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척수장애인 주택접근성개선사업의 모니터링 첫 대상자는 리미(Rimi Saromagan 여, 32)씨 이었다. 그녀는 2012년 가축들이 좋아하는 나뭇잎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된 경우이다.

포카라에서 샹쟈(Shanja-Krishna Gandaki)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거쳐 산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말 그대로 산 넘고 넘어 비포장도로의 여정은 긴장감을 갖게 한다. 동행한 네팔척수장애인재활센터의 직원도 주택까지의 접근이 어려우니 차안에 있으라는 권고에 활동보조인으로 함께 동행 한 아내가 대신 방문하는 차선책을 택할 정도로 험지였다.

그녀는 부모와 형제, 자녀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은 시내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 생각보다 활달했다고 했다. 본인의 선택에 의해 부엌의 개선공사는 하지 않고 입구의 경사로 설치와 화장실을 신축하였다.

생각보다 주택과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건축 전에 주택과 축사사이에 화장실 짓기를 요청을 하였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멀리 지었다고 한다. 가축의 소중함과 문화적인 차이는 인정은 하나 장애인 당사자의 어려움이 차순위로 밀리는 아쉬움과 이를 설득할 당사자 동료상담가의 부재가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집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어서 진흙탕이 되는 우기에는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우기에는 이전처럼 거실에서 용변처리를 한다고 했다. ‘일 년에 9~10개월은 화장실을 사용하면 되잖아’라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화장실이 아예 없을 때는 포기를 하지만 화장실이 생겨 스스로 용변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장애인 당사자는 자존감이 살아난다. 그러나 화장실이 있음에도 사용을 할 수가 없을 때는 그 자존감에 더 상처를 입게 된다.

우기에도 화장실의 사용이 가능하도록 가는 길을 포장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듯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가 차후의 사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곳에도 아이들을 위한 배구장이 있었다. ⓒ이찬우

리미씨를 위해 지어 준 화장실(파란색 문 건물) 전경. ⓒ이찬우

리미씨 가족과의 단체사진. ⓒ이찬우

돌아오는 길에 본 나무위에서 나뭇잎을 채취하는 동네 여인들(원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이찬우

두 번째 여정인 샹자(Shanja-Chapakor)는 하이웨이에서 벗어나자마자 비포장도로를 25Km를 가야하는 길이었다. 험한 산을 세 개 넘고 비탈길을 3시간 달려서 산과 산 사이의 평지에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산꼭대기는 아니었다.

방문한 곳의 척수장애인 부디히만(Buddhiman Shresthq 남, 52)씨는 2010년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다 추락하여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그곳에서 수술을 받고 네팔에서 재활치료를 마친 후에 집으로 귀가한 경우이다.

넓은 밭을 배경으로 산을 뒤로 등진 주택은 그나마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북한기업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입었으나 아직 보상의 절차가 마무리가 안 되었다고 한다. 매우 부지런한 이 분은 가축도 돌보고 집안일과 동네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했다.

부인과 친척들은 3일후에 딸의 결혼식을 한다고 분주한 모습이었고, 타지에서 온 필자를 모두가 친절히 맞아주었다. 부디히만씨가 거처하는 방에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여러 가족, 친지들의 눈동자가 기억에 선하다.

척수장애인들은 서로 만나면 어떻게 다쳤는지, 욕창은 없는지, 휠체어와 방석은 무엇을 쓰는지, 가족상황 등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직접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영어로 네팔어로 한국어로 분주하게 오가는 통역에서도 참 많은 것을 서로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하였다.

특히 욕창방석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로호방석이 아니고 O링모양으로 방석을 만들어서 사용을 한다. 한국에서 20년 전 사용되었던 방식이다. 그리고 신발을 신지 않아 발목관절이 굳고 발에 상처가 많이 발생하였다.

다행이 이 집은 화장실까지 포장이 되어있어 우기에도 우산만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한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척수협회의 마크가 자랑스러웠다. 이곳의 화장실은 아주 드물게 양변기가 놓여져 있었다. (보통은 일반 쪼그려 앉는 변기를 설치하고 그 위에 나무의자를 놓거나, 코모도만 설치하는 형식이다)

양변기가 비싸서 엄두를 못 냈지만 주인의 일부부담으로 설치하였다 한다. 이곳은 물자도 비싸지만 외지에서 운반되는 운반비와 인건비의 부담으로 건설비가 많이 든다.

기쁜 마음으로 변기를 사용하다가 변기 커버가 깨졌다. 자세히 보니 고무받침도 없고 원래변기의 짝도 아니었다. 변상을 하려하니 극구 사양을 하였지만, 이곳의 형편을 아는 이상 반강제로 변기커버 대금(1,500루피)을 안기다시피하고 왔다. (이곳에서 1,500루피면 우리나라 돈으로 15,000정도이지만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멀리서 손님이 왔다고 며칠 후면 시집가는 딸에게 심부름을 시켜 한참이나 흙먼지 길을 걸어가야 하는 동네 가게에서 사이다를 사다 대접하는 순수함이 참 아름다웠다. 다음에 올 때는 꼭 하룻밤 자고 가라는 부인의 다정어린 모습을 뒤로하고 기분 좋은 모니터링을 마무리 하였다.

부히디만씨 가족과 단체사진. 모자를 쓴 프라젤씨는 주택접근성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네팔척수장애인재활센터의 직원이다. ⓒ이찬우

축사 앞에 신축된 화장실과 화장실 내부 모습. ⓒ이찬우

출발하기 직전 아쉬움에 다시 한 번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찬우

돌아오는 길에 왜 이곳 네팔에서 이런 사업을 하는지 당위성에 대한 답을 찾았다. 전 세계의 척수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다르지가 않다. 다만 국가가 척수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의 차이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은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고 이런 지원의 필요성과 힘을 알기에 이곳 네팔에서 그 속도와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국제개발협력의 진정성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할 때 우리 척수협회의 여러 가지 지원들과 생각들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미치기를 바랄뿐이다.

다행히 올해부터 척수장애인직업재활센터를 건립하고 교사를 양성하고 척수장애인과 가족들을 훈련을 시켜서 당당히 기술을 가진 사회인을 양성하여 사회활동을 하도록 하는 중요한 사업이 시작되었다. 척수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척수협회의 이런 진정성과 노력이 네팔의 척수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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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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