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요즘 복지관의 계절학교에 참여하러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다닌다. 대부분의 복지시설이 그렇듯 도심 외곽의 오르막에 위치해 있어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도로의 한쪽엔 재건축된 시영아파트가 높이 서있고, 반대쪽엔 쓰레트 지붕과 기와지붕 그리고 양옥집 옥상들이 산비탈 아래 나지막하게 뭉쳐 있다.

‘석면가루가 툭툭 떨어질 것 같은 저 낡은 쓰레트 지붕 아래에는 누가 살까? 노부부가 함께 사실까, 고단하게 노동하고 들어오는 늙은 외아들과 홀어머니가 사실까, 이 동네는 농촌도 아닌데 다들 뭘 해서 먹고 살까, 파지 값도 폭삭 내렸다는데...’

버스의 라디오 방송에선 모 사립대학교에서 예술 관련 학과들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이유는 취업률이 높은 학과 위주로 정부 지원금이 배당되어 이공계열 학과를 늘리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올해 누리과정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유치원 교사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고 한다.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젊은이들은 학자금 대출 빚부터 최저시급 알바와 비정규직으로 2년마다 쫓겨나다시피 직장을 옮겨 다니며 평생을 벌어도 집 한 채 살 계산이 나오지 않아 결혼을 꿈꾸지 못하고, 중년들은 조기 퇴직과 생계형 자영업조차 실패함으로 길고 긴 노년이 막막하기만 하다는데, 우리나라는 정말 이렇게 가난한 걸까?

경제지표를 보면 한국은 1990년대 후반에 이미 국민소득(GNP) 1만 불로 생존 해결점을 넘어섰으며, 현재 국가 소득(GDP)이 세계 11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기업소득 비중은 몇 년 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유하다니! 반면에, 국가 소득에서 임금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인 노동 소득 분배율은 최하위이며, 장애인 복지 지출도 최하위, 그리고 노인 빈곤율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즉 갈수록 국가와 기업은 살찌는데 국민은 여위어가는 기이한 현상을 그대로 나타낸다.

게다가 경제지표 외에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 관용 의식, 기대수명, 정부와 기업의 부패지수, 선택의 자유 등을 기준으로 유엔 산하 자문 기구(SDSN)에서 발표한 행복지수는 OECD 최하위를 넘어 세계 47위로 하락하고 있다 한다. 그러면,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불행은 허리띠 졸라매고 새벽부터 밤까지 경쟁적으로 일하며 개인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할까, 신뢰와 평등과 나눔의 사회철학으로 해결해야 할까?

한 가정이나 국가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그리고 삶의 수준은 돈을 어디에 얼마만큼 쓰느냐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서 쓰느냐, 청년의 견문과 열정을 위해서 쓰느냐, 중년의 사업과 도약을 위해서 쓰느냐, 노인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쓰느냐, 과연 우리 현실은 얼마만큼이나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가 이끌어져 왔을까.

이공계열의 취업 지원, 좋다. 제품과 설비와 인간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으로 도래할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개발 지원은 충분히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산업은 기술적인 도구일 뿐, 그것의 내용은 오직 인간의 욕구로 움직여지고 채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강을 위해 의료 기구가 개발되며, 식욕을 위해 푸드아트가 연구되고, 소리를 위해 음향기기가 발전되고, 시각을 위해 패션과 건축 그리고 스마트폰이 디자인되고, 관계를 위해 네트워크가 확장된다. 인공지능과 기계가 단순노동부터 의학, 어학, 법학 등 고급 기술들까지 대신하게 되면, 오히려 더 섬세하게 차별화되는 능력은 철학과 예술, 관계와 본능 등 인간 고유의 감각적 재능들이다. 그리고 단지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더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원하며, 보다 더 본질적인 인간애를 추구하게 된다. 이미 유럽 선진국들은 그것을 실현하고 있지 않은가.

장애에 관련된 내용만을 써야 된다는 본지의 방향을 내내 의식하였지만, 한 장애인의 삶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흐름에 떠밀려 불길이 번지기도 하고, 꺼져버린 잿더미처럼 불씨조차 가물거리는 어둠이 되기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먼 데까지 이야기를 둘러 왔다. 예술을 경시하고, 양육을 소홀히 하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존재들을 무시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방으로 막힌 절벽 아래에서 이런 메아리들로 윙윙대는 어지럼증을 견디는 것이다.

“대학 나온 사람도 막노동하며 힘들게 사는데, 장애인 고용은 뭐고 장애인 인권은 뭐라니?”

“직원이 회사에 맞춰야지. 회사가 어떻게 장애 특성을 일일이 맞춰 주니?”

“경쟁사회에서 능력 없으면 도태되는 거지. 복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야.”

“가진 자가 베풀고 동정해주면 그저 고맙게 받기나 하라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은 최약자인 아이와 환자와 장애인을 생활의 중심에 두고 가족들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며 화합하고 공존한다. 그것은 주종의 관계도, 우열의 관계도 아니다. 주어진 능력대로 발휘하고 필요대로 나누는 평등의 관계이다. 우리 가정은, 우리 사회는 지금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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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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