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실수로 생긴 욕창으로 2주 이상의 생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재수 없어서 당한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과 환자를 대하는 의료시스템의 커다란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병원의 상담실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병원 측에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하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였다. 재발방지로는 직원들에 대한 장애인식개선교육과 검사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였고, 필자가 겪은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손실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을 요구하였다.

의료소비자로써 받은 손해에 대한 당연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병원 측의 답변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상담실을 통해 원장단 회의에 보고를 하였으나 ‘문제는 있었으나 사과나 보상은 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났다고 알려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술은 먹고 운전은 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 이것이 국민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대형병원의 서비스정신을 가장한 뒷모습이다. 눈앞에서 억울하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 입원환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갑’질이다.

큰소리를 치며 진상을 부려야 들어주는 척 하는 구시대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당연히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는 선진문화가 필요하다. 병원에서 진찰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안이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환자가 그러다 말겠지 하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진정 원한 것은 병원 측의 사과였다. 원장단 회의에서 척수장애인은 그런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는 발언에 아연 실색을 금할 수가 없다. 사전에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을 이런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하는 의견이다.

병원 곳곳에 붙여져 있는 게시물에는 전문성을 갖추는 실력 있는 병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믿음직한 병원,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친절한 병원이라고 비전과 미션을 제시하였다. 환자안전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번 사고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커다란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게 하고 필자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도 업무상 피해를 입혔다. 이는 과다 진료가 되어 건보재정의 손실로도 다가오게 된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일을 소홀히 함으로서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반성도 사과도 없다.

수습 차 올라온 원무과의 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병원은 절대 사과나 보상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송을 통해서 조정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움직인다는 것이다.

병원마다 의무적으로 게시를 해야 하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에는 환자의 권리에 (라) 상담ㆍ조정을 신청할 권리항목에 ‘환자는 의료서비스 관련 분쟁이 발생한 경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상담 및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병원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라는 생각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소비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병원을 위한 제도라는 느낌이 든다.

이 외에도 한국소비자보호원이나 민사소송으로 조정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인권침해에 해당이 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는 수도 있겠다.

담당 직원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조정신청을 하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퇴원 후에 다시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는 이 말이 아무리 니들이 애를 써도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냉소적인 뉘앙스로 들렸다.

이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투쟁의 전사로 만든다는 어느 장애인단체 대표님의 글이 생각이 난다. 전사가 필요하다면 전사가 되어야겠다.

필자는 병원에서의 투쟁보다는 이 사회에서의 투쟁을 위해 퇴원을 했다.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 못하는 약자들을 대신하여 이성적이고 냉정한 대처를 할 것이다. 병원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고 이 황망한 시스템의 개선에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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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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