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혐오의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이야기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오래 전 보았던 외국영화 중에 항해하던 선박이 초보선원의 실수로 좌초될 뻔한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왔었다. 다행히 베테랑 선원들의 수습으로 배는 무사했고 실수했던 선원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숨을 돌리려 갑판으로 나온 순간, 줄 지어서서 자신을 향하는 동료들의 눈을 보았다. 혐오의 시선. 한 명, 두 명, 모두에게서 차례대로 그 시선을 받은 후 갑판 끝에 이른 초보선원은 그대로 바다에 뛰어내렸다.

말로 욕한 사람도 없었고 때린 사람도 없었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몸이 아닌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잔인한가?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무리지어 혐오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을만큼 참담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평생 동안 매일 그러한 혐오의 화살을 맞으며 사는 이들이 있다. 내 아들과 같은 장애인들이 그러하다.

어릴 때는 물불 안가리고 위험에 뛰어들고 호기심으로 온동네에 폐를 끼치고 다녀서 엄마인 나부터가 아들에게 야단과 미움의 눈빛을 쏘았었다. 그러다 아들의 부족한 인지력과 감각적 어려움을 제대로 알고서부터 나쁜 아이가 아니라 약한 아이로서 기꺼이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아들은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무시와 폭행의 대상이 되었다. 놀리는 친구들, 체벌하는 교사들, 욕하고 노려보는 이웃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해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들도 예전의 나처럼 알지 못했기에 오해했으리라, 이해하는 만큼 나아지리라 여기며 한 해, 두 해를 견디는 동안 모두가 성장했다. 이웃들은 미소를 보내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교육방법을 연구하였고, 친구들은 아들을 포옹하고 손잡아 주었다. 그렇게 한 마을의 변화 속에서 아들은 태도의 안정과 재능의 발전을 나타내었으며, 초중고교 담임선생님 성함과 가까왔던 친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되어서 더 큰 사회 속으로 들어섰다. 신체는 수염이 거뭇거뭇한 어른이지만 정신은 어린 아이 같아 물건 사는 계산도 서툴고,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의 구분도 어렵고, 길에서 깡총거리며 뛰어다니고, 휴대폰 가게에서 음악이 나오면 막춤을 추는 아들. 그런 아들이 전정기관 등 보이지 않는 감각발달의 미숙으로 똑바로 서있지 못하여 몸을 계속 흔들고, 혼자서 킥킥대며 웃거나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상동행동들을 나타낼 때, 뭇사람들은 또 다시 경계와 혐오의 눈총을 쏘아댄다.

장애인 가족들과 필자가 함께 만든 인권영화 '용상씨의 외출' 중 한 장면. ⓒ김석주

얼마 전 강남에서 일어난 여성살인사건의 범인을 경찰청에선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라는 원인으로 간단히 축소하고, 어디에서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추정하여 강제입원 조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범죄의 행위가 병적 급성기에 발현된 것인지, 그의 소외되고 방치된 환경에 의한 심리나 인지적 왜곡 때문인지 정신의학적인 판단과 재판이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찰청장의 그러한 발표는 소수 약자인 정신적 장애인들에게 모든 문제와 우려의 화살을 다 돌려버린 권력적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는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은 발병 전과 같은 일상을 유지하며 전문직에 종사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들은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은 위축된 자괴감과 무기력증 때문에 삶의 활기와 의욕을 북돋울 사회적 인식과 배려가 필요한 대상이며, 치료를 중단한 환자들에겐 가족과 주변인들의 질병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해소와 사회통합적 재활 환경의 마련이 더욱 중요하다.

실상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들보다 극히 적으며, 급성기의 환각증상 외에 망상이나 편집, 우울감 등은 환경과 기질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갖고 있는 취약점들이다.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이러한 취약점은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에 불가분의 영향을 받아 게임이나 알콜 중독에 빠지거나 사이비종교를 맹신하며 왕따와 집단폭행, 나아가 전쟁과 대량학살까지 주도하거나 동조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정신병동이나 장애인시설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주된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환자나 장애인들은 대부분 자기방어나 공격적 기술이 서툴기에 오히려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처한다. 반면에 정상적인 지능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방패삼아 자기합리적인 우월적 망상으로 무자비한 학대자가 되곤 한다. 즉, 범죄란 특정 질환에 잠재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부조리한 사회적 인지와 감정조절의 오류로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한 근원적 분석 없이 특정 질환군을 범죄의 원인으로 간단히 지목한 경찰청의 발표는 방어능력 없는 소수약자들을 향하여 사회적 혐오의 대포를 무차별적으로 돌려 쏘아댄 일종의 학대 행위이다. 오랜 시간 동안 돌담 하나를 쌓아올리듯 정신의학과 재활복지 각 분야에서 섬세하고 치밀하게 회복시켜온 정신적 장애인들과 그 가족의 삶, 그리고 사회전반적인 교양과 인권의 체계를 단번에 무너뜨린 권력의 폭탄인 것이다.

요 몇 주 사이에 아들과 나는 지하철이나 길에서 전보다 훨씬 많은 혐오와 경계의 눈총을 받고 있다. 조현병 등의 정신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자폐증 등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특이하게 눈에 띈다. 아들이 혼자 웃거나 몸을 흔들거릴 때면 뭇사람들의 눈총이 내 가슴을 그대로 관통한다. 지금까지는 내 아들을 누가 해치지나 않을까 피해자 입장에서 늘 걱정했다면, 이제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혀 무고하게 잡혀가지는 않을까 그 걱정까지 덤으로 짊어지게 되었다.

영화 속 실수하던 초보선원이 사라지고 나서 배는 안전했을까?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를 통해 성장해간다. 초보의 실수는 베테랑이 막을 수라도 있지만 베테랑이 잘못된 방법과 방향으로 배를 몰아갈 때 그 위험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소수의 약자들을 혐오와 격리로 손쉽게 처리하는 무지한 지도자 아래 운행되는 사회는 어디로 향해 갈까?

초보선원이 갑판 끝에 이를 때까지 그 무리 중 단 한 명이라도 혐오를 거두고 감싸는 이가 있었다면 그는 다시 살아 성장했을 것이다. 무너진 돌담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아들과 나는 다시 일어나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을 희망하며 말을 건네고자 한다.

“우리는 위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느리고 어렵게, 더 힘겹고 아프게 세상을 배우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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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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