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남 2녀 다섯 자녀 중 장남과 차남을 농아인으로 둔 필자의 시어머니는 50여년 넘게 농아인인 두 아들과 거의 매일 붙어 살다시피 생활하고 계시지만 수화를 전혀 하실 줄 모르신다.

중간에서 수화통역을 하게 되는 필자에게 시어머니는 종종 두 아들이 답답하다 말씀하시고 농아인인 두 아들은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어머니가 답답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수화를 사용하게 되면 말을 못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신지 시어머니는 두 아들이 수화를 사용하면 눈을 부릅뜨고 혼내셨고 그게 무서운 두 아들은 문을 걸어두고 수화를 사용하거나 어머니의 눈을 피해 수화를 사용해야만 했다고 한다. 비단 이런 풍경은 필자의 가족만 겪은 일이 아니라 그 시대 대다수의 농아인들이 겪어야 했던 일상이기도 했다.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수화를 사용하는 장성한 자식을 나무라실 수는 없게 되셨다. 단 한번도 수화를 사용하지 않으시던 시어머니에게 변화가 온 것은 손자들을 보신 이후였다.

몇 십년을 같이 생활한 시어머니는 농아인인 두 아들의 언어인 수화를 하나도 하실 줄 모르셨지만 농아인 부모를 둔 손자들은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수화로 소통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필자에게 시어머니께서 처음으로 “이게 일이라는 수화냐 ?”라고 물으셨다. 어떻게 일이라는 수화를 아셨냐고 되물었더니 가끔씩 집에 찾아온 농아인들이 수화를 모르는 시어머니를 제쳐 두고 어린 손자들에게 수화로 뭔가 이야기를 하면 손자가 고사리만한 손으로 수화로 대답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시면서 ‘아,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물으니까 일 갔다고 대답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시며 농아인 자식 둘을 키우면서도 배우지 못한 수화를 어린 손자에게 배우신다며 웃으신다.

많은 농아인들이 내게 하는 하소연 중의 하나가 부모님이 수화를 몰라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드물게는 농아인 자녀들과 수화로 소통하는 부모님이 계시긴 하지만 아주 간단한 대화 정도에 그치거나 대부분 수화를 잘 모르시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사이에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일까? 가족 간에도 수화통역사가 없으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농아인 가족의 현실이다.

수화통역사인 필자도 수화를 배우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농아인 자녀를 잘 양육하고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 농아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수화를 잘 하시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농아인 복지정책보다 우선하는 과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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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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