충은 짐작이 간다.

조셉 머레이 박사는 ‘Deaf Gain’을 통해 농인으로 살아가면서 유익한 점을 다뤘다면 이 칼럼에서는 수어의 이점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청인인 필자가 음성언어와 비교하여 수어의 이점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바로 이른 아침에 오는 전화를 받을 때이다.

잠을 자는 동안 인간의 모든 신체기관은 활동을 멈추기 때문에 청인의 경우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는 목소리가 아직 풀리지 않아 평소와 다르게 칼칼한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게 되면 방금 일어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야 되는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론 늦잠을 즐기다가 상대에게 자고 있었음을 목소리를 통해 들키는 것 같아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전화를 받기 전 급하게 목소리를 크게 내어보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목소리는 평상시의 상태로 재빠르게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어는 어떤가? 이른 아침이라고 해서 손이 풀리지 않아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농인은 없을 것이다. 매번 일어나자마자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수어가 얼마나 이점이 많은 언어인가 느끼게 된다.

또 하나는 거리의 제약이 음성언어와 비교하여 많이 없다는 점이다. 청인들은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가 짧아 말로 대화를 나누기에는 물리적인 거리의 제한이 많지만 시각적으로 정보를 획득하는 습관 속에 생활하는 농인들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상대방과도 수어를 통해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가끔 지나다보면 혼자서 수어를 하는 농인을 보고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청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멀리 시선을 돌려 살펴보면 수어로 이야기 하는 또 한명의 누군가를 보게 될 것이다.

공간적인 제약이 적은 면에서도 수어가 이점이 훨씬 많다. 음악소리가 시끄러운 클럽 같은 곳에서 청인들은 대화를 나누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지만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농인들은 수어로 자유로운 소통을 나눌 수 있다.

그뿐인가? 병원의 멸균실에 들어가 있는 청인 환자들은 면회 온 가족들과 음성언어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멸균실의 유리가 워낙 두꺼워 상대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인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안과 밖에서 자유롭게 수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필자도 간이식 수술로 병원의 멸균실에서 회복기를 맞고 있는 농인의 병문안을 간적이 있었는데 그 병원에는 화상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어 청인 환자도 가족이나 지인들과 음성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멸균실을 이용하는 환자나 가족들이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우니 민원을 제기하여 화상전화기를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다수의 청인들은 수어를 말 못하는 농인들이 음성언어를 할 수 없어 대체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쯤으로 생각하지만 수어는 음성언어보다 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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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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